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담

염치

by 모니카

염치 -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불과 몇 년 전까지, 설이나 추석이면 우리 집에 시댁 식구들이 모였다. 남편이 장남이었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큰 집으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결혼 초에는 꽤나 정성 들여 음식을 마련하고, 식구들을 대접했더랬다. 늦게 온다는 고모들 덕에 친정으로 향하는 길을 늦추기도 몇 번이었다. 나와 동갑이긴 하지만, 홀로 있을 시동생이 걱정스러웠던 마음도 있었다.



큰 수술을 마친 다음 해였다. 몸이 좀 괜찮아졌다 싶어 장을 봐서 음식을 하고, 명절을 보내는 동안 가족들의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한 달 내내 몸살을 앓았다. 수술 여파인지 모르겠으나,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았고, 남편과 상의했다. 이제는 더 이상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무리인 것 같다고. 남편은 한 달 동안 앓았던 나를 보아서인지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시댁식구들도 산 사람이 먼저라며, 모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하지만, 아마도 흔쾌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번 명절, 큰고모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올케 망신주기를 시전 했고, 다른 고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동생은 자신이 제사를 모시겠다 나섰다. 부모님 제사 2번에, 설과 추석 명절 2번이니 시댁 식구들이 보기에 올케가 꾀병을 부리는 건가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로 스트레스가 올라왔고, 기어이 이석증이 발병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내내 침대에만 누워있는 나를 보는 남편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몇 년이 지난 올해,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오는 걸 허락했다. 처음에는 조카 부부와 막내 고모네 부부만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점점 인원이 늘어나더니 곧 11명이 되었다. 하루 정도 마음을 비우면 되지 싶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11명의 시중이 모두 내 몫이었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고, 도움이란 단어조차 잃어버린 것처럼 앉아있었다. 심지어 우리 딸마저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더해서 나의 수술이야기가 아직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오는 것이... 참...


씁쓸한 감정이 솟구쳐 오랜만에 목구멍이 쓰다. 그들이 보기에 시부모 제사도 안 지내고, 겨우 한 끼 대접하는데 말 많은 염치없는 며느리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시댁 식구들이 더 염치없어 보이는 건 왜일까? 일일이 설명하기 싫어, 담아두고 있는 것을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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