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정말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노래패 ‘길’에서 작사 작곡하고 부른 ‘세상의 뻔한 소리들에게’라는 곡입니다.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는 창작곡이라, 무대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2JFAAldRyIk?si=FensfWl2Wkcr5PLK
영상을 보실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일부 가사를 옮겨봅니다.
그대 꿈을 가져라 희망을 품어라 한 때는 맘을 울리는 말
부당한 것들에게 분노해 싸워라 모두 아는 당연한 말
마음을 울렸던 감동적인 말은 이젠 공허한 소리가 된다
당연해도 좋았을 아름다운 말은 그저 순진한 소리가 된다
뻔뻔한 세상에 부딪혀 모두 뻔한 소리가 된다
이젠 아무도 듣지 않아 그저 한 때의 꿈이 된다
이 노래를 잃어버린 싸움에 우리가 떠난 꿈들에
2013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사가 시대를 정말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노래는 유효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때보다 더 적절해진 듯도 하고요. 노래 후반부에는 “뻔뻔한 세상에 부딪혀 모두 뻔하게 살아간다”라는 가사가 등장합니다. 과학기술은 발달하고 물질은 점점 더 풍족해지는데 왜 세상은 뻔뻔해지고, 사람들의 삶은 뻔해질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당연한 말을 뻔한 소리로 치부하고, 아름다운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삶으로 이어지니까요.
고리타분한 얘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고 사람을 옭아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노래 가사를 봐도, 감동적이라며 소개하는 말들은 다 명령문이지요. 꿈을 가져라, 희망을 품어라, 분노해 싸워라. 맞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쓰려는 글도 지켜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이 딱 듣기 싫어하는 얘기요.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의무를 지우는 사람이 결국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놀이기구와 자극적인 매체는 늘어만 갑니다. 침대에 누워서 쇼츠나 릴스를 계속 넘기기만 해도 도파민이 쉼 없이 분비되는데, 문득 정신이 들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죠. 도파민이 행복의 동의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에게 삶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공허하고, 외롭고 허망하고, 왠지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들을 저도 겪고 있으니까요.
무의미의 반대말은 유의미겠지요. 무엇이 의미 있을지 생각하다가, 가깝고 쉬운 곳에서 결론을 찾았습니다. 가치. 우리의 삶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증거를 지금부터 모아보려 합니다. 가치 있는 말을 찾고, 그 말이 살아있는지, 멸종되지 않았는지, 여전히 그 말을 믿고 살아내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단어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발자국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매번, 글의 말미에 직접 그린 그림 하나를 첨부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