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Sep 07. 2024
엄마는 늘 내게 "내가 받고 싶은 걸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상대방이 받아서 기분이 좋을 것을 선물해야 가장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선물은 내 돈 주고 사기엔 아깝지만 누가 준다면 너무 잘 쓸 아이템들을 사주는 것이 좋다고 하여 이름 있는 브랜드 디퓨져나 차 방향제 혹은 용량 작고 가격 센 핸드크림 같은 것을 종종 선물하곤 했다. 향수 한 병 다는 너무 가격대가 높아 선물하기엔 내 지갑에도 한계가 있지만, 디퓨져나 차 방향제는 내돈내산 하기에는 좀 아까운 아이템인데 누구나 아는 좋은 향을 선사하니 선물했을 때 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또 여자들은 핸드백에 하나씩 들고 다니는 핸드크림을 고가의 브랜드 핸드크림으로 선물하면, "꺼내 쓰는 재미가 있다"며 반응도 좋고... 그렇게 선뜻 내가 굳이 내 돈 주고 사기엔 돈이 아깝지만 받는다면 기꺼이 잘 쓸 물건들로 선물을 주면 너무나 기분 좋아하며 받는 상대 덕에 주는 기쁨도 배우는 것 같다.
사실, 언제나 늘 그렇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나의 경제적인 상황도 고려해야하고 또 너무 받는 사람이 부담지지 않아야 하니 어떨 때는 시간을 들여 만든것이나, 아니면 받는 사람의 처한 특이한 상황에 딱 들어 맞는 선물도 훌륭한 것 같다.
폐암 진단을 받았던 우리 이모가 추위를 많이 타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돈 없는 대학원 학생 시절이라 이모에게 내가 직접 손으로 뜬 쇼울을 선물해드린 적이 있다. 유학중이라 이모 병문안도 직접 못 가지만, 이 쇼울이 나 대신 이모를 따듯하게 안아 드릴수만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꽤 오랜 시간 걸려 배워가며 만든 쇼울을 드렸고 이모는 그 어떤 선물 보다도 너무나 고마워 하셨다. 그리고 다행히 이모는 초기에 발견된 폐암 1기이셨어서 완치 판명을 받으셨고, 나도 이모의 회복에 건강한 기운을 조금이라도 보내드릴수 있었던 것 같아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러니 주는 기쁨도 있어야 좋은 선물인 것이다.
그에 반해 인사치레로 해야하는 선물을 줘야할 때는 여간 힘든게 아니다. 선물을 줘야하는 사람과 나의 사이가 불분명하거나, 마음은 없는데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언갈 골라야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골라서 주는 시간과 열정에 너무 대비되게 오래 걸리고 그 과정 또한 너무 곤욕스럽다. 가격은 얼마가 가장 적당할까? 그 가격대의 것을 받았을 때 그 이상의 효과를 내려면 뭐를 해야하나? 내 지갑사정도 갑자기 더 생각이 나고, 어쩔 때는 돈이 아깝기까지 하지만, 자칫 잘 못 보냈을 때 그 상대방이 내 마음의 부재(?)를 알아채리면 또 안되기에 그 만큼 돈으로 포장을 더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특별한 날이 되어서 이벤트 성으로 전해주는 일회성 선물 보다는, 오며 가며 그 사람을 생각해서 주는 것들이 진정한 선물이라 여기셨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교 앞에서 전단지 나눠주시는 분들이 할당 시간이 다 되서 다 돌리지 않고 남은 맨질 맨질한 고퀄리티 전단지들을 한 뭉큼 쓰레기통 위에 팽개 쳐놓고 가셨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전단지 뒷 장에 영어 단어 공부를 하는 연습장으로 쓰시는걸 좋아하셨다. 보통 신문지 사이에 끼여 들어와 며칠에 걸쳐 한 두장씩 모이는데, 이걸 갖다 드리면 뭉테기로 쟁여 놓고 쓰실 수 있을 것 같아 책가방에 챙겨 가서 드렸던 적이 있었다. 받으실 당시에도 너무 좋아하시긴 했는데, 두고두고 그 말씀을 하시면서, '평소에 내 생각을 하니까 이런게 보이면 나를 떠오리는 것 아니겠냐'며 이모들이며 엄마에게 말씀하시며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래, 맞다. 그렇게 큰 것 필요 없고, 심지어는 어떤 이에게는 쓰레기인 것도 다른이에게는 너무나 감동적인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딸 아이 앞으로 선물이 하나 도착했다.
남편의 배다른 동생에게서 온 선물인데, 이제 5살이 되는 딸 아이에게 3살 이상이면 가지고 놀 수 있는 선물이 왔다. 딸이 태어날 때도 와 보지도 않았고 지금 5살이 되어가도록 한 번을 만날 노력을 않는 고모이니 놀랍지도 않지만 고작 3살도 가지고 놀아도 될 선물을 새로 유치원에 입학을 한 5살에게 했다는 것이 서운함을 넘어서서 굉장히 모욕적이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도 있고, 손 아랫 사람에게 받는 것이 늘 고마우면서도 미안함이 더 크기에 많이 바라는 것 없던 나였지만, 그 손바닥 만한 게임 나부랭이를 받아 놓고 상당한 내적 갈등이 일었다. 조용히 환불하면 그만이다. 내색하지 말자. 그런데 요새는 계좌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으니 우리가 아무 말 없이 환불해버리면 계좌 확인했을 때 황당하고 그 쪽도 불쾌할 것 같아서 우리가 환불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나중에 더 뒷탈이 없을 것 같아 나의 불쾌감과 모욕감을 억누르고 최대한 차분하게 문자를 보냈다. 사진과 함께... 혹시라도, 만의 하나라도, 인터넷 상으로 골를 때에는 굉장할 것같은 과대광고에 속아서 샀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나의 그 문자에 기분이 나빴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해 따져 물은 모양이댜. 본인은 친구랑 고심을 한 끝에 어렵게 골라서 보낸 거고, 또 뭐 좋아하냐고 미리 물었을 때 딱히 선물 고를 때 도움 될 만한 반응도 안 줘 놓고는 왜 그렇게 말하냐고. 평소에 따듯하게 오바해서 문자하는 나의 말투와 너무도 다른 말투를 접하니 놀래기도 한 모양이다.
한화 가격 2만원짜리 받아놓고 기분 나빠서 이러는 속물처럼 보일까 싶어 말을 꺼내지도 않을까 고민 했지만, 이 선물 만큼은 내 딸의 지능을 무시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얘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도 작정을 하고 보낸 거라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딸이 두살 어린 애들 용 장난감 갖고 못 놀 정도의 천재도 아니라 도치맘 처럼 보이기만 할 것 같아 더 구구절절한 말을 덧 붙이자니 또 난감했다.
나한테 보낸 선물이라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었을 것 같다. 내 생일 기억하고 보낸게 어디야..하면서. 그런데 자식 일이라 그런지 더 예민한 것도 같고, 또 본인도 얼마나 고심을 했었으면 억울한 마음에 내 그 말이 상처가 됐다고 오빠에게 따져 전화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 평소 차분한 성격으로 알았던 동생이 길이길이 뛰는 전화를 받으니 남편도 꽤나 놀란 눈치였지만, 성의 없는 선물 보낸 사람으로 치부된게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을까 또 한 번 생각을 해본다. 늘 그래 왔듯, 뻔히 보이는 얕은 마음이지만, 깊은 마음이었으려니, 하고 또 한번 속아줬으면 조용했을텐데...괜히 문자를 했나?
새벽에 스위스로 주재원을 나간 친한 동생이 "언니, 애 학자금 마련 통장 (NY 529) QR코드 좀 줘요! 지금은 조금이라도 나중에 우리 이쁜이 대학갈 때는 큰돈이 되길 바라며 생일 자금 조금 보내줄려니까!"하고 문자가 왔다. 생판 피도 하나 안 섞인 친한 동생도 내 딸 생일을 그 멀리 스위스에도 매해 챙겨주는데 참 씁쓸했다. 아,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리... 남편 얼굴에 침 뱉는 꼴 밖에 안되니, 늘 모든 게 이런 식이었을 것 같은 남편의 성장과정이 눈에 선해 너무 안쓰러웠다. 에휴...
그래서 새삼 우리 가족들에게 고맙다. 그 동안 많이 베풀으신 음덕으로 나도 주변 분들에게 너무나 많은 과한 사랑을 받았고, 또 그 넘처 흐르게 받은 사랑 덕분에 주는 기쁨을 조금은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된 것 같다.
선물에도 품격이 있는데 그것은 곧 마음의 품격같다.
선물의 가격이 품격을 결정하는게 아니다. 마음이다. 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는 삶이 가장 가난한 삶이 아닐까 싶다. 가난이 되물림 된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상황만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다. 마음 씀씀이가 큰 사람이 진정한 부자같다. 나를 보고 자라날 우리 딸은 (마음)재벌이 되도록 나부터 스스로 품격을 높이고 다 품어야지, 어쩌겠는가?
내가 베푼 오늘의 마음이 내일의 자식에게 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