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5)
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되었다. 막 학기에는 보통 수업을 1과목 정도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졸업논문에 매진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나는 막 학기 초반에 졸업논문을 마무리했다. 학점, 실습, 연구, 졸업논문, 졸업시험, 영어 점수 등에 치여 이래저래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드디어 졸업식 날 석사 학위기만 받으면 진정한 '석사 나부랭이'가 되는 것이다.
사회로 내동댕이 쳐 지기 전,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서류를 내보기로 했다. 학사를 졸업했을 2013년처럼 기약 없는 백수생활을 다신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급급한 마음으로 가릴 것 없이 원서를 냈다. 임상영양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1년 간의 영양사 경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우리 과 졸업생들은 '대학병원 인턴 영양사'로 많이들 취직한다. 하지만 나는 인턴 영양사는 지원하지 않았다. 우선 단체급식 영양사로 일 한 경력 덕분에 시험 자격 조건을 채울 수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을학기 졸업에는 소위 말하는 '빅 5 병원'의 인턴 영양사 채용공고가 올라오지 않아 기회가 된다면 연말에 지원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먼저 서울 소재 대학교의 영양 관련 연구실 연구원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의 면접이라 옷장 구석에 박혀있던 정장을 꺼냈다.
"오.. 살쪘나? 왜 이렇게 불편하냐."
몇 해 지나서 그런지 괜히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고(사실 정장은 거기서 거기긴 한데) 게다가 옷이 작아진 것도 같았다. (서른 넘으니 나잇살이란 게 찐다.) 결국 혤이에게 정장을 빌렸다. 다수의 면접 경험으로 생긴 노하우 한 가지는 면접 복장은 입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고 갔다가 구겨지거나 잘못해서 뭐라도 묻으면 안 되니까(라고 쓰고 '입고 가기 불편해.'라고 읽는다.) 바리바리 싸들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러 간 대학교는 내가 대학시절 언니와 함께 살았던 동네에 있었다. 연구실은 대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고 면접 장소를 먼저 확인 후 다른 층 화장실에 들러 면접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굳이 다른 층에서 갈아입은 이유는 가끔 면접장소에 와서 복장을 갈아입는 것을 안 좋게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장소와 떨어진 곳에서 갈아입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다시 구직활동을 하는 면접자가 되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을 했지만 교수님께서 늦으셔서 방에서 잠시 대기를 했다.
"교수님이 수원에서 올라오시다 보니 차가 막혀서 조금 늦으신다고 하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연구원 중 한 분이 방으로 들어와 교수님 자리에 내 이력서를 놓고 나가며 양해를 구했다. 나는 책상 바로 앞에 앉아있던 터라 빤히 보이는 내 이력서의 증명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면접이라 떨릴 법도 한데 또 그렇지는 않았다.
"아,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늦어서 죄송해요."
몇 분 후, 교수님으로 추정되는 생각보다 젊은 느낌의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수업이 있어서 끝내고 오느라 좀 늦었네요. 아, 성함이...?"
"네, 새부리입니다."
"음... OO대 나오셨고, 그러면 OOO 교수님 방이셨겠네요?"
순간 아차 싶었다. 오늘 나의 면접은 교수님 귀에 들어가겠구나.
"임상영양사는 안 하시고 왜 연구실을 들어오려고 했을까요?"
"대학원에서 노인 대상 연구를 하며, 계속해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연구하고 계시는 부분도 관심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저런 뉘앙스의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교수님은 끄덕끄덕 경청하시는 듯했지만 뭔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셨다.
"근데 OOO 교수님 방에 있었으면 원체 교수님이 졸업생들 교육을 잘 시켜놔서 믿고 뽑을 만 한데.. 흠.. 그런데 아무래도 OOO 교수님이 안 좋아하실 것 같네요~"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학사 때와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OOO연구실 출신"이라는 네이밍이 따라다녔다.
"우리 연구실에서 일하려면 교수님 허락 맡고 와야 선생님이랑 같이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선배 교수의 제자를 연구실에 데려와 연구원으로 쓰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면접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연구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방금 OO대 연구실 면접 봤는데 글쎄 교수가 우리 교수님이랑 아는 사이더라고.. 당연한 건데! 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내일 연구실 가면 교수님이 나 불러서 뭐라 하는 것 아니야?"
"연구실 나오면 교수님한테서 벗어나는 것 같아도 아니야. 결국 그 업계에서 계속 일하면 어쩔 수 없이 다 엮이고 만나게 돼 있어~ 그게 바로 대학원생의 숙명이란다~"
'그렇구나. 대학원이 끝이 아니구나. 나는 그들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구나..!'
그래도 나는 취업을 하고 싶었다.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싶었고 교수님 손아귀에서는 못 벗어날지라도 연구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의 소속감을 당장 벗어던지고 싶어 또 다른 면접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3차 병원의 검진센터 연구실의 연구원이었다. 사실 나는 연구원이 하고 싶진 않았는데 이름 있는 병원이라서 지원했다. 이번에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면접복장을 갈아입고 병원의 행정동으로 향했다.
'면접 대기 장소 : 5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리자 굳게 닫힌 철문에 각종 행정부서들의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직원카드를 찍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전화를 해볼까 하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는 와중에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직원 한 분이 나의 복장을 보고 문을 열어주며 들어오라는 의미의 제스처를 보내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사무실은.. 다 똑같구나.'
사무실 특유의 텁텁한 공기를 마시며 살금살금 인재팀을 찾아갔다. 팀에 도착했지만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쭈뼛쭈뼛 거리며(사실 쭈뼛거릴 면접 짬은 아니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면접자는 뭔지 모를 짠한 태도가 필요하다.) 담당자를 찾았다.
"저... 오늘 면접 보러 왔는데.. 혹시.. 담당자분이.."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대답을 해달라는 의미로 말 끝을 흐리며 사무실 가장 끝자리에 앉아있던 이미 많이 지쳐 보이는 한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며 안내를 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오늘 연구원 면접 보러 오신 거죠?"
"넵."
"이쪽으로 오세요."
담당자를 따라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작은 회의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지원자 분도 오시면 함께 면접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대기해주세요."
담당자가 나가고 홀로 남겨진 대기실에서 미리 외워온, 사실은 5년 전부터 우려먹는 자기소개를 기계처럼 달달 외워보았다. 그리고 예상 질문에 준비했던 답변들을 차례대로 읊조려보던 중 다른 지원자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비슷한 톤과 말투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각자 면접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고, 잠시 후 담당자가 들어와 면접장소로 우리를 인도했다.
"면접장소는 3층만 위로 올라가시면 되는데 엘리베이터가 오래 걸려서 걸어 올라갈게요."
높은 구두를 신은 채 영차영차 3층 계단을 올라가자 비서실을 갖춘 병원장실이 나왔다.
'병원장실은 또 처음 보네..'
"면접장소는 이 안이고, 안에는 총 2분의 면접관님이 계십니다. 센터장님과 연구담당 책임교수님이시고요. 들어가면 간단히 자기소개한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띵동.
안에서 들어오라는 의미의 벨이 울리고 나와 지원자는 차례대로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장 안에는 긴 타원형의 테이블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면접장에서 몸을 가려줄 수 있는 테이블이 앞에 있으면 꽤 큰 의지가 된다. 손이나 다리 자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덕분에 답변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한(?) 면접이 되는 것 같다.
"새부리님은 대학원 졸업하기 전인데, 졸업하고 나서 첫 직장으로 연구실을 선택하셨네요?"
"네. 대학원에서 노인 대상 연구를 진행했고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보고 싶어 연구원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했던 말 또 하기. 면접이란 것이 그렇다. 물어보는 것은 사실 거기서 거기고, 내 답변도 거기서 거기다.
"저희가 이번 연구에 영양분야가 포함되면서 관련 전문가가 없어 새로 뽑으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영양 전공자가 꼭 필요하긴 합니다만.. 통계 프로그램은 돌릴 줄 아시나요?"
"대학원에서 통계 수업을 들었고 논문도 국건영자료를 활용해서 통계 돌렸습니다."
"아, 직접 돌리셨어요?"
"네. 직접 돌렸습니다."
가끔 논문을 쓸 때 통계를 돈 주고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저런 질문을 한 듯했다. (통계표 하나당 몇십만 원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쨌던지 간에 나의 연구경력이 부족한 점이 못내 아쉬운 듯 보였다.
"지원자님은 현재 OO대 연구실에 계시는데 거기서는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이어서 면접관은 내 옆 지원자에게 질문을 했다.
"제가 처음 연구실 들어갈 때는 A 연구를 하기 위해 들어갔고, 이후 B연구가 시작되었는데 교수님께서 B연구도 같이 해보자고 하셔서 현재는 A연구가 종료되고 B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이 끝나고 다른 지원자의 답변을 듣고 있자니 나는 또 석사로 사회에 막 나온 햇병아리 수준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분은 이미 연구경력도 많았고, 석사를 하며 통계를 이제 막 배운 나에 비하면 통계 분석 실력도 월등히 뛰어날 분이셨다.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왠지 저는 선생님이 되실 것 같네요. 영양 쪽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걸 보니~"
"하하.. 그런가요? 저는 근데 경력이 너무 없어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도 뭐 많은 편은 아니라 저랑 별반 차이 없으세요."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하하.. 아무튼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업계가 좁아서 분명 일하다 보면 다시 만날 것 같아요. 그럼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결과는 탈락!
영양 전공자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비루한 실력이지만 나를 뽑지 않을까 했던 실낱같은 기대를 했었기에 그만큼의 실망도 했다. 그들에게는 병아리 영양 전공자보다 경력 연구자가 더 필요했나 보다. 당최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란 말인가요? 계속된 탈락의 고배를 마시자 이번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 임상영양사 시험도 봐야 하는데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경력도 쌓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보자.'
해서 찾기 시작한 곳이 바로 '보건소'이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영양사의 급여조건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익히 보고 들어 알고 있었지만 '공공기관'이라는 메리트. 겪어보지 않았지만 일은 많이 없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모든 보건소 홈페이지의 채용게시판을 들락날락하며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보건소의 '영양플러스 사업' 담당 영양사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영양플러스 사업이란, 영양상태가 취약한 임산부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영양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영양교육과 특정 영양보충 식품을 일정기간 제공해주는 사업이다. 나는 대학교 시절, 영양사 실습으로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 사업을 경험해본 바가 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보며 면접을 보러 보건소로 향했다. 앞선 면접들과 달리 보건소 면접 대기실에는 여러 명의 대기인원이 있었다. 개중에는 연세가 있으신 분도 계셨고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듯한 분도 있었다.
'보건소 영양사 자리가 꿀이라더니 지원자가 많구나..'
대학원 내내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노인영양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영유아에 대한 영양지식은 부족한 편이었기에 벼락치기 공부하듯이 이것저것 외워갔더랬다. 면접순서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가니 총 3분의 면접관이 계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장님 2분에 영양플러스 담당팀의 팀장님 1분이지 않으셨을까 싶다.
"영양플러스 사업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가요?"
"네. 저는 대학교 영양사 실습 때, OO구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 사업을 경험해본 적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실습을 주로 하셨나요?"
"사업 대상자 가정에 직접 방문하여 제공된 보충식품의 저장상태를 확인하고 사용방법 등을 안내해드리는 일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보건소 내소 영양교육 진행을 보조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신생아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전문지식을 물어보기 시작하였는데, 다행히도 관련 내용 공부를 했던 터라 답변은 할 수 있었다.
"생후 28일까지를 신생아로 분류합니다."
"그럼 나트륨을 많이 먹으면 왜 안 되나요?"
'갑자기요?'
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영유아 발달과 관련된 질문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만성질환관리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을 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질문 자체가 너무 포괄적이라 제대로 된 질문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면접자도 면접 분위기에 따라 합격을 하더라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생기기 마련인데 여긴 이 질문 때문에 좀 의심스러워졌다.
"나트륨은 몸에 필수적인 무기질이나 과다 복용할 경우 체내에서는 평형을 맞추기 위해 수분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갈증이 생기게 되고 많은 물을 마시게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수분 섭취로 인해 나트륨 배설이 잦아지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만 나트륨 섭취가 지속적으로 과다하게 되면 혈압이 상승하게 되고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쨌든 면접 질문이니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
"혹시 대학원을 이번에 졸업하시는 것 같은데 앞으로 진로를 보건소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올해 임상영양사 시험을 볼 예정입니다. 임상영양사 자격증을 따고 보건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뽑히고 봐야 하니 무조건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본다. 사실 '임상영양'과 '영양플러스 사업'은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연관 있어 보이게 말해야지 뭐 별 수 있나.
"보통 임상영양사는 어디로 많이 취직을 하시나요?"
아무래도 내 대답이 의심스러웠나 보다.
"대학병원에 영양팀으로 많이 갑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네.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역시나 탈락!
탈락의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여지는 곳이었다. (맥락에 맞지 않는 질문을 한 것도 어차피 맘에 걸렸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대학원에서 실습을 할 때 신생아 중환자실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나오는 길에 선배 임상영양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기억났다.
"신생아나 영유야 영양치료는 본인이 애 낳고 나면 더 잘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미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있으신 선배 영양사님이 되시지 않았을까 예상하며 나는 또 다른 보건소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 지원하게 된 분야는 그동안 보건소에서 볼 수 없었던 사업 내용이었다.
'관내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이 되어.. 아.. 방문을 한다고? 집에? 신기하네... 방문 영양사는 본 적 없는데.'
그래도 내가 계속 공부했던 노인영양이라 자신이 있었다. 면접 당일 대기의자에 앉아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 내용처럼 영양사 외에도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면접을 보러 오신 듯했다.
"오늘 면접은 먼저 영양사 선생님들 차례대로 들어가실 거고요, 다음으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들어가실 거예요."
나처럼 면접을 보러 온 영양사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헐레벌떡 오셔서는 나에게 말을 거셨다.
"영양사시죠?"
"네~"
"이거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집에 직접 방문한다고 본 것 같은데 들어본 적 있어요?"
"아니요.. 저도 처음 봤네요.."
"새부리님 들어오세요."
면접이 시작되고 첫 번째로 들어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역시나 면접관은 총 세분, 과장님 1분과 팀장님 2분이셨다.
"임상영양이 전공이면 뭘 배우나요?"
보건소에서는 임상영양 전공이 다소 생소한 분야인가 보다.
"병원에 있는 영양사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임상영양사는 주로 환자를 대상으로 영양치료와 상담 등을 합니다."
"전문 영양사 같은 거네요..? 임상영양사가 많나요?"
'진짜 모르는구나..'
"음.. 모든 상급 종합 병원에는 임상영양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하셨어요?"
"노인을 대상으로 노화와 영양소와의 관계에 대해 임상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효과가 있다고 나왔나요?"
팀장님들의 질문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과장님의 눈빛이 반짝이며 질문을 하셨다.
"아니, 진짜 결과가 궁금해서 그래요. 우리도 이런저런 영양제를 드리는데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 제공해드리고 있거든요."
잠깐 멈칫하는 나를 보고 과장님께서 답변을 재촉하셨다.
"네. 최종 결과로는 모든 군에서 유의하게 노화와 관련된 신체적 기능들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 하던 게 헛일은 아닌 거다, 그렇지?"
과장님은 이내 팀장님들께 동의를 구하며 만족스러운 듯한 끄덕임을 보이셨다.
"그러면.. 또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게 나는 과장님과 팀장님들이 사업을 운영하며 궁금했던 부분들을 해소해드리고 면접장을 나왔다. 내가 방금 본 것이 면접이었나? 자문이었던 건가? (자문할 짬은 아닌데..)
결과는 '합격'
수개월 동안 지속되던 탈락으로 '석사를 해도 취업 전쟁터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는구나.'라며 좌절하던 차에 겨우겨우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여러 번의 취업준비를 하며 가장 뼈저리게 와닿았던 말은 '될놈될'.
'될 놈은 된다.' 나는 저 말을 체념의 의미가 아닌, 나를 알아봐 주고 내가 필요한 곳은 꼭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나의 최종 정착지가 보건소가 아님은 확실했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로 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으로 취직하기 전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보건소 방문 영양사'로 아무도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