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직근무

이 밤, 나의 시내산에서.

by 서은

고요하고 쓸쓸한

밤의 정원

이 적막함이 나는 외롭지 않다.


낮의 소란이 물러가고,

사람들이 남긴 빈자리마다

달빛이 눕는다.


텅 빈 외래,

희미한 조명 아래,

잔잔한 찬양이 공기를 감싼다.


차트를 정리하며,

책장을 넘기며,


나는 문득

이 시간이 고독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쁘게 스쳐간 시간,

일상에 쫓기던 날들,


고요가 찾아와

혼자가 되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독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채워짐이라 했던가.


이 밤,

이 적막은

평화요, 감사요, 기도다.



p.s

정형외과 당직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처음엔,

이 밤들이 낯설고 무서웠다.

텅빈 병원, 깊은 적막,

혼자라는 감각이 때론 외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고요함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찬양을 틀어놓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일하는 이 순간들이,

어느새 가장 귀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모세를 가장 좋아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홀로 하나님과 마주했던 그 시간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고 부러웠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혼자 일하는 이 곳, 이 시간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내산이 아닐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아마 두려워서,

이 적막한 밤의 근무를 피했겠지.


모두가 떠나간 자리,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