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의 기원
"혹시... 제3세계 국가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있으신 분이 있나요?"
제3세계의 정확한 뜻을 묻는 동아리의 간사가 묻자 동아리방에는 가난한 나라를 뜻한다는 컨센서스가 단박에 형성되고는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깬 건 T였다.
"원래는...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소련 진영과 미국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냉전이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그 두 진영 중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라들이 있는데 그 나라들을 제3세계 국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축 중 어느 곳으로부터의 지원도 받지 못하다 보니 발전이 더뎠고, 그래서 제3세계 국가라고 하면 가난한 나라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아요."
"정확한 설명이십니다. 원래 그 말을 하면서 오늘 모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대신 설명해 주셨네요. 오늘은 자신들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도 거부했지만, 또 다른 식민지배가 될까 소련 중심의 동구권도 거부한 나라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또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비단 국가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닌지 돌아보기도 하겠습니다."
동아리 방은 '오~'하는 소리와 함께 술렁였다. 다들 명료한 T의 설명에 놀란 눈치였다. 놀란 사람들 중에는 A도 있었다. 2008년 4월, 벚꽃 슬슬 피어오르며 1학년들의 첫 중간고사 기간을 앞둔 동아리방의 이야기였다.
사실 어찌 보면 그날의 이야기는 비단 국가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 동아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동아리는 공식적으로는 '기독학생연맹', 즉 기독교 동아리로서 종교 동아리에 속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던 시기, 학생들을 무자비한 공권력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우산은 종교 밖에 없었다. YMCA나 교황청처럼 냉전 시기 한국이 속한 제1 세계 선진 국가에 권위 있는 본부가 있어 그들을 탄압할 경우 서구권 전체로부터 인권 보호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학생들이 성당이나 교회로 숨어들면 권력도 쉽게 그들의 신체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대학교에는 종교 모임을 토대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동아리들이 형성되었는데 그곳 중 가장 주도적으로 민주화를 이끌었던 곳이 여기라 한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국에 이름 있는 대학교들은 저마다의 기독학생연맹 동아리가 있어 학생운동을 함께 주도하곤 했더랬다.
하지만 때는 2008년. 식자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하나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시대였다. 그 때문인지 OT 때 A의 흑기사를 자처해 줬던 선배 진우가 회장으로 있는 이 동아리는 이제 '친목 동아리' 혹은 '술 동아리'로 분류되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친목 동아리는 과거 학생운동을 뿌리로 둔 동아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친목 동아리란 동아리의 제3세계를 뜻했다. 다른 종교 동아리처럼 같은 교인들이 모여 뚜렷한 모임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외 다른 동아리들처럼 음악이나 그림 등의 명백한 동아리의 존재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기간 전 한 주에 한 번 있는 동아리 모임은 종교와 사회에 대한 인문사회학 세미나 시간이 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동아리 구성원들은 그걸 그저 잠깐의 의미 있는 머리 식히기 시간이자 함께 술을 먹기 위한 명분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그 시간에 T는 간혹 그렇게 어디서 배우고 읽었는지도 모를 지식들을 늘어놓곤 했다. A는 늘 생각했다. 내 남자친구라서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스트레스받는다고.
'나는 도대체 뭐지?'
A는 제3세계에 대한 간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자신도 고등학교 때부터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제3세계 인간 같았다. 제3세계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선택한 바 없었다.
고등학교 이전 시절은 그녀에게 오히려 편안한 삶의 울타리였다. 아버지의 해외 주재원 발령에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살았던 일본. 거기서 그녀는 철저한 그 세계의 사람이었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녀는 다른 부모들의 모범 표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귀국으로 인해 고1말 무렵 들어온 한국, 그리고 강남 8 학군에서 그녀는 그저 '이방인 입시생'일 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대학 진학의 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수능과 수시. 하지만 해외에서 5년을 살다 온 그녀는 수시에서도 소수만 응시 가능한 '재외국민 전형'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외국민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같은 반 아이들과 분리되어 거의 매 수업 별도의 교실에서 따로 공부를 했다.
그녀가 보기에 수능과 일반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공부량과 수준은 자신과 비교해 턱없이 높아 보였다. 영어나 일본어 같은 외국어를 제외하곤 자신이 대학교에 가서 그들과 경쟁력을 갖출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재외국민 전형에서 그녀가 일본에서 중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승승장구하는 성적을 갖췄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대학교에 대한 눈높이는 오히려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냥 엄마가 살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공부를 하라고 해서 열심히 했고, 엄마가 다니라는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문과와 이과도 자신이 선택해야 했다. A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살아온 모범생이었으므로 자신이 문과 성향인지 이과 성향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1 때 세상의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해 내는 선생님이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이과를 선택했으나 그 선생님은 한국에 없다. 한국에서 마주친 입시 과학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수학도 수능보다 재외국민 전형의 수준이 더 낮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그 재외국민 전형마저도 이과 수학을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웠다. 그녀는 그렇게 고3이 되어서야 문과로 도망 왔다. 도망쳐온 자에게 천국이란 없었다. 문과는 이미 그 전형에 맞추어 제대로 준비한 또 다른 재외국민 전형 지원자들이 넘쳤고 그녀는 그렇게 지금 T와 서있는 s대 캠퍼스에 겨우 턱을 걸친 것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와보니 여기 또 다른 제3세계 인간 T가 있다. 이 아이는 착실하게 학점을 따는 공붓벌레 대학생도 아니나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서 술을 먹거나 악기를 튕겨대며 공부와 동떨어져 놀아대는 한량 대학생도 아니었다. 수업에서 요구된 과제가 자신의 관심 분야라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산더미처럼 옆에 쌓아놓고 혼자만의 연구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학금 지급의 최소 기준인 3.5만 넘는다면 자신만의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만의 연구에 빠져 교수님과 다른 견해를 가지기도 했다. 그는 철학 입문이라는 과목에서 교수가 교재로 쓴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렇게까지 찬양할 인물인지 납득되지 않았다. T는 A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참조한 다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관련 고전들을 예시로 들며 설명하곤 했다. A는 T의 말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그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관해 뭘 생각하건 그녀에게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너는 뭔데 벌써 스스로 생각하고 사는 거야?'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자신이 왜 사회과학부에서 성적을 잘 받아 2학년 본과 편입 때 경영학과를 가야 하는지, 자신에게 대학 공부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니 공부 자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T와 대화를 할 때마다 T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이든 이야기할 때면 T에게 대놓고 열등감을 표출하곤 했다.
"역시 우리는 결국 헤어질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우리 우리나라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린 너무 달라. 난 너무 멍청하고 아는 게 없어. 넌 더 똑똑한 여자에게 가버릴 거야."
"아니야, 우린 다르고 내가 어딘가가 뛰어나면 또 반대로 어딘가 한없이 부족한 거야. 저번에 너도 나를 용서하며 인정했잖아. 넌 정말 나에게 대단한 여자라고."
"그런 립서비스는 필요 없어. 그건 그거고 내가 멍청하고 아는 게 없는 건 변하지 않아. 넌 날 결국 버릴 거야."
늘 이런 식이었다. A가 열등감을 표출하면 당황한 T는 A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대단한 존재인지 긴 시간 설득을 하며 풀어줘야 했고, 이따금 그런 상황은 계속 반복되곤 했다. 사실 A가 T에게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이다시피 저런 대화를 주도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T의 끈질긴 설득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같았다. T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T가 자신에게 바짝 고개를 기울여 T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점이 많은 존재인지, 또 반대로 A가 가진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할 때 조금씩 누그러졌다가 다시 올라오곤 했다.
사실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이 T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 모든 주변 또래에게 깊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걸 대놓고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T일 뿐이었다. 막연하게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과제와 공부에 매진하는 자신과는 달리 주변에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신의 남자친구인 T가 옆에서 자기 혼자 대학생인 것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쌓아놓고 혼자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 2008년의 A는 연애의 행복과 열등감의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탈 따름이었다.
2023년 A의 독백:
돌아보면 T는 객관적으로 열등감을 느껴야 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다. 열등감을 느끼면서 옆을 보니 T가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이 딱하다. 우리 세대는 맹목적으로 커왔다. 성적을 잘 받고 대학을 잘 가면 알아서 세상이 내 편이 되어줄 것처럼. 그런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내 또래 중에 과연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있나 싶다. 행복하다는 고백이 수십억의 돈자랑보다 귀한 요즘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커온 우리 또래가 어느새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들 마저 그렇게 키우려고 안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실이 그런 것인지 우리가 컵 속의 벼룩처럼 혹은 깨어나지 못한 알 속의 새끼새처럼 넓은 세상에서 좁게 살도록 강요받아 세뇌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자라나는 아이들이 딱하다. 수 많은 아이들이 예전의 나처럼 자기가 누군지 모른 채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가 꼴찌라고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라면 적어도 내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하며 내 옆에 잠든 내 아이를 보며 생각해본다. 그러나 나 또한 사람인지라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또 흔들린다. 그럴 때면 대학 신입생 때, 연애와 대학 생활의 설렘으로 채워도 모자랐을 시절에도 수많은 시간 열등감의 지옥 속에서 살았던 나를 잊지말자고 계속 되새겨 본다. 내 아이는 자신의 젊은 날이 얼마나 꽃같은 날들의 연속인지 알게 해주는 부모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