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도 없고 깊이도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스물여섯이 막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가진 것도 이뤄놓은 것도 없던 나는 내게 없는 것이 두 개나 더 있다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그렇게 무게도 없고 깊이도 없는지 물어보았다. 심지어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에게도 몇 년 만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물었다. 선배, 오랜만이에요. 근데 제가 무게도 없고 깊이도 없나요? 선배의 첫 마디는 “네가?”였고 그 얼떨떨함이 나를 며칠간 안심시켰다. 그리고 며칠 뒤엔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반복 반복 반복. 그런 나를 달래기 위해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도 바꿨다. 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 그 문구를 나는 아주 자의적으로 읽었다. 그래, 알아보는 일은 알아보는 사람의 일이지. 알아봄당하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건, 나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 그에게 나쁜 일이야. 그의 능력이 부족한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잘은 몰라도 이런 식으로 남을 폄하하라고 공자님이 이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저는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을 쫓아다니거나 사귀거나 그랬어요. 이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함을 못 느꼈다. 방금 내가 한 말에 대해서도, 내 삶에 대해서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똑똑해 보이는 사람?” 교수님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래서 질문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그 질문은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다. 푹 찔러서 아주 꿰뚫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열심히 말하는 사람을 좋아했던 거다. 수많은, 언어화되지 않은 자기 생각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알아채려는 노력이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알아보는 일은 알아보는 사람의 일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까? 그건 나에게 나쁜 일이었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 일이었다. 자기 상태메세지가 무슨 의미인지를, 그 상태메세지를 지우고도 4년이 지나서야 깨닫는 사람이 되었다.
내 롤모델인 타블로는 라디오에서 “말을 잘한다고 하지 말고 생각이 좋다고 해주세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타블로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진리라고 생각하던 어린 날이 있었고 이 말 또한 오랫동안 내 안에서 진리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을 잘하는 것과 생각이 좋은 것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뭐라도 되는 양 떠드는 사람 중에 속은 텅 빈 (나같은) 사람도 있고, 말은 유창하지 않지만 좋은 생각을 간직한 사람도 있다. 그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멋진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진 생각을 알아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용한 사람, 신중한 사람, 혹은 위축된 사람이 꽁꽁 숨겨놓은 멋진 생각들을 소중하게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남을 알아보는 일은 남이 나를 알아보게 만드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