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윤리 선생님을 좋아했다. 첫인상은 ‘세상에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니!’였고 두 번째 인상은 ‘학생들에게 참 관심이 없네’였던 그 선생님을 쫓아다니게 된 동기는 똑똑함에 대한 동경이 절반, 관심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절반이었다. 30대 중반으로 비교적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으나 연애 감정으로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고,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홀렸던 듯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바보였다.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우리에게 철학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은 가르치는 과목이 윤리였기 때문이고, 그것이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철학적 소양이 깊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이 대부분 수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수학 수업 시간에는 수학 이야기를 하고 윤리 수업 시간에는 윤리 이야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만약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보다 철학적 소양이 뛰어나다 해도, 선생님의 전공을 생각하면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윤리교육과를 졸업한 사람은 윤리를 잘하고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사람은 수학을 잘하는 게 당연하니까. 말하자면, 윤리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은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훌륭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수학보다 윤리학에 더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보다 윤리학을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당장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이 그렇고, 대학원생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세상에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니!’라는 감상은 선생님의 지성이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열여덟 해라는 짧은 기간, 지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뉴스나 텔레비전보다는 교과서를 많이 봤던 내 성격이 허구의 우상을 만들어 낸 셈이다.
하지만 이건 서른이 된 지금에야 할 수 있는 말이고, 열여덟의 나는 선생님을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어느 정도였냐면 선생님이 하는 말을 농담부터 잡담까지 죄다 기억해 버리는 수준. 딱히 적어놓고 달달 외우는 게 아니었는데도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이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학교에서 보낼 때니, 선생님이 하는 말보다 더 재미있는 정보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윤리 수업이 내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다름없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주말에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면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녀 왔다고 하셨다. 열여덟의 나는 ‘보통은 그렇게 안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상상하니 아찔하다. 만약 내가 그렇게 입고 결혼식에 간다면? 수군거렸을 사람들, 쏟아졌을 눈초리. 그 모든 것을 선생님은 개의치 않으신 듯 보였다. 왜 결혼식에 꼭 정장을 입어야 하냐며, 그건 누가 정한 규범이냐고 우리에게 물으셨지만 사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가르침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규범을 당연시하지 말고 의문을 품으라는 가르침. 교실에 앉아있던 나에게 갑자기 선생님이 그보다 더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기억하고 있던 말과 방금 들은 말이 만나 퍼즐처럼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자유’라고.
내가 언어의 퍼즐을 맞추고 있을 때, 같은 교실에 앉아있던 친구가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 장례식에도 그렇게 입고 가요?” 의외로 선생님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장례식장에는 정장에 양말까지 갖춰 신고 가요. 어 그러게, 나 왜 그러지? 잡담은 거기서 끝나고 수업이 재개됐다. 나는 선생님이 앞으로도 결혼식장에는 청바지를, 장례식장에는 정장을 입고 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왜 그러지?”의 정답도.
답은 ‘자유’다.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에 속박된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 열여덟의 나는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자유라는 말에 집착해서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자유라는 관념에 얽매인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진짜 본인의 내면에서 나온 주체적인 결단이 아니라, ‘자유’의 사회적 의미가 규정해 놓은 바를 따른 것에 불과하다. “집착하지 않기”에 집착하는 사람들, “얽매이지 않기”에 얽매인 사람들은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아끼는 사람이다. 아무것에도 마음 주지 않고 되는대로 떠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것에 중심을 두고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다. 사회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선택’을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진정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생각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났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나는 ‘속박되지 않기’에 속박된 사람을 넘어서 ’속박되지 않기에 속박되지 않기‘에 속박된 사람. 그들보다 내가 더 큰 집착의 덩어리 아닐까 싶다. 다만 내가 본 진정 자유로운 사람을 소개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런 사람은 윤리 선생님이 유일하다. 결혼식장에서 사회 규범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해 비난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작은 균열과 타인의 상처 중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
아는 사람, 즉 ‘지인’이라 부를 수 없는, 일방적이고 간접적으로 나만 혼자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정혜윤 작가님과 그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 등장하는 어부 선생님이다. 이름도 모르지만 나보다 나이도 지혜도 깊은 그를 ‘어부’라고만 부를 수는 없어서 존칭을 찾다가 ‘선생님’을 붙여 본다. 내가 짧은 필력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책을 인용하는 것이 더 낫겠다.
“저, 선생님.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었어요?”
어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부의 등 뒤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년간 인간은 자기가 하기로 한 일-결코 버릴 수 없는 것-에 확실히 묶이고,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면서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해 왔다. 자유는 아무렇게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 낸 단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맨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따라 한 셈이다.
온갖 현실적, 물질적 제약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는 부자유가 주어졌다. 지옥이 있으므로 천국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슬픔이 있으므로 기쁨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삶이 짧으므로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자유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이 부자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든 우리 안에 파괴될 수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
2022년이 시작할 즈음 이 책을 처음 읽고 깜짝 놀랐다. 정혜윤 작가님이 쓴 일화가 2011년의 윤리 선생님과 너무 닮아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발견한 자유로운 사람이 세 명뿐이어서. 나는 이제 열여덟이 아니라 서른이고, 서울살이도 꽤 했으며, 많은 교수님과 대학원생을 만났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세상은 꽤 넓어진 셈이다. 그런데도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니!‘하고 놀랄 일이 세 번밖에 없었다는 것은 조금 씁쓸한 일이다. 내가 아는 네 번째 자유로운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혹은, 주제넘게 소원을 빌어보자면, 그게 나라면 참 멋진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