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9)
드디어 고대하던 첫 출근 날.
'세 번째' 블랙 앤 화이트 정장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역시나 사람으로 그득그득한 지옥철을 타고 '첫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 근처 역에 도착해 사람들을 토해내는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 차마 면접 때는 신경 쓸 겨를 없이 지나쳤던 회사 주변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래. 이게 회사지!'
대학교 교직원 식당에서 일했던 첫 직장, 동네 어귀의 보건소였던 두 번째 직장이 기억에서 스쳐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살짝 기분이 들떴다. 대기업에 입사는 했지만 대학교 업장에 발령나 작디작은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던 26살의 나,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나이 때문에 인턴 영양사로 병원에 들어갈 수 없어 좌절했던 30살의 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제 조금은 성공한 것 같다고 말해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규직원 교육장에 도착했다.
교육장에 도착하니 자리마다 이름이 붙어있었다.
'질병관리팀 새부리'
하얀 종이에 쓰인 검은 글씨뿐인데 괜스레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 사이에 내 옆자리로 같은 팀이 된 '동기'가 왔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주변을 살펴보니 신규직원 교육을 같이 받게 될 인원은 모두 9명이었다.
"같은 팀 인가 봐요."
나는 먼저 말을 잘 거는 편이다.
"그러게요. 가운데 분은 남자? 같죠?"
방금 막 온 동기와 내 자리 사이에는 또 다른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보아하니 남자 이름 같았다.
"저.. 자리 좀.."
그때 마침 책가방을 멘 남자 한 명이 대화를 나누던 우리 둘 사이를 가리키며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표하길래 나는 황급히 의자를 당겼다.
"생각보다 같이 교육받는 사람들이 많네요?"
"네. 9명? 어떤 분들은 저희보다 먼저 입사하신 분 같아요."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을 준비를 하는 남자 동기를 가운데 두고, 먼저 인사를 나눴던 여자 동기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두 분 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남자 동기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서열정리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은 자고로 나이부터 확인해야 맘이 편하다.
"저는 올해 31살."
"저도.. 동갑이에요."
책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끌어안고 처음 보는 누나들 사이에서 동공 흔들리며 불안해하던 남자 동기와는 동갑이었다.
"저는 나이가 좀 있어서~"
"여기는 호칭을 뭐라고 부를까요?"
"보통은 '님'자 붙여서 이름 부르고 하던데 여긴 왠지 보수적일 것 같아요."
서열 정리를 하고 나니 이번엔 호칭 정리가 필요했다. 때마침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3명(부산 사나이 그리고 세모와 다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다소 집에 가고 싶은 듯한 표정을 한 여자 동기 '세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는 보통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무슨 무슨 샘~ 이렇게요."
"아, 그럼 성함에 '선생님' 붙여서 부르면 되겠다."
나름 자연스럽게? 아니 인위적인가? 아무튼 그렇게 앞자리 동기들과도 통성명을 하고 우리보다 먼저 입사한 동기(?)에게 회사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교육시간이 되었다.
어딜 가든 신규직원 교육은 왜 그리 지루하고 힘이든지 모르겠다. 영양사로 취직해 합숙교육을 받았던 때에도 그렇고 이번 신규 교육도 그렇고. 그래도 나는 익히 들어 알고, 몸소 체험해서 알고 있었다. 신규직원 교육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먼저 들어와 회사생활을 시작한 세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여기 휴가 쓰는 것은 좀 자유로워요?"
자기 퇴사해도 동기모임에 빼먹지 말고 불러달라던, 그래 놓고 진짜 제일 먼저 퇴사한 동기가 물었다.
"다들 눈치 안 보고 휴가 잘 쓰시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이게 또 팀장님마다 성향이 달라서 당일에 휴가 내는 것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닌 분도 있고."
"그럼 칼퇴는 하나요?"
빠른 년생이었지만 그냥 친구 하기로 한 부산 사나이 동기가 물었다.
"일 많으면 야근하고 없으면 보통은 눈치 안 보고 칼퇴해요."
"혹시 다들 뭐 전공하셨어요?"
가장 막내지만 가장 센 권력을 쥐고 언니, 오빠들을 휘두르는 막내 동기 '다다'가 물었다.
동기들의 전공은 다양했다. 임상영양학을 전공한 나를 포함하여 보건행정, 치위생, 의학, 기록물관리, 경영 등. 생각해보면 계약직은 동기랄 것이 없는데 신규직원 교육을 함께 받은 덕분에 우리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교육이 끝난 후 각자 뽑힌 팀에 배정되어 함께 또는 따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팀에서 일하며 보건소를 대상으로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건소에서 일 할 때 담당 시청 사무관님을 뵌 적 있다.
"안녕하세요. 저 @@@ 보건소에서 일하던 영양사인데 기억하시는지.."
"어? 안녕하세요. 이직하셨군요?"
사무관님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굴을 보고 아는 체를 하셨다.
"네. 잘 지내셨죠?"
"저희야 뭐 늘 똑같죠. 영양사님을 여기서 뵐 줄이야. 신기하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하하. 제가 도움드릴 수 있는 것 있으면 좋겠네요. @@@ 보건소는 잘하고 있나요?"
"거기도 영양사님이 많이 도움 주고 간 덕분에 잘하고 있죠~ 그만두셨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한 거니 훨씬 잘되었네요!"
나는 계약기간 동안 보건소의 약 2 배가량 되는 연봉을 책정받았고 또한 계약 만료 후 정규직 공개 채용 전형에 지원하였다.
"아빠~ 뭐해~"
"집이지. 면접 잘 봤어?"
"나.. 이번에 정규직 될까? 나보다 잘난 사람 너무 많던데..."
"뭐가 잘 안됐어?"
"그냥 면접 보는데 다들 잘났더라고~ 경험도 많고."
"너도 대기업, 보건소, 공공기관, 대학원도 나왔는데 너처럼 경험 많은 사람이 어딨다 그래."
"그런가..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맨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새부리야, 아빠가 보기엔 넌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영양사로 보여."
수화기 너머로 이번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면 어때! 또 다른 곳 가면 되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밥 챙겨 먹어."
그리고 정규직 최종 발표 날.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화를 드렸다.
"아빠~ 엄마랑 같이 있어?"
"응. 점심 먹으러 나왔어~"
내심 전화한 이유를 아실 텐데 모른 척하시는 것 같았다.
"나 오늘 발표 났어.."
"흠흠.. 어떻게 됐어?"
"... 휴..."
"괜찮아~ 점심 뭐 먹을 거야. 맛있는 거 먹어야지?"
"응.. 자축하는 의미로 비싼 거 먹어야겠다."
"붙었어?"
"응! 최종 합격! 아빠! 나 드디어 취뽀했어!!"
"아이고~ 축하해~"
"축하해~"
"야 너네 엄마 길거리에서 신났다고 춤춘다."
"히히 엄마 아빠 고생하셨어요. 이제 한시름 놓으세요~"
"그래. 진짜로 맛있는 것 먹고! 고생했다~ 축하하고!"
그렇게 나는 정규직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처음 만났던 동기들은 각자 자기만의 길을 찾아 떠났거나 혹은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다. (물론 정규직 동기도 생겼다.)
누누 : 그때 기억나? 우리 처음 교육 같이 받았을 때. 나는 종이가 무슨 석고상인 줄 알았어.
새부리 : 그래. 맨 앞에 정중앙에 앉아가지고는 쉬는 시간에도 안 움직이고. 그래서 나는 '쟤랑은 절대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잖아.
종이 : 야 처음 온 날은 원래 그렇게 얌전히 있어줘야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회사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좋니? 너네가 사회생활을 아니?
다다 : 종이샘 배고파요? 초콜릿 줄까?
세모 : 나 집에 가고 싶어 얘들아. 내 말 듣고 있니?
처음 영양사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은 다소 우발적이었다.
평소 나는 20대 내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퇴사와 이직을 반복 했다고 생각해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며 많이 뒤처지고 있다고 자책하며 살았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내 지나온 20대가 꽤 가치 있어 보였다. 그러다 '브런치'라는 어플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고, 일기 쓰듯이 작가의 서랍장에 글을 쓰다가 '작가 신청'이라는 것을 해야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고 하기에 회사 점심시간에 2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곤 덜컥 '브런치 작가'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젠 영양사의 일을 하지도 않거니와 다시 할 생각도 없기 때문에 이런 내가 영양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야기를 써도 될는지 고민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어쨌든 다소 자전적인 글을 쓰며 내 20대를 되돌아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20대에는 여러 빌런들이 있었기에 -수백 명 손님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혼내던 점장님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감정 풀이를 하던 진상 검은 정장 학생('영양사가 일하면서 가장 열 받는 순간' 참고), 회사에 내 험담을 하고 다니던 동료('대기업 인사팀은 의외로 모르는 신입사원이 퇴사한 이유' 참고), 나와 내 직업을 무시하던 주무관('나를 무시하는 동료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참고)- 지금 이 자리까지 발전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빌런들 덕분에 다소 맹숭맹숭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에 재미가 더해진 것도 있고.
그리고 나중엔 글을 발행할 때마다 공감하며 읽어주는 구독자분들을 명분 삼아 한편 한편 글을 이어 나갔고 드디어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20편이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어쨌든 19편으로 끝나는 나의 '탈영양사 계획'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나의 20대의 기억이(+30대 초반) 끝났으니 30대 '탈직장 계획'은 언제가 될 까. 지금까지 새부리의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글을 찾아주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나는 사라지련다. (그리고 다른 재밌는 이야기로 돌아올 예정.) 내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모두들 탈직장 하길 바라며, 안녕히.
새부리와 누누, 다다, 종이, 세모의 회사생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인스타그램 @donrin_day 팔로 팔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