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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날

같은 듯 다른 조지타운 산책

by 낮은 속삭임

여행지에서는 꽤 잘 자는 편이다. 아마도 많이 걸어 다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일 쿠알라룸푸르로 떠나기 때문에 오늘 하루 페낭에서, 어제처럼 조지타운 도보여행을 다녀볼까 한다. 어제 편의점에서 구입한 먹거리로 가볍게 아침을 때운 뒤, 조지타운 시내로 향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시에드 알라타스 맨션. 이곳은 페낭 이슬람 박물관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보수공사 중인지 입구 쪽은 막혀있었다. 그래서 가이드북에 나온 사진처럼 전면만 촬영하고 이곳은 가볍게 지나치는 것으로. 이 앞의 공터에 르부 아르메니안 야시장이 열린다는데 아직 그 시간은 아닌 오전 시간대라 조금 한산하다.

길을 따라 올라와 얍콩시 앞의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얍콩시를 뒤에 두고 카피탄 켈링 모스크 쪽으로 향한다. 모스크 쪽으로 펼쳐진 구시가지를 따라 걸어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카피탄 켈링 모스크는 무굴 양식의 돔과 첨탑이 있는 모스크라 외부에서 찍은 모습이 예쁘다. 그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곳은 외관만 촬영하고 지나는 것으로.

사거리의 횡단보도에 신호가 언제 들어올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신호는 어느 정도 체계를 익힐 수 있는데, 우리와 운전방향이 반대인 이곳의 신호체계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쨌든 하얀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칠해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독특한 사원처럼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이곳은 페낭 힌두 사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마하 마리암만 사원이다. 힌두 사원은 오래전 인도에서 많이 들어가 보았으니 이곳 역시 외부만 살짝 찍으며 걸어보는 것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콴잉텐에 도착한다. 콴잉텐[觀音寺, 관음사]은 이곳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세운 사원으로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사원답게 사원 앞 광장은 사람들이 피우는 향의 연기가 매캐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사원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곳에서는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모스크나 힌두 사원과는 달리 중국 사원은 오히려 쉽게 드나들 수가 있어서 이곳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원은 일반적인 중국 사원과 그리 다를 것은 없었다. 사원 뒤뜰에는 작은 탑과 정원이 있어서 향의 연기를 피해 가볍게 산책할 수 있었다.

콴잉텐을 나와 앞으로 계속 걷다 보면 이번엔 갑자기 예쁜 첨탑이 있는 교회가 보인다. 가문의 사원, 모스크, 힌두 사원과 중국 사원을 지나니 이번에는 교회라니. 페낭은 정말 독특한 곳이다. 이 단정한 교회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라고 하는 세인트 조지 교회이다. 교회 앞에는 원형의 기념물이 세워져 있는데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는 페낭에 처음 상륙했던 프란시스 라이트 선장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 내부에서는 무슨 행사 준비였는지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연습하는 중이었다. 교회 내부는 깔끔하고 단정했다.

세인트 조지교회 정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걷다 보면 페낭 박물관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보수공사 중이라 입장 금지다. 안타깝다. 페낭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갑자기 한글로 된 작은 간판이 나왔다. '페낭 교구 박물관'이라 적혀있었다. 작은 간판은 한글 이외에 다른 언어들로도 적혀있었다.

이 교구 박물관은 성모승천 성당에 소속된 것으로 입구에서 오른쪽에는 성모승천 성당이 보이고 박물관은 왼쪽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성모승천 성당은 앞서 세인트 조지 교회 앞 원형 기념물의 주인공인 프란시스 라이트 선장이 세운 성당이라 한다. 영국인이 말레이시아 북부에 세운 최초의 가톨릭 성당이며 영국인에 의해 말레이시아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라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 보니 어떤 행사가 준비 중인지 조금 바쁜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일단은 교구 박물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일단 조금 덥기도 했으니까.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입장한 이곳에는 성모승천 교회와 페낭 가톨릭의 역사, 당시에 사용되었던 성당의 여러 가지 기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물론 성당에 봉직했었던 주교님들에 대한 소개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성모승천 성당 쪽으로 갔다. 행사가 있는 것을 보고 사진만 잠시 찍으러 들어갔다가 나오려는데, 행사 주체인 듯한 분이 달려오더니 행사에 참석해서 축하해 달라고 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도 된다면서. 처음에는 결혼식인 줄 알았는데, 초대해 주신 분 부모님의 금혼식이었다. 금혼식 행사를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고 그들이 다시 결혼하여 손주들을 낳고 그렇게 결혼한 지 50년,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금혼식을 준비한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바닷가 쪽으로 가기로 했다. 길을 건너가다가 Korean BBQ라 붙어있는 간판을 보며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앞으로 넘어졌다. 빗물이 내려가게 깎여진 곳의 경사가 너무 심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 봤다. 무릎이 까지고 피가 좀 났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고 입은 옷이 가벼운 원피스라 무릎 쪽을 잘 가려 주었다.

길을 죽 따라 내려가다 보면 코타 라만 공원에 닿는다. 어제 커피를 마셨던 카페 앞의 넓은 공원으로 이 근처에는 식민지 풍의 건물들이 서 있다. 이 공원에는 파당이라 불리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 어제 사람들이 이곳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었던 것 같다. 노란색의 아름다운 건물을 지나 돌출된 현관이 아름다운 건물에 말레이시아 국기를 비롯한 두 깃발이 날리는 건물이 있다. 페낭 시티 홀 건물이라고 한다.

페낭 시티 홀을 지나 바닷가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제1차 세계 대전 희생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기념비를 지나니 페낭의 바다가 이어졌다. 겨울이라도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오른쪽 멀리 페리 터미널로 보이는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끝에 콘월리스 요새가 있다. 이 요새를 세운 사람은 페낭에 처음 상륙한 프란시스 라이트 선장이며 당시 영국의 동인도 회사 제독이기도 했다. 이 요새를 세운 목적은 페낭을 노리는 해적을 막는 용도였기에 곳곳에 당시에 사용되었던 대표가 놓여있다. 이 드넓은 요새를 걷다가 우연히 아주 생뚱맞은 조형물을 만났다. 진로 소주의 캐릭터인 푸른 두꺼비를 닮은, 연두색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했던 조형물. 좀 우습긴 했지만 나름대로 어울렸다.

콘월리스 요새 옆에는 어제 사진을 찍기도 했던 퀸 빅토리아 시계탑이 서 있다. 1897년 이 지역의 중국계 백만장자가 빅토리아 여왕 통치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쯤 걷고 나니 배가 고프다. 통상적으로 관광을 오게 되면 현지 음식을 먹는 편이기는 한데, 아직 동남아시아의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너무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아까 넘어진 것도 한국 음식점 간판을 보다가 그런 것이니 이번 한 번은 한국음식을 먹어주는 것으로. 곳곳에 생각보다 한국음식점이 많이 생겨서인지 세상에 어디로 갈까 고민까지 했었다. 어쨌든 이국 땅에서 맛있게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오후 일정을 세우기로 했다.

조지타운 구시가지 쪽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 보니 어제 만났던 그 예쁜 소방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곳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며 가던 중 수상 가옥촌으로 가보기로 했다.

수상가옥촌으로 알려진 이곳은 조지타운을 등지고 바다 쪽으로 나가면 만나는 곳이다. 단 이곳을 가려면 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을 건너야 한다. 횡단보도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그 길은, 그냥 무단횡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많은 수상가옥촌 중에서 츄제티(Chew Jetty)를 선택했다. 이곳이 가장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중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중국에서의 빈곤과 궁빕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에서 건너온 추 씨 집안사람들이 대부분이 이곳 수상가옥촌에서 살았다고 전해져 이곳은 츄제티라 불린다고 한다. 춘절을 앞두고 홍등으로 장식된, 중국풍과 말레이시아 풍이 묘하게 섞인 독특한 곳이다. 츄제티는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성업하고 있는 곳으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츄제티를 나와 왼쪽으로 내려가면 덜 붐비는 수상가옥이 나오는데 이곳은 탄제티(Tan Jetty)로 불린다. 폭 1미터 남짓의 다리를 건너 끝까지 걷다 보면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곳에 사진을 찍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오후 시간은 그렇게 잘 흘러갔다. 조지타운 쪽으로 걷다 보니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쉬고 싶어졌다. 해외에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기대게 되는 구글맵을 펼쳐 괜찮은 카페 검색. 머그샷 카페가 검색되었다. 조지타운 시내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산책은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입구에서 잭프루트 스무디를 시키고 안쪽 깊숙이 들어갔더니 빈티지 카페의 다정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래 걷느라고 피곤했던 몸을 편안히 쉬기에 충분한 다정함이라 해야 할까. 한참을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아직 늦은 오후라 충분히 돌아다닐 시간이 있었다. 이 근처는 아니었지만 말레이시아식 빙수인 첸돌을 맛볼 수 있는 노점이 도보 십여 분의 거리에 있었다. 구글맵에 의존해서 찾아가다 보니 몇 번을 헤매었다. 헤매 다니다가 예쁜 핑크색 건물을 만났고 Upside Down Museum이라는 독특한 곳도 보았다. 처음엔 이곳에서 사진이나 찍고 놀까 싶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못 느꼈고. 그래서 건물 외관만 찍어보았다.

첸돌 노점은 몇 번을 헤매었는데 결국에는 찾았다. 차량과 사람들이 뒤엉켜 다니는 곳이라 설마 이곳에 있을까 했었기에 그냥 지나쳤던 그곳에 있었던 것. 첸돌을 사고 건너편에서 보니 첸돌 먹는 아이의 거대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첸돌 안에 들어있는 초록색 국수는 판단이라는 식물로 만든다고 한다. 첸돌은 시원한 맛이 있는 적당히 달콤한 옛날 빙수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첸돌 그릇을 들고 자리에 서서 첸돌을 맛보았다. 딱 적당한 맛이었다.

첸돌을 먹고 나서 다시 조지타운의 구시가지로 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중이라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가는 중. 곳곳에 아름다운 벽화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각각의 벽화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가득 불러일으켰다. 곳곳의 고양이 벽화들과 나비, 페낭을 대표하는 자전거 타는 아이들의 벽화, 그리고 한 블록 넘어가면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벽화도 보인다.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인증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관광객은 독특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작은 조각상의 사진이었는데 그 작은 조각상에 이 거리 곳곳에 눈에 띄지 않게 놓여있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듯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작은 사람들의 조각상이 곳곳에서 눈에 보였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다. 오늘도 많이 걸은 탓인지 무척이나 피곤하다. 가벼운 간식을 사고 이제 숙소에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내일 오후엔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니까. 어수선했던 페낭의 마지막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은 짐을 정리하고 체크 아웃을 하면서 집을 맡겨 두었다. 오전까지 시간이 있었고 일요일이라, 오늘은 가까운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오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조용하게 나만의 브런치, 페낭의 마지막 오전을 편안하게 보냈다. 페낭 바자르를 잠시 둘러보기도 했다.

조금 일찍 프라나긴 몰에 위치한 여행사 쪽으로 왔다. 다행히 여행사 직원은 이틀 전에 보았던 그 여직원이었다. 여행사 한편에 짐을 보관한 뒤 프라나긴 몰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페낭에서의 기념품은 마그넷 몇 개와 에코백을 샀지만 또 다른 것이 있을까 해서였다. 페낭의 유명한 벽화인 자전거 탄 아이들이 그려진 티셔츠 두 개를 샀다, 여차하면 옷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러 갔다. 이층 버스의 제일 앞이라서 탁 트인 시야를 즐기며 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햇빛을 바로 받아야 했던 것은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다행히(?)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동안 구름이 끼어서인지 햇살이 계속 따갑지는 않았다. 5시간 여의 버스는 생각보다 편안하고 다행스럽게 나를 쿠알라룸푸르에 데려다주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그랩 택시를 불러 숙소에 도착. 조금 낡았지만 깨끗한 아파트형 숙소는 페트로나스 타워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주변의 마트를 찾아보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은 편의점, 그것도 CU편의점이었다. CU편의점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상품 중에는 말레이시아에만 있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편의점과 다를 바 없는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 당연히 카드를 쓰고. 편의점에 있으니 이곳이 쿠알라룸푸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니 조명이 들어온 페트로나스 타워의 옆모습이 보였다. 나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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