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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아빠 Nov 21. 2023

그대의 알을 깨고 나오세요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_나름 성실하기

 A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나름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지금 왜 이러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뭘 하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도, 아무거나 해보고 싶기도 해. 아, 정말 모르겠다. 어찌 되려나, 나의 인생!'


 A의 열등감은 2009년, 그녀의 2학년 여름방학 극에 달했다. 그녀는 계획대로 1학년을 높은 학점으로 마치고 경영학과에 정식 입과했다. 당시 s대는 문과의 경우 1학년들을 본과에 바로 입과시키지 않고 인문과학부, 사회과학부로 나누어 모집한 뒤 1학년 학점을 기준으로 각자가 원하는 과에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회과학부에서는 단연 경영학과가 제일 인기가 높았고, 때문에 경영학과에 들어가려면 학점 평균 4.5점 만점에 최소 3.9는 넘었어야 했다. A는 T와 주변에 대한 열등감을 꾹꾹 눌러 담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4점대를 훌쩍 넘는 학점 평균으로 경영학과에 여유롭게 입과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열등감은 잠시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래도 자신의 성실함은 자기를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경영학과에 입과하고 나서가 본격적인 문제의 시작이었다. A는 1학기 수강한 경영학과의 모든 원론 과목에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회계, 재무, 마케팅, 인사 그 어디에서도 그녀의 진로는 없는 것 같았다. 그 답답함은 그대로 학점으로 직결되었다. 그녀의 1학기 학점 평균은 3.5를 겨우 넘겼다. 대학생 평균 중에서는 높은 편이었지만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 복습하고 모든 과제를 기일 내에 완수한 그녀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때문에 오히려 1학년 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과가 이러하니 A의 좌절과 열등감은 더욱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해 여름방학은 A의 어머니와 동생이 잠시 귀국해 함께 살기로 했으므로 T와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의 아버지가 여전히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관계로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 해외에 살고 있었다. 작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그녀가 방학 때만이라도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살 요량으로 해외에 머물렀으므로 A에게 2008년의 방학이란 T와 약 두 달간 이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연애 2년 차 한참 뜨거웠던 그들이었으므로 두 달의 이별조차 길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이별을 겪지 않고 방학 내내 이따금 만나 함께할 수 있으니 A는 그녀의 열등감에 부대껴 힘든 마음도 T를 만나며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T는 오히려 그녀의 열등감을 풀어주는 동시에 한층 더 깊게 만들기도 했다. T는 본인이 1학년 때부터 원했던 경제학과에 입과해 장학금을 위한 최저 기준인 3.5를 간신히 넘었던 1학년 때와는 달리 전공 첫학기 학점 평균이 단숨에 4.2를 넘어 버렸다. 그런 T와 만나면 만날 때는 모든 것이 잊히지만 활력과 정력이 넘치던 T와 헤어지고 집에 와 있으면 정작 A 자신의 열등감은 훨씬 깊어졌다.


 "너의 열등감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에게 의식되는 것일 뿐이야. 네 스스로를 잘 알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없어질 느낌이라고 생각해. 그래 느낌! 열등감의 '감'자는 느낄 감이잖아? 그냥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왜냐고? 넌 열등하지 않으니까!"


 A는 이따금 T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털어놓을 때마다 저런 식의 답변을 그에게 들어왔다. 때로 T 자신에게 그녀의 열등감까지 해결할 열쇠는 없다는 듯 답답하고 화나는 말투로 저런 말을 하곤 했다. 아무리 되새겨도 맞는 말 같긴 한데 도대체 스스로를 안다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A는 방학이라 한산하기 그지없는 학교 도서관 컴퓨터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곤 멍하니 앉았다. 스스로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은 그녀의 몇 안되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 오긴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아는 것인지 도통 떠오르질 않아 일단 컴퓨터를 켜놓은 것이었다.


 버릇처럼 초록색 검색엔진을 켜는 것까지는 했다. A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10분이 넘도록 앉아만 있다 별안간 검색창에 타이핑을 친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다'


 A가 열등감에 절어있을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을 떠도는 그녀의 한탄이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는데 도대체 왜 이러나, 하는 그 문장이 곧 자신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문장에 대한 큰 뜻이 있어 진심을 담아 검색해 본 건 아니었다. 그냥 막막한 마음에 가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이다.


 엔터를 치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주로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의 블로그 일기가 그녀의 검색 결과를 도배했다. 나름 성실하게 살았는데 도대체 난 왜 이러나, 하고 그녀와 같이 한탄을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조금이라도 A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도대체 나도 그렇고 저들도 그렇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진정 무엇을 뜻하는 건지 '나름 성실하다'는 자기 고백을 향한 답답한 의문만 더욱 깊어졌다.


'나름대로'


검색어를 바꾸었다. 바꾸었다기보다는 처음 타이핑한 문장을 지우다가 저 글자만 남았기에 엔터를 쳐봤을 뿐이다. 그랬더니 '나름대로'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식. 또는 그 자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식이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라...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엇 이라고?'


A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온전히 결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 엄마나 주변 선생님 영향을 받아 의사결정을 해온 그녀로서는 그녀 고유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역시 고유의 무엇이 없는 줏대 없는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다시 열등감의 굴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T가 왔다. 늘 그래왔듯 A는 T의 손을 잡고 한숨을 쉬며 입을 삐죽 댔다. 어느 순간부터 그건 둘에게 도서관 앞이나 학생식당 어디에 앉아 이야기를 하자는 신호와 같았다. A와 T는 시원한 캔커피 한 개를 그늘진 도서관 앞 벤치에서 번갈아 마시며 늘 하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A는 자신의 검색결과와 그로 인해 더 진하게 느낀 자신의 좌절감을 T에게 털어놓았다. T는 시작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A 넌 이미 너의 고유의 것이 없다는 결론을 맘 속으로 내리고 또 거기에 빠져든 것뿐이야. 네 고유의 것이 왜 없지? 네가 지나온 너만의 모든 역사가 다 너의 고유의 것이야. 해외에서 지낸 과거, 뭐든 잘해보려는 심성, 또 나랑 만나면서 갖게 된 여러 생각들까지, 그걸 다 버무려놓은 게 너야. 그런 경험을 모두 똑같이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


T는 명쾌한 말투로 문장을 내놨지만 결론은 자신도 잘 모르겠으니 생각해 보자는 것뿐이었다. 이는 A를 더 복잡한 미궁에 빠져들게 했다. 자신의 역사 그 모든 걸 똑같이 경험한 사람이 없다는 말은 맞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말인가? A는 일단 컴퓨터 자판을 잠시 치워 다이어리를 꺼내 놓고 필기를 해보았다.


'일본에서의 경험, 이과에서 실패, 수학과 숫자를 싫어함, 어느 정도 외국어 잘함, 정치와 국제정세에 관심 생김, 곱게 자라 세상 물정 잘 모름,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음, 심한 열등감, 성실함...'


 자기 자신의 역사와 그에 대한 자신의 특징을 나름대로 나열해 본 것이었다. 저것이 자신의 고유 그 자체, 그러니까 A자신의 나름을 이루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성실함에서 펜이 멈춘다. 도대체 성실하다는 것은 뭘까, 뭐길래 이런 나를 이토록 결국에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


 '성실'


 잠시 앞으로 치웠던 키보드를 가져와 검색해 본다.


 '정성스럽고 참됨'


 사전이 말해주는 것은 그뿐이었다. A는 좋은 뜻만 나오는 성실이란 단어를 보며 지난 과거를 생각했다. 그녀 생각에는 자신에게 주체성만 없었을 뿐 자신이 해온 그 모든 일에 정말 정성스럽고 거짓 없이 참되었다는 생각은 들었다. 간만에 자기 긍정을 할 수 있었으나 딱히 위안은 되지 않았다. 결국 A는 도서관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A는 그녀의 학창 시절에 대해서 만큼은 T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지혜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녀는 어쩔 때 보면 그녀가 알고 있는 또래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다. 때문에 이번만큼은 전혀 의지가 되지 않는 T 말고 그녀를 찾아 도움을 구해보기로 한 것이다.

 A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산 것에 대해 회의하는 것부터 그 말 그대로를 검색한 것까지 최근 A의 근황을 모두 들은 지혜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골똘한 표정으로 그녀들 앞에 놓인 탁자 어딘가를 응시했다. A 역시 일단은 더 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의 편치 않은 침묵을 지혜가 깬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진짜 나름대로 살 기회가 생긴 것 아닐까? 특히 착하디 착한 딸이었던 너는 정말로 지금부터가 나름대로 사는 인생의 시작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 삶은 나름대로 성실했던 삶도 아니었다는 걸까?"


"음... 정말 애매한데... 네 나름대로의 열심히 살아온 삶도 맞지만 사실 네가 말한 대로 그건 엄마의 딸이자 미성년자로서 통제받는 너의 삶이었잖아? 나름대로라는 단어의 뜻이 각자 가진 고유성 그 자체라고 한다면, 통제받았던 예전의 우리들 모두는 어쩌면 진정한 나름대로의 삶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지. 특히나 너처럼 진짜 누가 봐도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자 착한 학생 그 자체였던 아이라면!"


A는 그제야 납득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지만 '반쪽짜리 나름대로' 삶이었다. 조금 들뜬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A가 묻는다.


"오, 이제 뭔지 좀 알 것 같아! 그러면 성실하게 사는 건 어때? 나는 그렇다면 성실하게 산 것도 아니었을까? 아니면 성실하게만 사는 것은 너무 뭐랄까, 온전한 내 삶이 아닌 것일까?"


지혜는 자신의 말이 A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신호에 같이 들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질문에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다시 진지해졌다.

 

"글쎄, 네 말대로 성실의 의미가 정성스럽고 참된 것을 뜻한다면 그걸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넌 정말 성실한 것만큼은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어. 난 솔직히 너의 그 성실함이 부러워. 내 생활을 돌아보면 난 너처럼 정성스럽게 열심히 살지는 않는 것 같아. 아, 또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저번에 네가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눈물을 글썽거렸잖아. 그런데 이렇게 보니 어쩌면 그게 축복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족들과 함께 살면 네가 진짜 나름대로 너의 고유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고등학생 딸에서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대학생 딸이 될 뿐일 수도 있어."


 맞는 말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산다면 분명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진로를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정성을 다해 개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A는 분명 부모의 그런 개입에 묵묵히 따랐을 것이다.

 

 기숙사로 돌아온 A는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고자 다이어리를 폈다. 깨끗한 새 페이지에 '내 고유의 것' 이라고 써놓은 채 고민하던 A는 바로 앞장에 써놓았었던 자신에 대한 서술을 다시 펴 보았다.


 '일본에서의 경험, 이과에서 실패, 수학하고 숫자를 싫어함, 어느 정도 외국어 잘함, 정치와 국제정세에 관심 생김, 곱게 자라 세상 물정 잘 모름,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음, 심한 열등감, 성실함...'


 A가 평소에 과제를 하고 복습을 하듯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누가 자신더러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저 외에 딱히 더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A는 다시 페이지를 넘겨 '내 고유의 것'이라 적힌 글귀 바로 아래에 '앞장에 있음'이라고 적어놓고 다이어리를 닫았다. 


 A는 그렇게 정리한 자신의 모습을 토대로 자신 나름대로의 삶을 다시 출발해 보기로 했다. 그 해 남은 여름방학은 2학년 2학기부터 다시 시작될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 골몰했다. T나 주변사람들에게도 만날 때마다 틈틈이 조언을 구하며 계획표를 적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2학기부터 시작된 그녀의 삶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리되었다. 

 - 정치외교학 복수전공 (외국 경험 + 정치와 국제정세 관심)

 - 학교 영어신문사 기자 지원 (외국어 능력 +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음)

 - 언론사 기자 체험단 지원 (다양한 취재 활동으로 세상 물정 알기)

 - 무역 분야 위주로 경영학 전공 수강 (외국 경험 + 숫자 싫어해 회계/재무 역량 없음 + 정치외교학 시너지)

 - 쓸데없는 열등감 제거 (제일 중요한 목표! 열심히 계획대로 하다보면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적힌 목록 모두를 실천해 나가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다. 정확하게는 열등감 제거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천했다. 열등감 제거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2학년 2학기에 학내 영어신문사에 들어가 기자활동을 하고 전공을 가능한 무역과 관련된 것으로 채웠다. 3학년부터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하고 3학년 여름방학부터 그해 겨울까지 휴학계까지 제출하고서 모 언론사에서 모집하는 기자 체험단에서 활동했다. 열등감이 제거되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휴학을 끝내고 맞이한 3학년 2학기를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내고 귀국한 이후에는 그녀가 열등감으로 그 전처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T를 포함해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2023년 A의 주석:

그냥 성실하게 살다보니 어찌저찌 잘 굴러갔다는 이야기다.

그냥 나름대로 성실하게 산 줄 알았더니 진짜 나름대로 산 건 아니었던 한 대학생이 정말로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다시 성실해진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닥치는 대로 마주친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냥 또 성실하게 살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복수 전공한 정치외교학을 직업세계에서 써먹어본 적도 없고, 언론사에 입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강점이던 일본어도 그나마 무역 관련 업종으로 진출해 써먹어볼 뻔했으나 입사 3년 차에 회사가 망했다. 망한 타이밍도 절망적이었다. 회계를 어느정도 알면 내가 원하던 무역 관련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회사내 회계팀으로 부서를 옮겼는데 때마침 회사가 망했다. 회계부서밖에 이직할 수 있는 구석이 없어 가장 적성에 맞지 않는 회계로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다가 그것들도 다 그만두고 2년 동안 공부해 9급 공무원이 되어 지금은 그냥 공무원으로서 직업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나같이 나름대로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인생은 원래 힘들다는 것이다.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모두의 삶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간에 나름 힘든 것 투성이였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눈 앞에 닥친 것들과 내가 계획한 것들에 대해 나름 성실하게 사는 것을 계속하는 삶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내가 모르는 새에 아무에게나 느끼던 열등감도 사라졌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들을 풀어가다 보면 열등감을 느낄 시간도 필요도 없었다. 그럼 되었다. 산다는 게 큰 열등감 없이 그저 감사하게 하루하루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그래, 그냥 주어진 대로 나름 성실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 어쩌면 아주 좋아."

내 손을 잡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아들내미를 오늘도 겨우 재우고 오랜만에 T와 인생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날 출근 생각에 성급하게 요약한 대화의 결론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별 거 아닌 철학이나 좌우명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은 성실함을 중심에 둔 삶이지 않을까. 자신을 사랑한다면 성실하게 자신을 챙길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또 그 사람에게 성실하다. 성실하다고 모두가 사랑은 아닐 지언정 누구나 인정하는 사랑은 모두 성실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도 가장 깊은 추억은 그냥 서로를 위한 성실한 삶의 기억 그 자체였다. 3천 원짜리 학식이 우리가 만나서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었으나 가장 빛나던 시절의 따뜻한 끼니들이었다. 결혼하고서도 임신할 때까지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 위주로 데이트 하던 누추한 신혼집의 삶도 돌아보면 찬란하고 따뜻하다. 무엇이 그렇게 빛나고 따뜻할까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서로만을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성실하게 열심히 살던 그 시절, 그 기억이 태양처럼 떠있고 그 강렬한 빛에 남루했던 기억의 조각조차 찬란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육아휴직을 한 남편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가장 열심히 해야할 것은 성실한 집안일과 아이 돌봄이다. 달콤한 말 한마디나 귀한 선물보다 그것이 더 반갑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보다 깔끔하게 설겆이된 그릇과 정돈된 집안,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나로 하여금 그이의 사랑을 더 와닿게 한다. 나도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므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만큼 열심히 일한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승진이 빠르거나 돈을 더주는 직업은 아니지만 마음 편히 일하는 데에만 집중하라고 남편이 많은 것을 감수하고 휴직을 한 만큼 성실하게 그에 응할 뿐이다. 남편이 복직을 한다면 열심히 일해서 벌이가 끊기지 않게 하고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내어 아이와 함께하고 주말에 요리라도 한다면, 또 때로는 열심히 운전해 우리 가족의 나들이를 이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은 성실하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거나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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