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아빠가 식당에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다. 타고난 미식가에 각종 예민함을 두루 갖춘 우리 아빠는 웬만해선 식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조미료를 너무 많이 쓴다” 같은 맛 평가는 물론이고 “너무 시끄럽다,” “너무 비싸다,” 심지어는 “조명이 안 어울린다”까지 들어본 나로서는 아빠를 모시고 외식을 갈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주 가끔, 아빠의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는 식당이 등장했을 때 아빠는 말씀하신다. 엄마랑 다시 오자.
아빠는 3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시면 꼭 엄마와 함께 다시 가셨다고 한다. 아빠의 까다로운 기준을 모두 통과한 최고의 식당을 엄마도 경험하게 하고 싶어서. 요약하면 이거다. 맛있는 음식은 당신이랑 같이 먹고 싶어.
여기까지만 말하면 세상 로맨틱한 부부가 따로 없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엄마는 까다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엄마는 짜거나 싱겁거나 심지어는 조금 상했거나 음식에 상당히 관대한데다가, 시끄럽거나 비싸거나 조명이 안 어울리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빠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식당과 그렇지 못한 식당의 차이가 엄마에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빠는 30년째 공연한 수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닐까? 이렇게 비극적인 평행선을 달리는 것.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사자와 소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사자는 좋은 고기가 있으면 꼭 소를 위해 가져다 주고, 소는 부드러운 풀이 있으면 꼭 사자를 위해 가져다 주었다고. 그래서 둘 다 불행하게 살았다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사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도 그런 어리석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자도 그랬고 소도 그랬고 나도 그렇다면, 혹시 이 어리석음이 사랑의 불가피한 속성은 아닐까?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타인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 하나를 콕 집어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라고 우기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중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이것임에 틀림 없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상대와 나누려 하는 것. 우리 아빠의 경우는 엄마와 맛집을 나누려 했고, 사자는 소와 고기를 나누려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면서 상대가 기뻐하리라 믿는다. 엄마는 맛집에 관심이 없고, 소는 초식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추측해 본다. 그건 혹시 믿음보다는 소망에 가깝지 않을까? 너무 소망한 나머지 믿어버린 것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하면 좋겠다고. 상대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싶다고. 연인간의 사랑은 아니지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책 “작은 우주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한 노인이 친구에게 쓴 편지인데, 내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부분이라 인용해 본다.
어느 날 저녁 증기선으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나와 함께 모래언덕으로 가면 좋겠네. 자네가 나랑 모래언덕도 안 가보고 산마르코 솔숲도 안 가보고 어떻게 나를 좋아한다 하겠는가.
모래언덕과 산마르코 솔숲은 노인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나를 좋아한다 하겠는가”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친구는 아직 모래언덕도 산마르코 솔숲도 안 가봤지만, 노인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나를 좋아한다 하겠는가, 이 말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공간을 너도 함께 좋아해주어야 한다는 당위의 표현이다. 이미 좋아하고 있다거나 혹은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의 표현이 아니라. 노인이 친구에게 당위와 의무를 들이댄 것은 강한 바람의 서툰 표현이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주로 단어인데,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내가 감동받는 것에 함께 감동받아 눈물 흘려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일은 쉽지 않다. 우리 엄마가 30년째 맛집과 비-맛집을 구분하지 못하듯이. 그래서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한 사랑 고백을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소개하고, 설득해 보려고 한다. 여기 참 좋은 단어들이 있다고. 나와 함께 좋아해달라고. 누구에게? 내가 사랑하는, 나의 중학생 제자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 세상에게. 도대체가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해 줄 생각이 없는, 아니 그 전에 나를 사랑해 줄 생각도 없는.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외쳐보려고. 앞으로 소개할 단어들 또한 내가 마음 깊이 좋아하는 말들이다. 아름다운 말들, 힘을 잃어가지만 빛나는 단어들. 아이들과 세상이 나와 같은 단어를 좋아해주면 좋겠다. 단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세상을 위해서. 이것이 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