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쁜 기억으로 얼룩이 묻어버린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다시!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서로 기분이 좋은 상태로 방문한 샹젤리제 거리는 사랑과 꿈이 넘치는 공간이었고, 맥도널드의 로고마저 샹젤리제라며 서로 깔깔거렸다.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거나 위험한 차도에 서서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5분 혀를 차고 55분 정도는 우리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머쓱)
그 광활한 공간감이 계획도시 파리의 시작점을 알리는 것 같이 보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겠으나, 아내를 차도에 밀어 넣으며 이곳에서 사진이 잘 나온다며 시민의식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던 내가 이제 와서야 조금 부끄러웠다.
아내와 개선문역에서 바로 지하철을 타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 좋은 날씨를 두고 더 걷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는 아내의 판단에 따라 콩코드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제 파리지앵이 되어버린 나는 지도상 거리를 보고 걷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지의 한국인이 되어버린 아내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콩코드까지 단 한 번의 힘든 기색 없이 걸어가던 중에 샹젤리제 공원에도 잠시 들러서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때 벤치에 앉았을 때 다시 한번 이곳 파리의 날씨의 쾌적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날씨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진짜 여행이 완성되어 버렸다는 것에 공감했다.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 핵 멋지게 차려입은 날씬한 할머니(?), 손주를 안고 한 손으로 담배 피우는 할머니들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어느새 도착해 버린 콩코드역이었다.
해는 10시에 지니까 저녁 8 시인 시점에도 날은 밝았지만,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고자 하는 우리는 서둘러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했다. 과거 경험으로는 8시~9시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았고, 심지어 술은 8시에는 더 이상 팔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지막날을 위한 장은 볼 수 있었고, 와인도 적당한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지 않았던 우리는 역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전날 맛봤던 비프 타르타르를 다시 시켜보았고, 연어 스테이크를 함께 시켰다. 차려진 메뉴들이 푸짐하고 너무 존맛이었던 것에 더해서 종업원이 너무 친절하고 그냥 그 종업원일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전날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왠 엉뚱한 인도색귀한테 당한 것과 비교돼서 그런지 서비스도 확실히 좋았던 것 같다.
퐁피두센터에서 시킨 비프 타르타르의 경우에는 더 부드러운 부분들로 매우 적은 양을 제공받았지만, 여기는 동네 맛집이라서 그랬는지 양도 많고 식감도 약간은 더 거칠어서 식감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비프 타르타르를 먹어볼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 이 메뉴는 꽤나 가성비가 좋은 메뉴가 아니었나 싶었다. 연어 스테이크도 너무 헤비 하지 않은 맛으로,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에서 먹어서 맛도 가격도 훌륭했다 ㅠ
숙소에 돌아와 파리에서의 마지막날을 기념하기로 한 우리는, 최애인 납작 복숭아를 시작으로 꽁떼치즈, 하몽, 사과타르트, 요플레 등을 늘어놓고 와인과 함께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게 우리를 강제한 데에는, 숙소 바로 앞의 카페에서 새벽 2~3시까지는 시끄럽게 떠드는 손님들 덕분이었다.
어차피 침대에 누워도 시끄러블것 같아서, 우리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맞는 파리의 자정, 그리고 만찬
마지막 와인, 마지막 납작 복숭아, 마지막 밤, 마지막....
이라는 주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였던 부분은, 길게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선호도와 취향을 드러냈던 여행, 힘듦과 즐거움이 함께 있어서 각자의 성격을 알게 됐던 여행, 서로가 더 원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게 된 여행이라는 점이었다.
다름을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매우 뜻깊은 여행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내는 언젠가 파리를 또다시 방문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치며, 나에게 공감을 요청했다.
나는 공감 대신 앵무새와 같은 톤으로 '또. 오. 자"를 연속해서 발음했고, 서로 웃었다. 서로가 표현할 만큼 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만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Next episode : 나 파리에서 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