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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Jun 17. 2021

나를 무시하는 동료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7)


"안녕하세요~ 보호사님 저희 왔어요."


그날도 늘 방문하던 어르신 댁에 복지사 선생님과 찾아갔다. 그곳에는 주간에 상주하시는 요양보호사님이 계셨다.


"오셨어요? 할머님 안에 누워계셔요."


"네. 어르신~ 저희 왔어요. 잘 지내셨죠?"


나와 복지사 선생님은 어르신이 누워계시는 방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요양보호사님은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계셨다.


"어~ 나 일하러 왔지. 아~ 여기 지금 보건소에서 여자 둘이 나와서 수다 떨면서 놀아드리고 있어."


못 들은 척 웃으며 어르신과 상담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선생님, 들으셨어요? 우리 보고 수다 떨면서 놀아드린다고. 너무하다~ 너무해~"


"어~ 들었어.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놀아드리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니까 무슨 공무원증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 달라니까, 참."


내가 보건소로 취직한 이유는 단순했다. 임상영양사 시험을 준비하며 돈을 벌 수 있을 정도의 업무강도를 원했기 때문이고 사회적인 대우가 조금은 불편할 지라도 단체급식 영양사 때와는 다르게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충분히 공부할 만한 체력이 있었다. 덕분에 임상영양사 시험 준비는 순조로웠고 결과적으로는 합격을 했다. 임상영양사 시험공부를 하다 보니 머릿속에 잔뜩 든 이 지식을(시험용 휘발성 지식일 지라도)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대학병원의 인턴 영양사 공고가 뜨는 데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보건소 영양사는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한 달 만근을 하면 월차 개념으로 하루씩 휴가가 생겼다. 나는 그것을 잘 모아두었다가 면접 날짜가 잡히면 그 날짜에 맞춰 휴가를 쓰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무리를 했는지 (나는 괜찮았는데 몸은 안 괜찮았는지)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하나씩 모아두었던 휴가(며칠 되지도 않았음)를 병가로 다 쓰게 되었다. 그러다 면접이 잡히게 되었는데 당장 쓸 수 있는 휴가가 없었던 나는 고민이 됐다.


"선생님, 저 휴가가 이제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대학병원 면접이 잡혔거든요? 인턴 영양사이긴 한데.. 그냥 포기해야 하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대학병원 가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면접 보는게 무의미한 것 같아요."


"아니, 그걸 왜 포기해! 선생님 대학원 나온 이유가 대학병원 임상영양사 하려고 한 것 아니에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는 화들짝 놀라며 적극 반대를 하셨다.


"그건 맞는데.. 몇 번 면접 보고 나니 그냥 제 나이가 다른 지원자들보다 많기도 하고, 임상영양사 자격증이 있는데 인턴을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인턴을 해야 계약직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서요?"


"네. 그러니까 그게 아이러니한 거죠. 계약직 영양사를 뽑을 때 우대사항에 인턴 수료자라고 적혀 있으니 인턴은 해야겠고, 근데 임상영양사 자격증이 있는데 왜 인턴을 하려고 하냐는 식으로 물어보고.."


"내 생각에는, 나는 선생님 분야를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이번 면접도 포기하지 말고 보러 가요. 사람 일 모르는 거다~ 주무관님한테 잘 말해서 휴가 하루 미리 쓰게 해달라고 해봐요."


곰곰이 생각해봐도 면접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잡아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주무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잠시 이야기 좀.."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제가 지금 남은 휴가가 없는 것은 아는데, 혹시 하루만 휴가를 당겨서 쓸 수 없을까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잘못한 것은 없는데. 거짓말을 해야 하나, 면접 보러 간다고 하면 싫어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내가 여기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솔직하게 말해도 되려나.


"그.. 제가 인턴 영양사 면접이 잡혀서요."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이었던 주무관은 다소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 임상영양사 인턴이요? 어느 병원인데요?"


그게 왜 궁금하지? 아, 괜히 말했다.


"@@대학병원이요."


대답은 왜 한 거야.


"선생님, 지금 휴가 없으신 거 알죠? 그리고 제가 알기론 영양사 직업 중에 보건소가 꽤 괜찮은 걸로 아는데, 굳이 대학병원을 왜 가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잠깐만, 얘 봐라 선 넘네. 영양사 직업 중에 보건소가 괜찮다라.. 지금 내 월급이 얼마인 줄 뻔히 아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니 무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보건소에서 내 근무 조건은 "계약직"이었고, 내가 맡은 사업의 예산이 사라지면 그대로 내 자리도 없어지는 불안정한 자리였다. 그래서 계약기간도 연말인 12월까지 였다. 심지어 내가 대학원까지 나왔다는 것도 알고, 본인도 대학병원에서 과장급 간호사를 하다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임상영양사가 보건소 영양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 직업인지에 대해 뻔히 잘 알면서도 저런 소리를 하다니. (보건소 영양사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정도 급여면 영양사치고 괜찮지 않아요?"


내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내 월급은 200이 안됐다.


"주무관님 죄송하지만 하루만 휴가 부탁 좀 드릴게요."


네가 내 직업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것도 듣기 싫고, 그것 가지고 왈가왈부 더 떠들기도 싫었다. 그냥 내가 원하는 말만 하고 그 기분 나쁜 자리를 마무리해버렸다.


며칠 뒤, 주무관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팀장님께 정~말 열심히 부탁드려서 하루 휴가 먼저 쓰실 수 있게 말씀드렸어요. 면접 다녀오시면 돼요."


주무관은 엄청 큰일을 해줬다는 듯이 말했다. 나한테 잘 보이라는 건지.


"아, 그리고 면접 결과 나오면 저한테 꼭 알려주세요. 저희도 사람 뽑아야 하니까. 모집공고 내고 사람 뽑으려면 오래 걸리거든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됐지만, 뭔가 자꾸 선을 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튼 덕분에 나는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면접 당일, 면접장에 도착하자 몇몇 지원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들 나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면접은 6명이 한 조가 되어 들어갔다. 나는 첫 번 째 순서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면접관으로는 영양팀장님 한 분과 의사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1번 지원자님은 임상영양사 자격증을 따셨네요?"


"네. 졸업하고 영양사 경력이 있어서 바로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인턴 영양사를 하려고 하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을 하셨다.


"아무래도 대학원과 시험을 통해 배운 이론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임상영양사를 시작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인턴 영양사 과정을 통해서 실무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긍하는 듯한 끄덕임을 보시며 간단한 메모를 하셨다. 그리고 영양팀장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나이가 좀 있는데 인턴으로 들어오면 다른 선배 영양사들이 나이가 어릴 수 있어요. 불편하지 않겠어요?"


"저는 사실 대학원에 갈 때부터 동기들 그리고 선배들보다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내내 큰 문제없이 잘 지냈고 제가 인턴 영양사로 들어가게 된다면 선배 영양사님들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살갑게 먼저 다가가는 등의 노력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 나이. 나이가 문제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게 면접은 끝이 났다.


"1번 선생님은 면접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말씀하시는데 차분하게 이야기를 잘하셔서 너무 부러웠어요."


"하하.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면접 경험이 많아서.. 그래 보였나 봐요."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 면접을 본 지원자들에게는 나의 면접 보는 모습이 그리 신기했나 보다. 저렇게 느꼈다고 하니 왠지 이번에는 붙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 면접 잘 봤어? 선생님은 야무져서 붙을 것 같아~ 여기 있을 사람 아니야."

"이번에는 꼭 붙었으면 좋겠네요. 보건소에다가 면접 보겠다고 그렇게 소문을 내고 갔으니. 안 그래도 오늘 오후에 결과 나와서 확인해보려고요."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거니와 추측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이'이겠거니 싶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인턴 영양사 면접에서 세 번째 탈락이었기에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선생님, 붙었어요?"


대뜸 사무실에 찾아와 대놓고 결과를 물어보는 주무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아니요."


"아~ 아쉽네~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저는 모집공고 준비 안 해도 되겠네요. 선생님, 보건소 영양사 계속하세요. 좋잖아요."


복지사 선생님이 내 눈치를 슬쩍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리고 선생님, 시에서 자문회의 와달라고 연락 왔어요. 내일 시청으로 출장 다녀오시면 돼요. 제가 안 가니까 다녀오면 저한테 무슨 내용으로 회의했는지 다 보고하세요."

 

그렇게 자기 할 말을 쏟아내고 주무관이 떠난 자리에서 복지사 선생님이 나를 위로해줬다.


"선생님, 기회는 많아.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선생님은 분명 좋은 데로 갈 것 같아. 여기 있을 사람 아니라니까 선생님은!"


나는 월 200도 못 받는 계약직 영양사로서 종종 사업기획과 관련된 영양 쪽 자문을 하기도 했고, 시에서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니 만큼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붙은 연구진들과 하는 회의에 불려 가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어르신들 대상으로 영양상태를 진단하는 도구를 리뉴얼하여 전산을 개정하는 작업도 일부 참여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단가 대비 효율이 좋은 계약직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독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 가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실에 화가 났다. 게다가 내 보기엔 너나 나나 비슷한데 계약직을 관리 감독하는 주무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직업과 나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자체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생겼다.


'그럼 내가 더 위로 가면 되겠구나.'


갑자기 이 현실과 상황들을 이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를 빠득빠득 갈며 보건소 경력과 나의 학력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공공기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의 리스트를 뽑아 홈페이지를 들어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내가 갈 수 있는 곳인지, 채용공고는 언제쯤 올라오는지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형광펜으로 한 공공기관 이름을 찐하게 칠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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