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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Jun 24. 2021

나를 무시하던 동료와 웃으며 헤어진 진짜 이유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8)



'흠.. 여기는 작년 11월에.. 공고가 떴으니까.. 올해도 그럼 연말에 한 번 뜨지 않을까 싶은데..'


오전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방문 내용을 정리하고 나서 점심식사를 하기 전 이직을 목표로 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채용공고 게시판을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됐다.


"어? 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서 공고를 확인했던 나는 드디어 뜬 채용 공고문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 근데 계약직이네.."


보건소 계약직 탈피를 위해 목표로 잡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을 뽑았던 작년과는 달리 계약직 공고가 올라왔다. 아쉬운 마음으로 채용분야를 확인했다.


'만성질환 환자의 예방.. 지금 내가 하는 사업하고 엄청 비슷하다.'


계약직으로 뽑는 채용분야 중 내가 보건소에서 맡은 사업과 매우 유사한 사업의 계약직을 3명이나 뽑고 있었다.


'이거는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돈은.. 얼마나 주나...'


역시 돈. 똑같은 계약직이면 여기보다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은가. (무조건 보건소보다는 많이 줄 것 같았다.)


"아 뭐야. 그놈의 회사 내규 진짜."


월급 좀 알려줘라. 솔직히 일하는 이유가 돈 벌자고 하는 건데 얼마 주는지는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니냐. 회사 놈들아. (나중에 알았는데 공공기관은 알리오에 신입 초봉과 계약직 평균 연봉 등 잘 나와있음.)


'에잇. 우선 써보자. 붙고 생각하지 뭐!'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계약직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공공기관 취업준비는 사기업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사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익숙해진 나는 공공기관에 맞는 인재상을 반영한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고 블로그 후기 등을 열심히 찾아보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나의 머릿속에 주워 담았다. 그러니까 내가 느꼈을 때 사기업과 공공기관이 원하는 인재상의 차이점은 이 것 인 것 같다.


사기업,

'경영이익(돈 벌자.)을 위해 전문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스펙 좋은)으로 나 자신을 단련한 자신 있고 적응 잘하는(돈 잘 벌어오고 말 잘 듣는) 인재'라면


공공기관,

'나 자신보다는 국민을 위해(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녹봉으로 타 먹으려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줄 아는 성실하고(나라님 말씀을 잘 실현하고) 현실적인(쓸데없는 데 예산 낭비하지 말 것) 사람.'


뭐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서류통과를 위해 그동안 살면서 겪은 많은 일들이 너희 회사와 엄청나게 연관성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여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적었다. 자기소개서란 자고로 끝날 때까지 끝날 리 없는, 볼 때마다 자꾸 고치고 싶어지는 그런 특징이 있지 않은가. 가고 싶은 회사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마감 마지막 날 이제는 놓아주듯이 어쩔 수 없이 제출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서류 발표 당일.


'새부리님 안녕하십니까? 2019년 제4차...'


보건소 사무실에서 다음 날 방문 대상자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던 중 핸드폰 미리보기에 뜬 내용을 얼핏 보니 서류전형 문자가 온 듯했다. 회의가 끝난 후 비상계단으로 나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자를 확인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왁!!"


계약직이라고 해도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합격을 하니 무척이나 감개무량했다. 물론 서류 합격일 뿐이지만 공공기관을 처음 지원해봤기 때문에 쉽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한 번에 서류가 붙어서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 내선전화로 주무관에게 전화가 왔다.


"영양사님, 2주 뒤 금요일에 시청에서 사업 관련 행사가 있는데 영양사님 참석 요청이 왔어요."


"2주 뒤 금요일이요?"


정확히 면접 날짜와 겹치는 날이었다.


"네. 자세한 내용은 시청 주무관님이 유선 연락드린데요. 참고하세요."


면접이 오후 1시니까 오전 행사면 참석이 가능할 듯싶었다. 잠시 후 시청 주무관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아, 넵. 안녕하세요."


"주무관님께 전달받으셨을 것 같은데, 2주 뒤 금요일에 시장님 참석하시는 행사가 있거든요. 그때 식전행사로 저희 사업 담당하시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운동처방사 선생님들하고 같이 약간의 퍼포먼스 같은 걸 하려고 해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영양사 선생님께서 같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섭외 연락드렸어요."


"주무관님 그런데 제가 당일 오후에는 개인 일정이 있어서 그런데 행사 시간이 어떻게 될까요?"


"행사 시작은 오후 1시고 당일 9시부터 오셔서 준비해주시면 돼요."


시간까지 정확히 겹치다니.. 순간 고민이 됐다. 시장님까지 참석하는 행사라고 하고, 혹시나 내가 지원한 기관의 정규직 공고가 곧 뜰 수도 있고.. 계약직에 덜컥 붙어버리면 정규직 공고 지원은 힘들 것 같았다.


"네, 우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스스로 상황 정리를 한 후 공공기관 인사팀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번 계약직 공고 서류전형 합격자인데 혹시 면접시간 조정이 가능할지 문의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면접시간 조정은 불가능합니다. 혹시 참석이 어려우신가요?"


"아닙니다. 지금 직장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일정이 있어서.. 그럼 여기 일정 조정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시에서 하는 행사의 일정이 조정될리는 만무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근무했던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일하는 중?"

"응. 누나 오랜만이네~ 잘 지내?"

"어. 야 나 고민되는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잠시 통화 가능해?"

"어.. 잠시만~ 나 사무실이라 복도 나가서 전화받을게, 잠시만."


"어. 이제 말해봐. 무슨 일이야?"


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동생은 큰일 날 소리라며 혼을 냈다.


"누나, 지금 보건소 행사가 뭣이 중해! 공기업은 계약직 경력이 있어야 정규직 뚫고 들어가기도 수월해. 하다못해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면접관으로 들어오는 분들 안면이라도 틀 수 있어.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그리고 누나가 가서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면서 어필할 수 도 있는 기회고. 현실적으로 공기업 계약직은 타기관 갈 때도 무조건 도움돼. 보건소 행사 당장 못 간다고 해. 알았지?"


핸드폰 너머로 동생한테 머리 딱콩 맞았다. 아무튼 그렇게 전화를 끊고 보건소 주무관에게 행사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네? 그날 휴가 쓰신다고요? 왜요?"


휴가 쓰는데 개인적인 사유까지 너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데.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그날 행사 참석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직접 시청 주무관님한테 전화해서 말씀하세요. 저는 전달 못하겠네요."


역시나 내 거절 의사를 듣고 마땅치 않다는 듯한 보건소 주무관의 반응을 보아하니 계약직 면접을 꼭! 보러 가야겠다는 다짐이 굳게 다져졌다. 그렇게 시청 주무관에게도 행사 불참 의사를 밝혔고 행사 당일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블라인드로 진행됩니다. 면접장 들어가시면 본인 이름, 학력, 나이, 출신지역 등 개인 신상을 알 수 있는 정보를 말하시면 안 됩니다. 따라서 이름 대신 부여된 수험번호를 사용하시길 바라며, 면접과 관련된 내용을 타 지원자에게 누설할 시 본인과 당사자 모두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을 사전 고지 드립니다. 면접은 약 20분간 진행될 예정이며 앞선 면접이 끝나는 대로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면접 대기실에서 인사담당자에게 공지사항을 듣고 있으니 긴장감이 확 올라왔다. 그리고 면접장에 순서대로 들어가 면접을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이번에도 첫 번째 순서로 면접을 봤다. (나는 왜 항상 1번 일까.)


"지원하신 사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어떤 역량이 이 업무를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한 분씩 말씀해주세요."


역시나 질문의 방향이 사기업과는 달랐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곳인 만큼 사업의 이해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랐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아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일하며 그 일은 왜 해야 하만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저는 보건소에서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방문 영양사를 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3차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게 된 환자 분들은 퇴원 후에도 계속해서 의학적, 영양학적 관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환자들도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에서 케어가 가능하게 된다면 3차 의료기관의 재입원율을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 개인이 일상생활에 복귀를 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나아가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업에 대해 관련 기사와 논문을 열심히 읽고 간 터라 답변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 실제로 보건소에서 느꼈던 점이기 때문에 진실된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 답변 뒤로도 내가 얼마나 이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인재인지 열심히 어필을 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는 다시 보건소로 출근을 해서 열심히 방문을 다녔고, 일주일 뒤 면접 결과 발표가 났다.


띠링-


'새부리 지원자님, 2019년 제4차 위촉직 면접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이후 일정은 송부된 메일 확인 바랍니다.'


최종 합격.

드디어 보건소 계약직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보건소 탈피를 위해 목표로 했던 공공기관에, 비록 정규직은 아닐지라도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고, 그 즉시 보건소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주무관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겠습니다."


역시 퇴사는 짜릿하다.


"네? 뭐 어디 이직하시나요?"

"네. 다행히 좋은 곳에 붙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어디요?"

"@@@@입니다."

"그런데가 있어요? 처음 듣는데. 정규직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래, 어디까지 무시하나 보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에요~ 계약직입니다."

"네? 계약직이면.. 굳이 뭐하러 가세요?"


"제가 가고 싶던 곳이라서요. 그럼 저는 방문 가야 해서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또다시 퇴사하길 잘했다 싶은 생각을 굳건히 다지게 해주는 주무관이었다.


출근 마지막 날, 점심시간에 과장님과 팀장님을 포함하여 다 같이 점심 회식을 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저희도 많은 도움받았습니다. 이번에 이직하신다고 들었는데 가시는 곳이?"

"@@@@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보겠네요. 주무관님, 이제 주객이 전도됐어~ 우리가 잘 보여야 해~"

과장님께서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하하.."

내내 나를 무시하던 주무관의 어색한 웃음에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꼬시다~)


"가서 어떤 사업 담당하시는 거예요?"

"@@@@사업입니다."


"어머, 그럼 주무관님 지금 담당한 사업인데 도움 많이 받겠다. 다행이다. 주무관님~"

팀장님은 잘 보이라는 듯이 주무관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 그런.. 가요..?"

"그래. 선생님 가시는 곳이 우리가 연간 계획 제출하거나 사업 평가받을 일이 많은 곳이야. 그래서 통화할 일도 많고, 잘 됐다~ 주무관님~ 아는 사람 생겨서."


이제 막 공무원이 된 주무관은 뭘 잘 몰랐던 눈치다. 나름 제대로 된 복수를 한 기분이었다.

보건소에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기 전 주무관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주무관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일 저런 일 많았는데 덕분에 일하면서 많이 도움받았습니다."


사실 속마음은 '너 이제 안봐서 속시원해.'였지만.


"아.. 네.. 저도 뭐 그동안 감사했어요."

"가면 저도 도움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모르는 것 있으면 주무관님께 많이 여쭤볼게요. 전화 잘 받아주세요~"


지금은 내가 이긴 것 같아도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식으로 만날지 모르는 게 사람 인연이다. 게다가 그녀가 한 '무시' 덕분에 더 좋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악연이라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내 남은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 필연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나는 보건소를 떠났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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