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 속에도 내가 있다.
알바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공부를 하며 하루를 보내다가도
일정이 아예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찾아온다.
하루 종일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은 채
해가 중천에 떴다가 저물어갈 때까지 그저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던 날.
가끔은 이런 시간이 참 편하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날은 방 안에 가득 찬 고요함이 마음을 조여 온다.
너무 잔잔해서, 오히려 더 두렵다.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 또래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꿈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꾸 되풀이된다. 이런 날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에 잠겼고, 결국 도달한 결론은 늘 같았다.
"그래도, 지금 내가 편안하면 된 거 아닐까?"
미래가 불안하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의 평온까지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어디선가 본 문장 하나를 떠올리곤 했다.
"내일을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그래서 그날도 그날에만 집중했다.
몇 년 후를 위해 오늘을 갈아 넣는 대신, 오늘의 나를 살피고 오늘의 감각에 충실하려 했다.
그게 나에게는 더 건강한 삶처럼 느껴졌으니까.
작년엔 학창 시절에 충분히 놀지 못했다는 아쉬움 하나로 '지금은 무조건 놀아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때가 있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면서도 그저 놀기만 했던 시간.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절은 너무 재미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있었고, 나는 그게 마냥 즐거웠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또다시 방황하게 될 줄 그땐 전혀 몰랐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충실하게 살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너무 즐거웠고,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혹시 지금의 내가 또다시 방 안에서 고요함과 나란히 누워
아무것도 생산적인 걸 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나는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을 지켜낸 나였으니까.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너는 계획도, 꿈도 없잖아. 불안하지 않아?"
그 말은 나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들었지만, 나는 무계획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니까. 불안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인생이라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고 싶었다.
그 물음이 내게 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부모님도, 10년을 넘게 봐온 친구도 결국 내겐 남이니까,
그들의 기대는 소중하지만, 내가 반드시 거기에 부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나는 지금,
조금 느리고, 조금 낯선 길을 걷고 있지만 확실한 건, 분명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고요한 날들 역시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혹시 당신도 그런 날을 보내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마냥 게으름으로 느껴진다면
이 조용한 기록이 당신의 마음에 조용한 쉼이 되어주기를.
평온은 때때로 두려움을 데리고 오지만, 그 잔잔함 속에서도 분명 삶은 흐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언젠가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몇 년 후의 나도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지금의 나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