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광경을 마주한 쿠알라룸푸르의 첫날
본의 아니게 어제 CU편의점에서 산 간식거리로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지금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것인지 한국에 있는 것인지.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헷갈릴 정도의 편의점 식품들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니 고층 건물들 사이에 있었던 나의 숙소, 그리고 조금 돌아 나오니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쌍둥이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당당히 서 있었다. 이날은 휴관일이라 밖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예약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결국 페트로나스 타워는 올라가지 못했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 회사인 페트로나스의 사옥으로 1998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지상 88층 높이 약 452미터의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며, 한일전의 결과물로 알려져 있다. KLCC공원은 건물 뒤에 있는 것이며, 도로와 작은 분수광장이 있는 정문 쪽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은 일본 건설사가, 왼쪽은 우리나라 삼성건설이 지은 것이다. 삼성 건설이 더 늦게 건설을 시작했지만 완공은 먼저 했고, 41층과 42층 사이의 스카이 브리지 역시 우리나라 건설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정문을 통과하면 건물에 입점한 쇼핑몰인 수리아몰로 이어진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및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다문화 국가이다. 인구의 22% 정도가 중국계라서 음력설인 춘절을 크게 기념한다. 그래서 수리아몰을 비롯한 곳곳에 중국식 홍등과 중국식 장식이 가득하다.
이곳을 통과하면 KLCC공원으로 이어진다. 반대편의 작은 분수광장과는 달리 드넓은 대지에 아름다운 호수처럼 분수광장이 펼쳐지고 정해진 시간에 음악이 흐르면 분수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춘다고.
이곳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고 나서 어제 이곳에 도착하면서 신청한 반딧불+블루티어스 투어에 참가했다. 사실 투어를 신청하지 않고 시내만 돌아다닐까 했는데, 가이드북에서는 거의 쇼핑에 관한 내용밖에 없고 외곽지역은 교통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대해 너무 모르기도 했기에 투어를 참가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투어 참가 인원이 생각보다 많았다. 대형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투어여서 가이드의 안내와 주의사항을 들으면서 편안히 즐기면 되는 것. 아, 이래서 사람들이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모양이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말레이시아 국립 모스크 Masjid Negara. 인구의 60% 정도가 무슬림인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한다. 1965년에 문을 연 이곳은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곳에 입장할 때 신발은 벗어야 하고 여자는 머리카락과 팔다리를 모두 가려야 하며, 남자들도 반바지는 안된다고 한다. 입장할 때 입는 가운을 주는데 여자의 경우 희망할 때 히잡을 착용할 수도 있다. 착용해 볼 일이 없는 것이니 히잡을 선택했다. 가이드가 히잡을 씌워주었는데 마치 얼굴만 드러내고 목을 감싸는 긴 베일을 앞에서 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이 눌리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모스크의 내부는 생각보다 환하고 단정했으며 깔끔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모스크 중 하나로 최대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뾰족한 피뢰침처럼 보이는 형상이 있는 건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메르데카 118로 삼성물산의 작품이란다.
국립 모스크를 천천히 관람하고 난 뒤 투어버스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바투 동굴로 향했다. 바투 동굴은 힌두교의 성지로, 시바 신의 둘째 아들이며 전쟁과 승리의 신 무르간이 칩거에 들어간 동굴이라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시바 신은 첫째 아들인 가네샤와 둘째 아들인 무르간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 그것을 세 바퀴 돌고 오면 그를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무르간은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세상이라 하며 세상을 세 바퀴 도는 고행을 선택한 반면, 가네샤는 빈둥거리며 놀다가 아버지 시바 신 주변을 세 번 돌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한다(신화에 따르면 어머니였다고도 하니 전해지는 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만족한 시바 신이 가네샤를 후계자로 삼은 후에야 무르간이 세상을 세 바퀴 돌고 왔다. 형이 후계자가 된 것을 알게 된 무르간은 이에 분노하여 아버지를 떠나 이곳 바투 동굴로 들어와 칩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투 동굴은 힌두교 성지답게 인도계 사람들이 많다. 차에서 내리면 황금빛 무르간 동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동굴로 들어가는 계단 앞의 광장에는 힌두교 사원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서는 엄청난 비둘기 떼들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황금빛 동상 아래 힌두교식 사원, 그리고 비둘기, 또 하나는.... 원숭이다. 이곳의 원숭이는 조금 사나운 편이라 가급적이면 원숭이와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바투 동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회 동굴이다. 동굴까지는 272개의 계단을 올라야 들어갈 수 있다. 힌두교 신앙에서 정신적, 육체적 수련과 깨달음의 여정을 뜻한다는 이 계단은, 이곳의 사원들처럼 무지개색으로 칠해져 있다. 생각보다 약간은 가파른 이 계단에서는 이곳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을 늘 조심해야 한다. 몸집은 작지만 약간은 사납게 생긴 원숭이들을 피해, 계단의 가운데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데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계단 오르다가 더위 먹을 뻔. 계단의 끝에서 동굴이 시작되었다. 습하고 더운 계단을 올라와서인지 동굴은 상대적으로 서늘했다. 동굴의 천정은 무척 높아 답답한 느낌이 없다. 왼쪽에는 힌두교 사원이 있는데 아마 예배를 시작하는지 독특한 음악이 시작되고 있었다. 동굴 중앙을 가로질러 다시 계단을 오르면 천정이 뻥 뚫린 동굴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끼긴 했지만, 색다른 느낌이었다.
다시 동굴 중심을 가로질러 나왔다. 다시 그 272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곳곳에 함께 내려가는 원숭이들이 있어서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가파르게 느껴지니까. 중간쯤 내려오는데 습하고 더운 날씨 탓이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겨우겨우 계단을 내려오니 드넓은 광장에서는 비둘기와 원숭이,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투어버스로 돌아오니 시원한 물과 에에컨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반딧불과, 블루티어스라는 별칭을 지닌 수생 미생물을 보는 것이 이 투어의 핵심이지만 아직 저녁이 오기에는 너무나 환하다. 그래서 투어버스는 저녁 식사 전 몇 군데에 더 들른다. 그리하여 들른 곳이 작은 앙코르 와트라 불리는 스리샥티 사원. 이곳은 파괴의 신 시바의 아내 샥티 여신이 모셔진 사원으로, 다채로운 조각이 사원을 장식하고 있는 예쁜 곳이다. 실내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외부만 촬영했다.
스리샥티 사원을 나와 간 곳은, 사실 내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좋아할지 모르는 멍키힐. 셀랑고르 지역의 말라와티 언덕에는 은빛 긴 꼬리 원숭이 또는 검은 긴 꼬리 원숭이로 불리는 한 무리의 원숭이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곤 해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언덕에서 원숭이들이 뛰어 내려온다. 바투 동굴의 원숭이들보다 순하고 예쁘게 생긴 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가져온 먹이를 손으로 받아먹는다. 이 원숭이는 태어날 때는 주황색에 가까운 색이지만 커가면서 검은 털로 바뀐다고 한다.
말라와티 언덕에는 이곳을 소개하는 듯한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바투 동굴에서보다는 날씨가 좋아졌다. 저녁햇살까지 부드럽게 비쳐 들고 있었다. 반딧불을 보기에는 아직 이른 저녁이라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비슷한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이 들어가는 식당이라 음식은 입맛에 맞았고 혼자라면 먹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해가 점점 기울고 있었다.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거의 지고 어둑해질 무렵 배에 올랐다.
반딧불 투어가 시작되었다. 이곳의 반딧불이는 사자성어 '형설지공(螢雪之功)'에 나오는 큰 반딧불이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이곳의 반딧불이는 작은 종으로 나무에 붙어있다가 그 주변을 날아다니며 암컷을 유혹하는 작은 빛을 내기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반짝이 전구처럼 미약하고 예쁘게 빛난다. 아직 어스름이라 눈에 잘 띄지는 않았는데 하늘거리며 반짝이는 작은 빛이 가볍게 날아다녔다. 가이드가 한 두 마리씩 포획해서 투어팀 아이들의 작은 손에 담아주었다. 물론 포르르 바로 날아가버렸지만.
반딧불이를 만난 뒤에 배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가이드가 뜰채처럼 생긴 도구를 나눠주었다. 물을 거슬러 뜰채를 담그면 그곳에 있던 미생물이 푸르게 빛을 내기에 블루티어스라 불린다고. 조금 아쉬웠던 것은 지금이 우기라 강물이 탁해서 블루티어스의 푸른빛이 미약하게 반짝였다는 것. 그래도 신비했던 풍경이었다.
이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는 시간. 버스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안히 쉬었다.
마지막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의 야경.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아름다운 건물 앞에서 각자의 기념사진들을 남기고 투어팀은 해체. 원래 생각하지 않았던 투어였는데 너무나 즐거웠던 것 같다.
트윈타워 뒤쪽 KLCC공원의 분수가 음악소리에 맞춰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다. 멋진 밤이다.
내일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말라카 투어 일정이 잡혀있다. 이틀 연속으로 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조금 빡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말라카까지 혼자 다녀오기는 조금 피곤할 듯하여 선택한 투어인지라. 오늘처럼 즐겁게 잘 다녀올 수 있기를. 쿠알라룸푸르의 두 번째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