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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아빠 Oct 17. 2023

상처에 되물리면 사랑을 바르세요

상처에 되물림과 사랑이라는 연고

결혼하고 아기를 키우기 참 좋은 세상이다.


아동학대와 훈육을 구분하지 않고 가정폭력과 부부싸움을 구분하지 않던 시대가 있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저들이 적어도 구분되는 시대가 아닌가?

2023년 현재는 T가 보기에 아기를 키우고 결혼하기 유래 없이 좋은 세상이다.


T가 돌아보는 자신의 유년기는 학대와 폭력으로 점철된 암흑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를 만든 사람들은 모든 것이 훈육이었거나 단순한 갈등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T는 집에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는 것이 늘 두려웠다. 기억나는 건 4살 때부터다. 이제 막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었던 어린 T의 집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그네를 매달아 놓은 쇠봉 하나가 문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별안간 아버지가 형과 T를 훈육하다가 자기 분에 못 이겼는지 그 봉을 뽑아 위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네를 고정하기 위한 봉이 쇠파이프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홧김에 휘두른 쇠파이프에 T는 머리를 스치듯 맞아 두피 한 켠이 찢어졌다. 피가 눈썹을 타고 흐르고 T는 잘못했다고 울며 빌다 자지러진다. 속상해하며 연고를 발라주는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이 T는 왜 기억에 남는지 모른다. 


"원래는 네가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T의 아버지가 엄마로부터 찢어진 머리를 치료받고 있는 T를 보고 있는 T의 형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이후 일년에 몇 번은 훈육을 이유로 어떻게든 T의 몸에 멍이나 생채기가 남는 매질이 이어졌다. 그렇게 보면 이 집의 가해자는 1명뿐인 것 같았지만 T의 입장에서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T의 형도 T를 때렸다. 그건 그 집의 분위기상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맞을 짓'이라는 게 존재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집안의 계층 최하위에 있는 이에게 요구된 것은 복종이었다. 하지만 복종보다는 공평을 요구하는 T는 그저 맞을 짓을 하는 동생일 뿐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집안에서는 네가 제일 문제라며, 바득바득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드는 모양새가 아빠를 똑 닮았다며 가끔 대드는 T를 모멸하는 엄마도 있었다. T가 보기에 T의 엄마는 이 집안의 큰 피해자이며 자신이 아버지나 형에게 맞을 때 그 정도가 심해지면 개입해 T를 보호하려 애쓰던 T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T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T를 위한 전적인 보호의 울타리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남편한테서 받은 상처는 다소 예민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말대꾸를 일삼는 T에게 자주 화풀이되거나 한풀이되었다. 어머니가 응어리진 것을 자식들에게 풀이하는 방식은 이러했다.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대드는 상황에서 자식들에게 '아빠 닮아서 저런다'며 내리 깎는 것으로 시작해 인격적 모욕을 가미하는 것이다. T는 특히나 가끔은 논리적으로 대들며 본인의 자존심을 무력화시키곤 했기 때문에 '이 집에서 네가 가장 문제'라는 말로 T의 자존감을 후벼 팠다. 

  

그렇다고 T도 유년시절 마냥 잘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 애교가 많았던 T는 자신이 생각한 정당한 요구와 문제제기가 논리가 아닌 나이와 부모 혹은 형이라는 위치로 정당화된 권력에 무력으로 억압받고 무시당하자 점점 부모와 형에게 적대적이 되어갔다. 그렇게 공격적으로 변해가던 상황 속에는 T가 다분히 합리적인 상황도, 그렇지 않던 상황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구분되지 않았다. T는 버르장머리가 없고 싸가지가 없게 커가는 걱정거리였고, T의 가족들은 왜 T가 그렇게 변해가는지 T를 책망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결코 가끔은 논리적이고 맞는 이야기를 하는 T의 말대꾸를 버르장머리 없다 취급하거나 때리기와 인격 모욕으로 대하는 자신들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저 T의 일탈이었다. 


다만 T의 엄마도, T의 형도, 심지어 T의 아버지도 모두 가해자지만 또 피해자였을 터였다. T의 형은 아버지에게 받은 억압을 자신보다 약자인 동생에게 풀려고 하는 것이 본능적이었을 것이고, T의 엄마 역시 무시당한 자신의 권위와 존재를 자기 자식들에게는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T의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 때 홀로 상경해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람한테 데인 적이 많았다고 한다. 데인 적이 많았다고 하기에 그 시절은 너무 험난했다. T의 유년기가 학대와 훈육이 구분되지 않던 야만의 시대였다면 T의 아버지 유년기는 아이들에 대한 보호 자체가 이뤄지지 않던 시기다. 거기에 자신의 평생직장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공기업이 98년의 한국 외환위기를 계기로 민영화되어 이런저런 소기업을 전전하는 입장이었으니 어쩌면 피해의 횟수와 규모 순위로 T 가족의 줄을 세운다면 맨 앞은 T의 아버지가 있을 법도 했다.   


그렇게 상처는 대물림되고 또한 되물려 자신의 살갗을 도려내 버리곤 한다.  


T는 고 1 입학하자마자 아버지가 어머니를 별안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경찰이 와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집안사였고, 심한 폭행을 이유로 접근금지 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접근이 금지되도록 공권력은 절대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들을 살해하기 위해 자신들을 찾고 다니면 어쩌나'하는 T의 질문에 경찰은 '그건 우리가 막을 도리와 권한이 없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 시점부터였다. T는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새벽 한 시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고1 입학하자마자 본 모의고사 성적을 유지하면 어느 대학교를 갈 수 있는지 알아본 T는 자신의 지금 당장의 현실이 자신이 처음 들어본 지방대임을 깨달았다. 현실적으로 명문대를 갈 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 명문대의 지방 분교, 혹은 공부에서 성과에 더해 운까지 있으면 지방 국립대를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성적으로 올려 빨리 부모로부터, 그리고 그 상처들로부터 독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고1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의 공부는 고2 때 공부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성적은 수능 날까지 중간에 작은 부침을 겪더라도 계속 상승했다. 심지어 수능 하루 전날 공부하면서 밑줄 친 내용이 두 개나 다음날 수능에 나오기도 했다. 하루하루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려 더 좋은 대학을 장학생으로 가려면 성적을 계속 올려야 했고 그는 그렇게 하루에 읽을 교과서 범위와 풀어나갈 문제 수 까지 다섯 페이지, 다섯 문제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실천해 나갔다. 그걸 마치지 않으면 학원에서 한시에 돌아와 새벽 두 시까지 문제를 풀다 자기도 했다. 체력이 바닥나는 걸 느끼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2주에 한 번 주어지는 토요일 휴일은 자율학습을 위해 등교하지 않고 집 근처 산에 가 등산을 하고 낮잠을 자는데 활용했다. 그는 그렇게 주변 성적이 좋은 또래들과 비교해서도 전례 없이 계산적이고 치밀해졌다.   


그렇게 T는 2008년이 되어서야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부모가 함께 사는 그 집에서 통학을 하고 용돈을 한 달에 25만 원씩 받으므로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으나 언제든 휴학을 하고 한 학기 알바를 전전하면 2년 치 생활비는 벌 수 있기 때문에 T의 경제적 의존은 T의 입장에서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언제든 수가 틀리면 부 혹은 모든 가족과 연을 끊고 독립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이 고3, 그것도 생일에 경찰차 안에서 울면서 공부하도록 만든 가해자를 조금이라도 악착같이 활용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이자 어찌보면 하늘이 내린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는 경찰차에서 얼굴이 퉁퉁 부은 어미를 옆에 두고 문제집에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시험을 준비하도록 했음에도 정작 자기 자식이 s대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며 잘 키운 자식에 대한 주변 자랑을 하고 다닐 터였다. 그들의 재산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T에게 너무 억울한 일이자 인류적으로 부당한 일이라고 T는 생각했다. T는 급기야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학업에 정진하기 위함으로 고시원 생활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T가 학점을 잘 받아왔고 정말로 중간 기말고사가 속한 달은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고 오기 일쑤였으므로 T의 요구는 학업에 충실한 대학생이라는 그의 주장 논거를 볼 때 정당한 것이었다. 부모는 명문대를 그들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다니는 T의 정당한 요구에 흔쾌히 동의하였고 고시원비는 35만원으로 기존 용돈보다 10만원이 비쌌지만 T는 고시원을 지원받는 대신 과외를 통해 본인이 용돈을 벌었다. T는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자신이 충당하는 스스로를 과거의 심각한 상처와 트라우마까지 이겨내고 완벽히 독립한 성인이라 생각하며 뿌듯해 했다. 자신이 A에게 희번덕한 눈으로 윽박을 지르기 전까지는.


그날은 여름을 슬슬 갈무리하는 2008년 9월 어디쯤이었다. 10월에 중간고사 기간이 되기 전 충분히 놀아야 하므로 T와 A는 공강의 빈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계획과 실천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은 삼청동을 거쳐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10시 15분에 A의 수업이 끝나고 만나 T의 과제모임을 위해 3시 반까지 명륜동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일정이 빡빡했다.


삼청동은 그들이 늦봄에 발견한 나름 그들만의 데이트 장소였다. 한가한 골목 구석구석을 돌면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수제 장식품을 파는 공방이 많았다. 조금만 더 걸어 안국역으로 나가면 이런저런 미술 갤러리들이 있어 그냥 걷기만 해도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3분만 가면 삼청동 초입부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T와 A는 대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그 동네를 함께 발견한 것에 희열을 느끼며 틈만 나면 삼청동을 쏘다녔다. 


그런데 T는 그날따라 다소 초조했다. 삼청동에서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좋았지만 거기서 A가 가보고 싶어 하던 충무로 카페로 간 뒤 다시 학교로 복귀하려면 다소 촉박했기 때문이다. A는 몇일 전 명동 기숙사에 사는 룸메이트에게 분위기 좋은 카페가 충무로 근처에 있어 언제 한 번 들렸다오면 좋겠다고, 다만 좋은 데이트를 먼저 하고 나서 그 행복한 기억을 나누는 대화를 그 카페에서 해보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T는 그 말을 듣고 삼청동에서 평소처럼 예쁜 거리를 걸은 뒤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에 충무로 카페에 들를 수 있는 최적의 데이트 코스를 계획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평소처럼 걷는다면 아무런 무리 없이 근사한 데이트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최상의 계획이었다.


균열은 점심때 생겼다. 점심시간에 줄을 서는 식당인 것은 알았지만 평소 지나치며 보던 것보다 줄이 길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줄이 빠지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할 지체를 대비해 시간을 넉넉잡아 두었기 때문에 T는 일단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어도 지하철을 타러 가는 걸음을 재촉하거나 점심을 더 빨리 먹어야 했다. 하지만 A는 평소보다도 밥을 더 천천히 먹는 것만 같았다.


"밥을 좀 더 빨리 먹는 게 좋겠어."

"..."


A는 친절한 말투지만 미묘하게 예민함이 서려있는 T의 말에 기분이 나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른 때에도 이런 말투의 말을 가끔 듣기도 했지만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빨리 먹으라는 말을 그렇게 들으니 짜증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데이트를 하며 사랑이 넘치는 식사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음식을 입에 처넣는 기분이었다. 줄을 설 때에도 T는 자신과 대화하기보다는 계속 핸드폰 시계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사실 그때부터 A 역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A는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식사를 한다. 속도가 조금 빨라졌지만 그건 기분이 나빠서 씹는 강도와 속도가 빨라진 것뿐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니 한시 삼십 분 정도 되었다. 식당입구에서 안국역까지 걸어서 이십 분이고, 충무로역까지는 5분이며 충무로역에서 내려 걷기까지는 15분 정도 소요되니 카페에 도착하면 두시 십분 정도 될 것 같았다. 충무로역에서 T가 과제모임을 하는 카페까지는 다시 삼십 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오분을 넉넉 잡아 2시 55분에는 카페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보면 40분을 카페에서 있을 수 있는데 긴 시간은 아니지만 데이트하기에 충분한 최소한의 시간은 확보했다 생각하며 T는 식당에서 길을 나섰다. 


그런데 A의 손을 잡고 가려는데 A가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뭐야? 왜 손을 안 잡아."

"나 그냥 학교로 다시 갈래."

"왜? 겨우 카페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는데. 평소처럼 걸어서 지하철 타면 카페에 갈 수 있어."

"아니야 학교로 갈래."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우리 카페 가서 이야기하자."

"아니야 싫어. 그 카페 절대 안 갈 거야."

"아 왜 그러냐고! 가자, 가서 이야기해!"


T는 자신의 치밀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싫었다. 아니 그렇게 될까 봐 화가 났다. 자신이 검색해 본 그 카페는 정말로 분위기가 괜찮았고, 그 카페에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계획한 데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녀와의 좋은 분위기와 아름다운 대화였다. 그런데 노력 끝에 예상치 못한 식당에서의 지체에도 카페에 가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했는데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데이트 목적 자체가 와해되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카페에 갈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모든 면에서 최악이라고 느낀 T는 그녀의 손을 잡고 끌고 가듯 걸음을 재촉했다.


"아! 이거 놔!"


울먹임이 섞인 외침으로 A가 T를 뿌리친다. 뿌리치는 동작이 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 몇이 그들을 쳐다봤다. A와 T모두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T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A의 손에 빨갛게 손가락 자국이 난 것이다. 손목을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피가 급격하게 쏠려 그 자국대로 멍이 든 것 같았다. 멍든 어미와 자신의 몸이 생각났다. 그대로 몸에 힘이 풀려 멍하니 서있는다.


"넌 정말 피곤한 사람이야. 그리고 너 화날 때 눈이 너무 무서운 거 알아? 언젠가는 너한테 맞을 것만 같아. 난 살면서 그런 눈빛은 겪어본 적도 없다고. 나 잡지 마 잡으면 바로 헤어지는 거야."


주변 시선에 수치심을 느낀 A가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T에게 말했다. T는 멍하니 서있었고 그녀는 가버렸다. 그녀가 잡지 말라고 해서 잡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잡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에 한 말 한 구절 한 구절이 그의 가슴에 서슬 퍼렇게 꽂혔다. T의 어머니는 아버지 더러 정말 피곤하고 꼬장꼬장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날 때 아버지의 눈은 늘 살기가 있었다. 마치 자식을 죽이는 패륜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살기를 띤 눈으로 윽박을 지르면서 때리면 꼭 그날은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났다. 갑자기 기억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정강이로 귀를 걷어차 귓바퀴 뒤쪽이 찢어져 피가 나고 귀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강도만 달랐을 뿐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을까. 갑자기 사무치는 기억에 견디기가 힘들어 T는 그녀를 잡지 못하고 과제모임도 가지 못하고 마지막 수업도 앉아만 있다가 왔다. 원래는 그 마저도 가기 싫다고 생각했다가 학점이 4.5만 점에 3.5는 넘어야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어 간 것이다. 


T는  고시원에 돌아왔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서늘한 말투로 그는 샤워를 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때마다 수치감을 느꼈다. 하지만 진짜로 자신이 닮았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 인정은 괴롭고 슬픈 것이었다. 자신이 독립을 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공부 계획을 짠 것도 그렇게 보면 아버지를 닮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준다며 주말에 전국 곳곳을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생각만큼 자식들이 자신이 계획한 일정에 따라주지 않으면 바로 태도를 바꿔 발로 배를 걷어차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후려갈겼다. 자신도 계획이 틀어지자 그녀의 손목을 자신도 모르게 무자비하게 움켜쥐었다.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다. 


T는 다음날 마지막일 수도 있는 중요한 말을 하겠다며 A에게 용기를 내어 문자 했다. 자신의 모든 과거와 자신이 그 과거를 만든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해 A의 판단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A가 그걸 듣고 자신과의 이별을 통보해도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어머니 같은 사람을 자신이 만든다면 T는 언젠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망가져 누군가를 죽이는 지경까지 이를 정도로 삶이 망가질 것이라고 느꼈다. A를 깊이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A를 그 희생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A를 그렇게 다시 만났다. 여전히 손목 자국은 그대로 있었고 천천히 오는 봄과 달리 급격하게 오는 가을이라 그녀가 긴팔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A는 차가운 표정으로 T를 쳐다보았다. A를 부르는 것만으로 목이 멘 T는 사람이 없는 카페 구석으로 장소를 옮겨 모든 것을 말했다. 4살 때부터 시작된 폭력과 어머니, 자신의 피해. 그리고 어제 이어진 자신의 가해와 그를 통해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인정하게 된 점. 기회를 준다면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나 그 과정에서 그런 모습이 다시 나올 수도 있어 힘든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전달했다. 헤어질 것이 뻔했고 헤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말하니 T는 중간중간 밀려 나오는 울음에 고개를 숙이고 꺽꺽대는 소리를 내며 눈물범벅이 되어 말을 마쳤다.


A는 T의 어린 시절을 듣고 같이 목이 메어 눈물을 글썽였다. T가 가여워서인지 아니면 T와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슬퍼진 것인지 A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신도 이제 T에게 함부로 이별 통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T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T의 상처를 안고 가기 버거울 수 있다는 막막함이 A의 가슴을 누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A는 입을 뗀다.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언제든 헤어질 거야."


머리에서 정리한 말이 아니었다. 헤어지기 싫은데 계속 감당할 수 없다는 마음이 밀어낸 말이었다. T는 예상했던 이별 통보가 아닌 기대했던 용서의 말이 그녀 입에서 나오자 가슴이 벅찼다. 처음이었다. T는 이전까지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을 용서해 본 적도 없었으나 스무 살을 먹고 처음으로 그녀 앞에서 자신을 용서해 보기로 했다.  



2023년 T의 주석:

내 대학교 학생증 사진은 냉소와 분노가 어려있다. 친구들이 왜 이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찍었냐고 말할 정도로. 그런데 몇 년 전 찍은 내 운전면허증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평온한 눈과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A가 학생증 사진과 대조해 보며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말할 정도로.


사랑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사랑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가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바르는 항생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균의 감염으로 인한 염증을 막을 뿐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본인의 신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아마 나는 그날 처음으로 A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모든 것을 걸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치열하게 살아야 사랑이라는 연고가 힘을 발휘해 비로소 스스로 치유되고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흔한 세상의 말에 이 글을 통해 딴지를 걸고 싶지만,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는 흔한 말에도 좋아요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사람은 변하나 누군가가 대신 고쳐쓸 순 없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때까지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사랑의 대상이 연인이건 자신이건.   


상처를 겪고 자신 또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자신을 그만 용서하라고. 용서하고 마음을 열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연고를 발라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걸고 변화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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