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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Jun 11. 2021

대기업 영양사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그것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6)



보건소에서 일했던 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모든 생각의 끝은 ‘열악함이라는 단어로 마무리되었다. 대기업 영양사로 근무하던 시절과 비교했을  극명하게 대비되어  열악하다고 느꼈던  같은데. 아무튼 이것이 무슨 말인지 차근히 설명해 볼까 한다. 나는 계약직 영양사로 근무했었다.


‘짜긴.. 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던 중 급여를 확인하며 눈물을 머금었었다. 평생직장을 생각하고 온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월급으로 서울에서 사는 것은 택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하다면 보건소 채용공고를 확인해 보시길..)


첫 출근 날, 팀장님, 과장님, 소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주무관님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향했다.


“지금 아직 정리가 안 돼서, 여기가 원래 창고로 쓰던 곳이긴 한데~ 이것들 좀 같이 정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사무실이라고 불릴 공간의 문을 열자 오래된 나무 책상 위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앉아있었다. 심지어 사무실 앞 공간은 체력단련실이라 운동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못 가고 유리문 너머로 수업하는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해야 했다.


‘그래, 뭐. 대기업 다닐 때도 사무실은 비좁고 열악했지.’


이런 생각을 하며 치우자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첫 출근이라 곱게 차려입은 정장 소매를 걷어올리고 힐을 신은 채 먼지 쌓인 박스를 치우고 청소를 했다. 그렇게 그 공간이 사무실이라고 불릴 만하게 모양새를 갖추는 데에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첫 출근 날이니까 팀장님하고 같이 식사하시죠?”


정장에 붙은 먼지를 털면서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 함께 출근을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이건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최소한 사무실 정리는 해놓고 부르지.. 첫날이라고 구두에 정장까지 신고 왔는데 오자마자 무거운 짐부터 나르게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아요? 그렇죠?”


그제야 나도 이건 좀 아니지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힘써가며 짐은 옮겼고 내 정장은 더러워졌다. 하지만 뭐.. 이 정도 도와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식사 후 우리 팀 주치의 선생님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고 본격적으로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저희는 방문 간호사 선생님들이 찾아가는 대상자 중 복지나 영양 쪽으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환자를 집중적으로 돌봐드리는 건가요?”


“네. 그래서 내일부터 한 주 동안은 수습처럼 저랑 같이 방문하시면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보셨으면 해요. 특별히 영양사 선생님께서 봐주셨으면 하는 어르신들도 많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빨리 와주셨으면 했어요.”


그렇게 나는 관내의 모든 동을 샅샅이 다니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곳으로 찾아가는 ‘방문 영양사’가 되었다.


첫 출장 날, 보건소 주차장에서 만난 출장용 차를 보고 다시 한번 열악함을 느꼈다. 형광 연두색의 초소형 마티즈. 도로를 달리다 옆에 큰 화물차라도 지나가면 그대로 뒤집어질 것 같은 작아도 너무 작은 마티즈를 타고 출장을 나가게 되었다.

 

“자, 출발할게요~”

“오늘 가시는 분은 어떠신가요?”

“제가 이 분은 진짜 의료적인 도움 말고 영양과 복지의 도움이 절실해서 선생님들 오시면 꼭 케어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초소형 마티즈가 의외로 출장을 다니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보통 보건소에서 찾아가는 어르신들은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이다 보니 골목 깊숙한 곳에 사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차가 아주 작은 덕분에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잘 다닐 수 있었다.


"할아버님은 국가유공자이시고 결혼도 하셨었는데, 젊었을 적에 어떤 사정으로 따로 살게 되셨다고 해요. 그리고 마음을 잘 안 여시는 분이라 저도 친해지는데 오래 걸렸어요. 선생님들 처음 뵙는 분이라 아마 데면데면하실 텐데 말씀은 무뚝뚝하게 하셔도 정이 많으시거든요."


주치의 선생님께서 그 간 얼마나 신경을 쓰시고 어르신께 마음을 드렸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똑똑똑'


"어르신~ 계세요~ 보건소에서 왔습니다~"

"예~"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


"저희 들어갈게요~"


주치의 선생님을 필두로 나와 복지사 선생님이 어르신 댁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싱크대 하나 들어가는 부엌과 변기만 하나 있는 화장실, 이와 분리되어있는 방 한 칸에는 작지만 이것저것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새로운 선생님들하고 같이 왔어요."

어르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쩌면 살짝 경계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셨고, 복지사 선생님께서 먼저 인사를 하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복지사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도 따라서 최대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양사예요. 어르신 집이 너무 깔끔한데요?"


"우리 어르신이 성격이 엄청 깔끔하시고, 젊으셨을 때는 엄청 멋쟁이셨어요~"


주치의 선생님께서 맞장구를 쳐주셨다.


"그냥 이래 놓고 살아요~ 혼자 산다고 너저분하게 사는 것도 싫고, 원래 내가 더러운 걸 못 봐요."


어르신은 경계하던 표정에서 살짝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셨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르신 보통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뭐 복지관에서 매일 반찬하고 가져다주는데, 소용이 없어. 내가 이가 없어요, 하나도. 그래서 저런 거 가져다줘봤자 먹지를 못해."


집 근처 복지관에서 어르신께 반찬배달 서비스를 해드리고 있었지만 이가 성하지 못해 씹는 것이 힘든 어르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방문 영양사를 하면서 만났던 어르신 중에는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았고 복지관에서 하는 배달 서비스의 허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채소 반찬도 씹기 어려우실 것 같은데 오늘은 뭐 드셨어요?"


"나는 맨날 똑같아요. 사리곰탕면을 오래 푹 삶듯이 끓이면 면이 퍼지잖아요. 그럼 많이 안 씹고 넘겨도 소화가 잘돼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더 잘 드셨으면 좋겠는데. 어르신과 대화를 하다 보니 가장 근본적인 영양문제는 '저작곤란'이었다.


"어르신 그러면 틀니를 하시면 식사하시는데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틀니요? 그거 하기 싫어요. "

"틀니 하시면 복지관에서 오는 반찬도 드실 수 있고 맛있는 것도 편하게 드실 수 있는데~ 하시면 좋겠어요."


"맞아요. 어르신, 틀니는 국가에서 비용 지원해드리는 사업도 있어서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사실 저작곤란이라는 영양문제가 파악이 되어도 틀니를 해드리는 것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콜라보(?)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곤 했다.

 

"그래도 나는 싫어요. 예전에 치과의사가 아주 나를 무시하고 기분 나쁘게 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요."


어르신의 자존감을 건드렸던 사건이 있었나 보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이후로도 여러 번 찾아가 계속해서 어르신을 설득하였다.


"어르신, 저희 또 왔어요~"

"오늘도 사리곰탕면 드셨어요? 커피도 한 잔 하셨고?"

"예~ 영양제는 준 거 다 먹었어요."


당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단백질을 보충해드리기 위해 마시는 종류의 보충식품을 제공해드리고 있었다.


"우와~ 잘하셨어요. 제가 챙겨 드리는 것 잘 드시니까 기분이 좋네요~"

"내 생각해서 무겁게 가지고 오는데 열심히 먹어야죠."


"어? 그런데 어르신 이 화분은 저번부터 계속 있던데 빨간색 이건 뭐예요? 열매인가?"


어르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게 누가 버리겠다고 여기 집 앞에 내놨더라고. 근데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꼭 내 모습 같아서, 죽은 것 같았는데도 들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물을 꼬박 줬더니 저렇게 다시 살아났잖아."


어르신 집 앞에는 좁은 골목이 있었다.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에는 수십 개의 전깃줄이 얼기설기 뒤섞여 있는 전봇대가 하나 있었다. 각종 오래된 전단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전봇대 아래 검은색 플라스틱 화분이 놓여 있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어르신 이거 검색해보니까 꽃이래요. 사진 보세요. 그렇죠?"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줄기마다 달려있던 빨간색은 다름 아닌 '꽃'이란다.


"오.. 이게 꽃이에요?"


앉아만 계시던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셔서 뒷짐을 진채 몸을 살짝 숙이시고 화분을 유심히 살펴보셨다.


"어.. 여기 보니까 이 화분은 꽃피우는 게 정말 어렵다네요. 꽃을 보는 것이.. 힘들다.. 3~4년에 한 번 피운다.. 우와! 어르신 정말 대단하시다. 어르신이 사랑도 주고 물도 줬더니 꽃을 피운 건가 봐요~"


말없이 화분을 살펴보시던 어르신께서는 갑자기 서랍장을 뒤적뒤적하셨다.


"뭐 찾으세요?"

"아니.. 뭐 보여줄까 하고."


어르신은 오래된 서랍장에서 모서리가 바랜 두터운 사진첩 하나를 꺼내놓으셨다.


 "이게 나 젊었을 적 사진들."

머쓱해하시면서도 자랑을 하고 싶으신지 나와 복지사 선생님이 보기 좋게 사진을 돌려주셨다.


"어르신 진짜 멋쟁이셨네~ 이건 누가 보면 요즘 사진이라고 하겠어요~ 나팔바지도 입으시고."


복지사 선생님의 너스레에 어르신은 함박웃음을 띄우셨다.


"이 사진 보세요. 이게 내가 30대일 거야."

"어머. 어르신도 장발이셨네~ 심지어 위아래 청청 패션!"

"내가 이때 쓰던 모자가 저기 걸려있는 것, 저거예요."


그렇게 현란한 패션을 자랑하는 젊은 시절 어르신 사진을 보며 농담도 주고받다 보니 다음 방문을 위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이고, 이렇게 저희 위해서 사진도 보여주시고 감사해요~ 재밌게 잘 봤어요. 저희는 이제 또 다른 집에 가봐야 해서 가볼게요."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려는 찰나에 어르신께서 말을 이어갔다.


"저기, 그.. 틀니 아직도 할 수 있어요?"


나와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적 환호를 질렀다.


"그럼요~! 치과에도 주치의 선생님이 같이 가주시기로 했어요."


"언제 가면 돼요?"


그렇게 어르신과 다음번에는 꼭 같이 치과에 가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후에 집을 나섰다. 방문을 마치고 보건소로 돌아가는 길에 복지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샘은 복지 전공했어도 잘했겠다."

"제가요? 저는 헌신의 마음이 없어서.. 안돼요 선생님~"

"아니야~ 선생님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대학병원에도 있었고 구청, 센터 이곳저곳 많이 일해봤는데 선생님처럼 사람한테 잘 다가가는 것 쉽지 않아~"


사회생활 선배님의 칭찬을 듣고 나니 괜히 민망하여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방문 영양사로 취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낮은 곳에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배우라는 뜻이 아녔을까. 열악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일하더라도 가치와 보람의 크기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클 수 있구나. (그렇다고 열악한 환경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고.) 다음 방문 때는 어르신께서 새로 한 틀니를 보여주시며 자랑하시겠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세어 나왔다.



이번 주는 일이 바빠(어쩌면 핑계..) 글 발행이 조금 늦었네요.. 벌써 16주 차 매주 1개씩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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