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기다림에서 시작한다
석 달 여 전에 구매한 항공권의 출발 날짜까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끝낸 뒤, 이제 여행을 위한 짐을 꾸려본다. 처음 가는 여행도 아닌데, 역시 나는 미니멀리스트는 애초에 접었다. 대책 없는 맥시멀리스트의 본분(?)을 다해 꾸역꾸역 집어넣었더니 짐의 무게는 늘어난다. 나이 드니까 더 포기되지 않는다. 젊을 때야 그 생기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는 꾸며줘야 그래도 몇 안 되는 셀피라도 잘 나올 것이라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짐이 무겁다. 그래도 수화물 초과는 안될 무게이니 그냥 떠나는 걸로.
지방에 사는 사람이 인천 공항에서 출국하게 되면, 비행기 타기 전 대략 6시간 이상 먼저 준비해야 한다. 아침 일찍 떠나는 버스인 데다가 긴 하루가 될 것이라서 그냥 밤을 새웠다. 거의 네 시간은 걸리는 공항 리무진을 타는 시점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체크인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까지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 시간에 쇼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경우에는 신용카드 혜택으로 쓸 수 있는 공항 라운지에서 식사를 한다. 국적기를 타고 가기 때문에 기내식 생각해서 많이 먹지는 않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라운지의 음식이 괜찮은 편이다. 라운지 음식을 신나게 먹고 게이트를 찾아간다. 라운지는 251번 게이트 근처에 있고 나의 탑승구는 241. 식사를 끝내고 소화도 시킬 겸 게이트까지 걷는다. 출국장을 나서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라운지이고 241번 게이트는 거의 오른쪽 끝에 위치해 있다.
공항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나라 사람이건 외국 사람이건. 여행일 수도, 환승일 수도, 혹은 귀향일 수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탓이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탑승이 시작되었다. 이제 꼬박 12시간을 날아야 도착하는 이스탄불.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국적기를 타고 가면 좋은 것이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이 기내식으로 나온다는 것과 기내 서비스 언어가 기본적으로 우리말이라는 것이 편하다. 비행기가 안정적인 고도에 이르니 기내식 서비스 시작. 한동안은 한식을 먹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고 나이 들수록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심해져서 튀르키예 음식도 예전처럼 맛있게 느껴질지는 모르니까 일단은 한식으로 맛있게 기내식 먹기. 하이네켄과 레드 와인을 곁들였다.
12시간의 비행은 정말 지루하다. 게다가 앉아 있기만 한데 사육은 계속된다. 먹을 것이 제공되고, 심지어 기내 방송으로 승객들이 알아서 스낵을 챙겨 먹도록 해준다.
그래서 장거리 비행은 나이가 들수록 힘든 일이다. 좁은 이코노미석의 불편함은 온몸에 피곤을 불러오는 일. 그나마 볼만한 영화-내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딱이다-를 졸면서 보다 보니 몰랐는데 어느새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햇살이 환하다.
입국 수속이 제대로 되고 짐만 제때 찾으면,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스탄불 공항은 너무 컸다. 짐이 나오는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고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 역시 당연히 길어졌다. 짐을 찾고 나와서 수수료 없는 ATM을 찾아갔다. 먼저 카드를 넣고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데, 항상 이렇게 오면 조금 멍청해진다. 일찍 왔지만, 결국 늦게 나온 분들보다 출금하는데 늦어졌다. 현금은 늘 예비용으로 찾는 것이라서 일단은 조금만 찾고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숙소가 구시가지인 시르케지 역 근처라서 네이버 검색에서 찾은 대로 12번 플랫폼에서 악사라이행 버스를 탔다.
버스표는 기사에게서 직접 현금이나 카드로 살 수 있다. 캐리어를 짐칸에 싣고 짐 표를 받았다.
사람들이 가득 차기를 기다려서 버스가 가득 차니 이윽고 출발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진 시간, 악사라이가 어딘지도 모른 상태로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밤이라서 그런지 교통 체증 없이 악사라이에 도착. 아마도 십여 년 전에 이곳에도 왔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구글 맵을 켜서 호텔로 가는 길을 검색했더니 트램을 타라고 한다. 악사라이는 환승역이라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조심하라는 얘기도 많지만, 또 사람들이 거의 관광객이라 비슷비슷한 상태다. 구글맵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저쪽에 트램역이 보인다. 컨택리스 카드로 트램역에 들어가려고 하니 근처 상인이 자꾸 이스탄불 카르트 사라고, 대신 사 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가장한 친절을 싫어한다. 그래서 돈이 조금 더 들긴 하지만 내 카드로 그대로 트램을 탔다. 이 트램을 타고 귈하네 역에서 내려 다시 구글맵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도 이스탄불 시내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안도가 된다.
천천히 달린 트램이 술탄아흐멧 역쯤에 도착하니 은은하게 조명이 켜진 술탄아흐멧 자미, 블루 모스크가 예쁘게 사람을 맞이하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블루모스크와 다르게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아야 소피아가 웅장하게 서 있었고. 트램은 술탄아흐멧 자미와 아야 소피아를 지나 좁은 길을 따라간다. 이윽고 귈하네 역에서 내렸다. 이제 다시 구글맵에 의존해야 할 시간, 제대로 찾아갔는데 도착지점에서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이름은 바뀌었으나 간판이 바뀌지 않아서 내가 호텔을 눈앞에 두고도 못 찾은 것이었다. 결국 왓츠앱을 통해 호텔 직원과 얘기를 나누었고, 그가 바로 찾으러 나왔다. 체크인을 하고 소개된 나의 작은 방. 시르케지 역 근처의 호텔 치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딱 적당한 방이었다. 긴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나는 이스탄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