허락이 필요 없는 삶에 도착한 말

세상이 말하지 않은 삶의 감각

by 이연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였다.

그곳엔 서른 살이 넘은 사람이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 직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 '이 나이에 왜 아직도 알바를 하지?'라는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그곳을 그만두고 난 후에도 나는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른 얼굴과 다른 사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고, 모든 사정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결코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순간, 내 잣대로 판단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안에 깊게 박혀 있던 '정해진 삶의 기준'이 대신 한 생각이었던 거 같다. 그 사람은 성실했고, 나와 함께 웃으며 일했고, 자신만의 속도와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하루하루를 아주 느슨하게 살고 있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곧장 나갔고, 알바 사장님이 쉬는 날에 도와줄 수 있냐고 하면 망설임 없이 출근했다.


검정고시 준비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고, 남은 시간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 시절 내 삶에는 계획도, 어떠한 확신도 없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조차 감이 없던 시간.

스스로에게조차 자신 없던 그런 시기였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늘 '틀 안의 삶'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그 이후의 평탄한 삶까지가 '정답'처럼 느껴졌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실패라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매일이 스트레스였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자유롭고 싶었지만,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후에 몇 달 동안은 '자유롭게 살아야지'라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내가 원하는 하루를 만들고 싶어서 과감하게 놀고먹고 잤다. 편안하고 행복했다.


어느 날 그런 나를 보고, 함께 일하던 동갑내기 알바 동료는 말했다.

"넌 자유로워서 좋아."


그 말이 나를 바꾸진 않았지만, 오래도록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저 무기력하고 방향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여겼던

그 시간이 나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좋아 보이는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건 뜻밖이었다.

그 말은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내 삶을 바라봐 주는 작지만 단단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만큼은, 나는 세상의 틀보다 자유로운 쪽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입시를 준비하며 하루를 빼곡히 살아가는 그에게 나의 하루가 자유로워 보인다는 건, 내가 무가치한 삶을 산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단 뜻 아닐까?


게으름을 미화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 시기의 나도 충분히 복잡했고,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뿐이다.


그 말은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아무도 허락해 주지 않았던 삶을 누군가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 긍정해 줬던 말.

그 한마디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 말 하나로,

내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여태까지 사람을 그리 쉽게 판단했을까.

스스로 물어보면 아마도 나 또한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한다'는 압박에 오랫동안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길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나에게 자유란,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하루들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나를 찾으려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이 글은 그런 나의 기록이다.

나처럼 세상의 틀 안에서 답답함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유롭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작은 그늘이자,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