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은 극복해야할 것 투성이니까
"내가 틀렸어! 이제야 알았다고!"
2009년 봄, T가 캔커피를 따며 환희에 차서 A에게 소리쳤다. A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았다. T는 자신이 뭘 공부하고 있는지 A가 물어보지 않아도 상세히 공유하곤 했다. 그는 2008년 1학기가 끝난 이후 그녀와 도서관에 있을 때면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꼭 철학에 대한 책을 펴놓곤 했다. 그 학기에 수강한 철학입문에서 C+을 받고 그는 그 이유를 납득할 때까지 철학 공부를 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마터면 3.5도 못 받을 뻔했다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
"네가 교수를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아니, 그분은 평생을 서양철학사를 공부하신 교수님이야. 그 수업 시간은 그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거슬러 거짓을 말할 그 어떤 동기도 없는 순수한 자리였고. 난 그 시간에 때로는 졸기도 했으니 난 그의 요약된 말조차 제대로 담지 못했어. 난 교수님을 이기겠다는 말이 아니야."
"그럼 누구를 이긴다는 건데?"
"무지한 나 자신! 내 답안은 분명 어딘가 틀렸음에 분명해. 나는 내가 어디가 틀렸는지 반드시 스스로 납득해 보이고 말겠어."
A는 그 말을 듣고 다시금 열등감에 빠지고 말았다. 혼자 드라마를 찍는 건지 저런 재수없는 대사를 뱉어버리고 책을 찾아 나선 T를 보며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그 이후 거의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어버린 지금, 그는 드디어 자신이 틀렸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A는 무덤덤하게 축하를 건넸고 T는 도서관 앞 동상 주변을 뱅뱅 돌며 그가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A가 어느새 자신의 말에 깊은 집중을 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T에게 공부란 '어떤 문제에 당면해 지금 자신이 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해결사, 즉 장인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공부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서는 그 정의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공부에 대한 가장 뛰어난 정의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 대해 가장 뛰어난 해결사들을 세상에서는 장인이라 부르고, 어떤 일만 집중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농부, 어부와 같이 ~부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보면 공부는 장인 공(工)자에 장인을 뜻하기도 하는 ~부를 붙인 단어이니 그에게 공부란 사실상 장인이 된다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한 단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스스로 생각하길 자신은 공부를 업으로 삼는 학생, 그중에서도 무려 대(大)학생이었다.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데 '공부에 대하여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점에 T는 늘 자부심이 넘쳤다. 요즘 말로 하면 높은 자존감이란 그의 심리 상태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뭐, 저 자부심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여부는 제쳐두고 그는 어쩌다 저런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을까?
시작은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후 첫 슬럼프를 겪은 그의 고2 여름방학이었다. 그의 성적은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정체한 적이 없이 올랐다. 계속해서 상승을 이어가다 고2 3월쯤 돌아보니 그가 운이 좋으면 도달할 것이라 믿었던 지방국립대 합격선까지 다가갔다. 그가 원하는 장학생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성적이 오르면 그마저도 가볍게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모의고사였던 6월 모의고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정체기를 맛보았다. 가장 큰 난관은 수학과 영어였다. 가장 성적이 처참했던 과학은 어차피 고2 문과로 진입하면서 사라진 과목이었고, 국어와 사회는 초등학교 때 비교적 많이 했던 독서의 영향으로 공부하는 만큼 올라갔다. 하지만 수학과 영어는 아무리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어도 전국 중위권을 뜻하는 4등급이라는 선에서 결코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6월 모의고사 종료 직후 이어진 기말고사까지 마치고서야 허탈감을 느꼈다. 역시 공부는 타고난 머리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방국립대 이상은 비싼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회의감과 원망이 맴돌았다. 안 그래도 원망 가득했던 그의 가정사에 대해 분노마저 깊어지고 있었다.
'대학교에 간들 무엇을 할 것인가.'
문득 T에게서 처음으로 원망이 아닌 질문이 떠올랐다. 고2 여름방학의 첫날, 오후 자율학습을 하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그래, 대학교에 간다고 치자. 장학생이 되어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다음에 하루 종일 있을 대학 캠퍼스는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일까? 공부를 하는 곳이겠지, 그런데 대체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 이후에도 그런 질문의 고리들이 계속 머리를 괴롭히자 T는 점심시간 그의 고등학교에서 담장 하나만 넘어가면 있는 a대학교를 직접 들어가 보았다. 고등학교 10개를 붙여놓은 듯한 제법 큰 캠퍼스에 나름 대학 병원도 갖추고 있는 큰 학교였고 사실 당시 T의 성적으로 이 학교는 언감생심 입학을 꿈꾸기 힘들었다. 입구를 따라 걷던 T의 눈앞에 도서관이라고 쓰인 큰 건물이 보인다.
도서관이 저렇게까지나 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다가 갑자기 멈춰 선 T는 잠시 고민하더니 발걸음을 옮겨 이내 도서관에 들어갔다
"저기... 제가 고등학생인데요, 대학 도서관이 어떤지 한 번만 둘러보고 싶어서요. 들어가 봐도 될까요?"
T는 용기 내어 입구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원이겠지만 대학생 누나 같기도 했다. 근로장학생이라는 대학 도서관 아르바이트 제도를 알 리가 없는 T는 눈앞에 여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호칭을 생략하고 본론만 말했다.
"아, 제가 출입 목걸이를 하나 드릴 테니까 여기에 학생증이나 신분증 맡기세요. 목걸이 걸고 정숙하게 견학하시면 누구도 뭐라 안 할 거예요."
미소를 띤 근로장학생은 여름날 얼굴에 개기름과 땀이 맺힌 상태로 대학 도서관을 견학하겠다고 용기 있게 말 건 T가 대견했는지 망설임 없이 적극적으로 T를 도왔다. T는 감사함과 수줍음을 느끼면서도 대학교에 가면 꼭 방금 자신을 도운 그녀처럼 친절하고 예쁜 누나를 만나 연애도 하고 같이 잠자리를 가져보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욕망을 느끼며 의기양양하게 도서관에 입장했다.
수많은 책들이 자료실에 들어가자마자 T의 눈에 보였다. 대부분 누런 때가 묻거나 빛바랜 커버로 감싼 두꺼운 책들이었다. '와~'하는 감탄사가 T의 입에서 작게 흘러나온다. 책이 그렇게 많은 광경도, 그렇게 두꺼운 책들도 T에게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 와중 책을 옆에 잔뜩 쌓아놓고 무엇인가를 공책에 끄적이는 대학생 남자를 보고는 로망, 이라는 단어가 T의 가슴에 샘솟았다.
그러면서 T는 영어로 'Game Theory'라고 쓰인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촘촘한 영문장과 현란한 수식이 T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로망'이라는 단어를 더욱 크게 한다.
'그래, 이거야. 나는 이걸 쌓아두고 읽으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대학교에 가는 거야. 어차피 오르지 않는 영어랑 수학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걸 목표로 공부하기로 하자.'
T에게 그렇게 공부의 목표가 하나 늘어났다. 장학금을 받아 독립하는 것과 영어 원서를 읽고 뭔가 공부할 수 있는 멋진 인간이 되는 것. T는 이전에도 모르는 문제들을 따로 표시해 뒀다가 학원 선생님들께 적극적으로 질문하곤 했는데 영어와 수학의 경우 그날부터 질문의 방법이 달라졌다. 문제의 풀이 방법이 아니라 영어와 수학 자체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수학의 정석을 놓고 아무리 보고 다시 풀어도 조금만 응용하면 못 풀어요. 수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다른 문제집이나 참고서가 없을까요?"
"선생님 이 문장은 왜 이렇게 해석되는 건가요?"
T는 학원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교과서와 '풍산자'라는 수학 참고서를 독서하듯 공부하기 시작했다. 5번 넘게 혼자 풀어보기까지 해답을 보지 말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도 곧이곧대로 따랐다. 그렇게 하루에 푸는 수학문제는 보통 5문제가 채 되지 않았다. 틀린 문제 하나를 5번 정도 풀어도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다시 풍산자와 교과서를 펴고 끙끙 싸매고 그 과정을 반복해서도 맞히지 못해야 해답지를 보니 여름 방학 동안 학원에서 제공하는 수학 문제집도 다 복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새 수학이 가끔은 재밌게 다가왔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 해답을 내는 것, 그것이 수학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영어도 문제를 풀기보다는 교과서와 문제집에 있는 문장들과 문단을 이해하는 그 자체로 관심을 돌렸다. 그때까지 T의 영어 문제풀이는 문제 안에 아는 단어들을 대충 조합해 정답을 찍는 방식이었다. 문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지금까지 지나쳐온 교과서 문단들을 해설 없이 한글로 번역해 보니 제대로 된 한글 문장이 써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영어 문장을 번역하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 서점에서 직접 탐색해 문제집을 샀다. '천일문'이라는 문제집이 그것이었다. 그렇게 교과서와 천일문이 그의 영어공부를 위한 주요 참고서가 되었다. 영어 문제집 풀이는 사실상 멈췄다. 학교나 학원 교재에서 제공하는 문제 외에는 풀지 않았다. 아니 그마저도 대부분 시간이 없어 풀지 못했다. 처음에는 천일문과 교과서를 보면서 한 문제 속에 있는 문장들을 분해하는 것만 몇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1~2시간 영어공부를 하면서 1문제를 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문제 지문을 이해해 번역해 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땐 2시간 동안 5문제 지문을 번역해 내기도 했고, 번역을 다 하고 나니 문제의 정답은 거의 대부분 명료했다.
그렇게 고2 여름방학이 지났고 9월이 되었다. 2006년의 고등학생들은 3월, 6월 , 9월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전국단위로 평가하는 모의고사를 치렀다. T의 경우 여름방학 동안 영어와 수학을 그렇게 '로망'을 위해서만 공부한 뒤 첫 모의고사를 본 것이었다. 그런데 성적을 확인한 T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원래는 국어, 수학, 영어 순으로 2,4,4 등급이거나 운 좋은 날은 국어만 1등급이어야 했다. 운이 나쁜 날은 영어나 수학이 5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국영수 순으로 1,2,2 등급이었다. 수학과 영어는 시간 내에 다 못 푼 문제가 두어 문제씩은 있었는데도 모두 두 등급이나 뛰어올라 상위권 성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고1 때 그의 수학, 영어 성적은 보통 5등급이었다.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성적을 올리는 것도 단어와 문제풀이 외우기를 나름 끈질기게 한 끝에 해낸 것이다. 4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리는 것은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올리는 것보다 배는 힘들다고 들었기에 상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사회과목들도 대부분 2 혹은 운이 좋은 날 1등급이 나왔었는데 그날은 전부 2등급이었으니 국어는 1등급, 나머지는 전 과목 2등급이 나온 것이다.
그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T는 학원 팀장에게 찾아갔다. 입시 상담까지 겸하던 팀장은 아이들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고 해당 성적표로 어느 대학까지 갈 수 있는지 얼추 범위를 정해주던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a대는 갈 수 있겠죠?"
T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출입 목걸이를 걸어주던 누나가 떠올라 a대의 입학가능 여부로 그가 갈 수 있는 대학교 수준에 대한 질문을 대신했다. 사실 a대는 집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그녀를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나온 질문이었다.
"음...이 정도면 a대는 경영학과도 너무 안전빵이야. 가군에 도전목표로 H대 경상학과를 지원해 보고, 나군에 안전목표로 D대를 지원해 볼 수 있겠는걸? 수학이나 영어를 1로 바꾸면 H대가 안전선으로 들어온다, 열심히 해."
팀장의 입에서 상상해보지 못한 명문 대학교의 이름들이 나왔다. 수학과 영어의 숫자가 4에서 2로 바뀐 게 이렇게 상상도 못 할 결과를 낳을지 T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C대를 장학금 받고 갈 수도 있겠죠?"
그가 '운이 좋을 때'를 가정해 막연히 생각하던 지방국립대인 C대를 지금 성적으로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은 D대가 안전목표라는 팀장의 발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제 C대에서 장학금만 받을 수 있으면 사실상 지금 성적을 유지하기만 해도 T의 목표는 달성이 되는 것이다.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학원 플랭카드에 적히는 서울 상위권대 숫자가 중요한 학원 팀장에게 다소 탐탁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 대학교들의 장학제도가 워낙 다양해서 그것까지 확답하기는 힘든데, C대가 일반적인 장학제도를 갖추었다고 가정하면 이 성적으로 입학금은 최소한 면제받고 가는 것이겠지."
그는 그렇게 고2 9월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자신의 목표선에 도달했다.
그 이후 T는 영어를 더 정확하고 빠르게 읽는 것에 더 노력을 하면서도 문제를 시간 내에 빨리 푸는 것도 목표로 두고 공부했다. 그는 여름방학 이후부터는 별도의 단어집을 사지 않고 그가 문제를 풀며 마주치는 문장 속에서 모르는 단어들을 적어서 그만의 단어집을 만들었다. 그가 푸는 영어문제가 점점 많아지는 만큼 그가 수집하는 단어의 개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별도의 단어집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수학도 과거의 3,6,9월 모의고사들을 풀면서 시간 관리까지 생각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시간 관리를 잘해 아는 문제는 다 풀 수 있도록 하고 몇 개의 4점짜리 고난도 문제만 더 섭렵하면 안정적인 2등급을 만들거나 운이 좋았을 때 1등급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고3 1월, T가 다니던 보습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모의고사에서 그는 재원생 중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학원에서는 T와 T의 부모를 불러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학원의 최상위반에 T를 편입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상위반은 10명 이내로 운영하고 선생님들도 단과반 선생님들의 강의를 특강 형식을 통해 제공하기 때문에 수강료가 두 배지만, T의 경우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이 학원에 다녀 이 정도의 성적 향상을 이뤘으니 원래 수강비 25만 원에 교재비 매월 3만 원만 추가하면 T를 최상위 반으로 편입해 저희가 관리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T의 부모는 학원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T는 고3 때부터는 그가 다니던 학원 최상위반에서 별도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T는 고3 6월 본 모의고사 성적표에서 충격을 맛보았다. 수학과 영어는 3월 모의고사에서 2등급을 거쳐 무려 1등급으로 올라왔는데, 믿었던 국어는 한 두 문제만 더 틀리면 3등급으로 내려가는 위태로운 2등급이 되었다. 그런데 더 믿었던 사회는 선택과목 4개 중 2개가 3등급, 2개가 2등급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3개만 제출하니까 사회의 등급표는 2,2,3등급이 되는 것이다. 이 성적이면 작년 모의고사에서 말했던 H대는 지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사실 고2 겨울방학부터 장학제도가 좋은 학교들을 알아보았다. 서울에 소재한 몇 개의 대학교는 수능에서 모든 과목 2등급만 넘겨도 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성적 대로라면 나름 안전하다고 잡아둔 이런 기준조차도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그는 잠시 실망했지만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어차피 자신이 공부를 시작할 때는 'in서울'이라고 하는 서울 소재 명문대학교들은 꿈도 못 꿨다. 상황이 달라지니 사람이 달라져 잠시 더 높은 꿈을 꾸었을 뿐이다. 사회과목은 암기할 것이 많으니 그가 영어와 수학에 비중을 두었던 겨울 동안 많은 경쟁자들이 사회과목에서 치고 올라왔을 법도 했다.
'이만하면 되었다. 마음 놓고 편하게 하던 대로 하자. 어차피 그래봐야 하루종일 공부하는 것 밖에 할 게 없다.' 하며 마음을 놓고 나니 여름방학이 되었다.
문제는 고3 여름방학이 되니 T의 반 아이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T가 속한 반은 남고 문과의 지독한 꼴찌 반이었다. 평균적인 전국 상위권 남학생들은 수학에 강점을 가져 이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으니 남고의 문과에서 꼴찌반이라면 그 상황이 뻔했다.
T가 의도적으로 꼴찌반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프랑스어를 배워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의 대세는 중국어였던 것이 문제였다. 공부를 좀 한다고 하는 학생들은 중국어가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는 대세에 휩쓸려 모두 중국어를 선택했고, T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단 두 개의 외국어 중 하나였던 프랑스어는 인기가 너무 없어 선택하기만 하면 같은 반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중학생 시절 소위 문제아라고 불렸던 많은 아이들은 문제아들 특유의 끈끈함으로 똘똘 뭉쳐 모두 프랑스어를 지원했다. 이들이 T와 같은 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고3 6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자신들이 곧 수능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고는 뒤늦게 기출문제집과 시중의 예상 문제집을 뒤적거리며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그들의 여름방학은 당연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T는 고3이 되자마자 차례차례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는 반 아이들의 질문 대상이 되었다. 6월 모의고사까지 T는 자신의 공부가 더 바쁘다는 생각으로 문제 해답지를 쉽게 풀어주는 수준의 답변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그의 공부를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여름방학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그들의 질문에 좀 더 성의껏 답변하고 싶어졌다.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에게는 가끔 한 두 개의 질문이지만 그것을 대부분 T에게 질문을 하다 보니 T는 하루 평균 두어 개의 질문을 받았다. 그가 원래는 강점이었으나 6월부터 좌절의 근간이 되었던 국어와 사회과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수학과 영어는 이미 그들의 현실 속에서는 공부하기에 너무 늦은 과목이었고, 국어와 사회에서 최대한 전국 등수를 올려 대학에 진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 1등인 T를 배려하고자 그들 나름대로는 가끔 질문하는 수준이었지만, 질문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니 T는 매일 그들의 질문을 당면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성의 있게 답변하고자 하니 T 스스로 문제를 풀고 복습하는 양은 되레 줄어들었다. 오히려 고3 때부터는 문제풀이에 집중하느라 도외시했던 교과서나 기본 개념을 다시 챙겨보는 시간이 많았고, 그걸 꼴찌반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고2 때보다 개념을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T가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쯤에는 학원에서도 역시 실전 모의고사 위주의 문제풀이와 강의가 주를 이뤘는데, T의 정답률은 오히려 국어와 사회 쪽에서 매우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T는 풀어본 문제와 비슷한 것들을 자꾸 마주치는 효과라고만 생각했다. 9월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는.
그의 9월 모의고사 성적은 이러했다. 국영수와 사회 4과목을 순서대로 읊자면 1,1,1,1,1,2,2. 요컨대 사회과목 4개 중 2개가 2등급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1등급이었고, 사회는 성적 높은 3과목만 선택해서 응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회과목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전국 1등급을 맞이한 것이었다. 고등학생들이 꿈의 대학으로 생각하는 S.K.Y 대학 중 국사가 필수인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 S대를 제외하고 K, Y대의 모든 학과를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S 대는 애당초 꿈도 꾸지 않았기에 T는 S대 지원자가 바글바글한 국사과목은 아예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T가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 그가 성적을 급격하게 올리거나 슬럼프를 극복하는 모든 과정은 '공부를 공부답게 하는 것.'이었다. 영어와 수학 자체를 잘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개념, 즉 문제의 본질에 다시 충실했더니 세계에서도 가장 평균 지능 수준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뚫고 T는 전국 상위 1%까지 갔다 온 것이다. T의 공부에 정의, 그리고 그런 정의를 내린 T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왔다.
"공부는 인생 자체일 거야. 문제없고 난관 없는 인생이 어디 있어. 그걸 해결하는 게 공부니까 공부는 인생의 과정일 수밖에 없고, 그걸 알고 있는 난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
그는 그렇게 자신감에 차 되뇌곤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가진 유일한 자신감을 붙들고 말이다.
2023년 T의 주석:
진정으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오로지 학창 시절 성적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부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인생을 잘 풀어가는 높은 실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인생은 그야말로 풀어가야 할 문제와 난관 투성이니 말이다. 그렇게 볼 때 학창 시절 우리가 교과목을 배우는 까닭은 어린아이들에게 실제 삶의 엄혹함을 체험시키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시켜보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어쩌면 진짜 공부는 학교들을 모두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사랑이라는 사건 혹은 여정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축소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랑을 할 때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문제와 난관을 마주치니까.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랑은 끝이다. 따라서 사랑한다면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공부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닐지라도 연필과 샤프처럼 따지고 보면 별로 차이가 없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 대해 계속 궁금함을 갖고 나를 알아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계속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며 당신을 알아가는 것을 전제하니까 말이다.
공부, 그리고 인생에 대한 당시의 내 생각은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너무 부족하던 나였지만 결국 당신의 사랑에 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재라도 될 수 있던 비결은 운 좋게도 공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사랑에 대해, 그리고 당신에 대해 계속 공부해 갔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을 공부했다. 그 안에 연애의 정석이나 공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당신이 내 맘 속에 떠나지 않고 계속 서있는 커다란 질문으로 자리 잡았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해가는 것이 사람의 본질인지라 당신은 오늘도 여전히 내 앞에 질문으로 서있다. 당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장인이 되고 싶다. 오늘도 공부해야겠다. 사랑을, 그리고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