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하나 공감가지 않는 소절이 없다. 나를 지켜주던 게 열정 방황 순수였다는 거- 알지. 다치고 아프더라도 결국에는 또 사랑하고 말리라는 것도- 알지, 잘 알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 역시- 알지, 너무 잘 알지.
그러고 보니 헤어질 때 지나치게 절절하지 않는 거, 나도 그러네. 눈물 콧물 짜내며 거창하게 이별의식 치르는 건, 뭐랄까... 너무 근시안적인 작별처럼 보인달까. 노래가사처럼 배웅은 또 다른 마중과 맞닿아 있는데, 떠나보내는 데에 기력을 소진하면 다음 인연에 쓸 기력이 없지 않겠는가.
떠나가는 사람에게도, 보내주는 사람에게도 진 빠지는 이별은 달갑잖다. “그렇구나.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구나.” 이렇게 쿨한 아듀가 좋다. ‘잘 가라’는 말 대신, ‘다음에’라는 말로 여운 주는 이별은 더 좋다. <그해, 여름 손님> 속 올리버가 그랬듯이.
그가 헤어질 때마다 ‘Good-bye.’ 대신 ‘Later.’라 말하는 것처럼 나도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See you later.’라 말하면 어떨까. 어떻긴 안 봐도 비디오지. 말하는 나야 흐뭇하게 퇴장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모골이 송연할 게다.
뭐야, 갈 거면 혼자 가지 좀 있다 보자는 건 무슨 심뽀야?
-하며 ‘안 들은 귀 삽니다’ 심정으로 귀를 후비적 댈 테지. 에휴- 그래,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이들이여. 내 마지막 길에 진정 위로되는 건 사람보단 가슴 적시는 BGM일 테니.
(과장 조금 보태) 생과 사의 경계선에 서 있자니 <나를 떠나가는 것들> 가사가 더욱 깊숙이 꽂힌다. 당장 눈을 떠 곡 재생을 하고 싶지만, 그래서 이 고독한 사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보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다 진짜 가는 수가 있으니. 다음을 기약할 새 없이, 소리 소문도 없이 떠나가는 수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