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출생신고 하는 날

by 물밖의물고기


<결이 아버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듣고, 무던하게 "네"라고 말했지만

내적으로는 적잖이 삶을 뒤흔드는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아빠라는 존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계가 열린 것을 직감했다.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들에 의하면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아기를 낳고 키우냐고들 한다. 오죽하면 우리 엄마조차도 내게 아기를 1명만 낳으라고 한다. 내가 최소 4명은 낳고 싶다고 속없는 소리를 해대니 현실감각이 없다고 일침을 날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의 속뜻에는 앞으로 우리 부부가 힘들 것이 아니라, 아기가 살아가는 시대가 힘들 것을 우려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부부가 되어 최소 2명은 낳아줘야 인구가 유지가 되는데, 앞으로 어떤 민망한 뉴스들을 마주하게 될까 싶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반대로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만삭인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타다 보면 많은 어른들이 만삭인 아내의 배를 보면서 마치 자식의 일처럼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꼭 인구감소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요즘 시대에서 출산하는 일은 귀한 것이라고 치켜세워주셨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요즘 아기가 새벽에 울어도 동네사람들이 아무 불편한 표시도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준다고 한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감 같은 건가 싶으면서도 역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비혼주의, 딩크족 등 가족을 단순한 제도로 여기고 여전히 결혼/출산에 냉소적인 젊은 세대의 현실이 속상했다.


드디어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출력해 준 출생신고서(코팅지)와 신분증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문밖을 나섰다. 그날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가득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 소속인 주민센터로 쌩쌩 달렸다. 특별한 날이어서일까. 그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맞던 바람의 온도를 아직도 기억한다.


주민센터에 도착해서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공무원 선생님 앞에 앉았다.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10분도 안 되어서 공무원 선생님이 알아서 다 처리해 주셨다. 공무원 선생님은 내 일처럼 기쁘게 축하해 주셨고 이것저것 안 물어본 것들도 먼저 가르쳐주셨다. 진짜 축하는 아내가 받아야 하는데, 나는 한 것도 없이 축하를 과하게 받는 건 아닐까 하며 민망하기도 했다. 공무원 선생님은 출생신고를 마치시고, 바로 복지팀으로 연결시켜 주셨다.


복지팀에서는 두 가지를 자동으로 신청해 주셨다. 바로 부모급여와 첫 만남 이용권이었다. 부모급여는 0~12개월까지 매월 100만 원이 현금성으로 지급되고, 12개월~23개월간 50만 원이 지급되는 국가지원제도다. 첫 만남 이용권은 출산 직후 현금성으로 200만 원이 즉시 지급되는 제도다.


그 외에도 별도로 신청해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국가지원제도가 참 많다. 산후조리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100만 원 바우처, 임신한 때 산부인과 진료비/수술비/입원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100만 원가량의 바우처, 임신하면 교통비 70만 원도 지원된다. 초등학생까지 지급되는 아동급여 10만 원, 출산 이후 아기와 함께 탈 수 있는 서울엄마아빠택시 이용권 10만 원도 나온다. 이외에도 지역별로 지원이 더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기를 출산하는 일은 원래도 축복인 일이지만, 요즘은 국가에서 현실적인 재정지원으로 축복해 주는 분위기다.


내가 놀란 이유는 위와 같은 지원이 시작된 지 단 몇 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카는 현재 6살로 2020년에 태어났는데, 국가에서 지원받은 혜택이 아동급여 10만 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단 몇 년 만에 제도가 바뀌고, 부모가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천지차이로 달라진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지원이 없었다면 나도 현실적으로 출산이 막막했을 것이고, 육아휴직도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생신고와 복지신청이 모두 끝났고, 아기의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되었다. 참 신기하다. 우리는 주민번호 뒷자리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했는데, 2025년생인 우리 아기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3으로 시작했다. 몇 년 뒤, 둘째를 낳아서 딸을 출산하게 된다면 딸의 주민등록번호는 4로 시작할 것이다.


출생신고가 완료되고, 몇 주 뒤 주민등록등본에는 아기의 이름이 함께 기재되어서 출력되었다. 아기의 인생이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아기 덕분에 육아휴직 6개월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한 번도 직장인으로서 쳇바퀴를 멈춰본 적이 없었는데, 합법적으로 잠시 쳇바퀴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잠시 발을 그만 굴려도 괜찮다. 잠시 분주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무 바삐 달려서일까,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은 너무나도 넓었고, 사소한 것들조차 행복한 것들이었다. 솔직히 벌써부터 회사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다시 그 쳇바퀴 위에 내 발로 직접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끔찍하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이 육아휴직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내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해석할 시간이다. 하루하루를 다신 돌아오지 않을 기적처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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