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마지막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끝에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곳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주변사람들에게 줄 기념품을 조금은 사보자고 결정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튈르리 공원이었다. 2일 차에 스냅사진을 찍으면서 더욱 마음에 쏙 들었던 공간이고, 오며 가며 한두 번 더 지나갔던 공간이고, 제일 좋은 기억으로 파리를 마무리하는 데에는 이곳만 한 곳이 없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짐 싸기를 마무리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처럼 우리가 지냈던 에어비앤비 숙소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 이 공간이 얼마나 프랑스를 그대로 느끼게 만들었는지 서로 이야기했다.
일찌감치 정리를 다 하고 나서 마치 처음 숙소에 들어온 사람처럼 이때의 이 공간을 추억하고자 의자에도 앉아있고, 사진도 찍으며 나왔다. 다행인 건 에어비앤비임에도 불구하고 짐을 오후 5시까지만 맡아달라는 요청에 호스트가 흔쾌히 응했다는 사실이다. 피렌체에서와 달리 마음을 졸이며 짐보관소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더욱 좋았다.
베테랑 여행객답게 물통을 손에 쥐고 길을 나섰다. 여행 11일 차는 월요일이었는데, 확실히 관광객들은 많이 사라지고 출근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조금은 절어있는 모습으로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이런 파리의 속사정까지 보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웃었다.
튈르리에 도착하기에 앞서, 그래도 루브르 박물관 외관정도는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잠시 루브르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정말 쨍! 했고 관광객들은 이른 시간부터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우리도 관광객인데 '관광객들은 힘들겠다 ㅋㅋ'하면서 외관을 사진에 가볍게 남기기로 했다.
어느 포인트가 포토존인지 알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의 피라미드모양을 잡는 포즈를 취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꽤나 괜찮은 지점을 선점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봤는데, 둘 다 루브르에 대한 미련이 없었는지 꽤나 심드렁한 느낌으로 사진을 찍고 나왔다.
어차피 들어가지도 않을 건데 이 따사로운 햇빛을 이겨낼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게 컸을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마지막날이라서 그런지 나는 아내에게 과감한 제안을 했다. 우리가 파리지앵의 흡연행태에 대해 손가락질을 했지만, soft-흡연자로서 나도 이 분위기를 한 번은 느껴보고 싶다고 말이다. 전날 아내는 굉장히 화를 내었지만, 내가 헤비-스모커도 아닌데... 한 번도 본인 앞에서 피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데 이렇게 요청한다면... 이라며 허가했다.
굉장한 심장의 떨림을 안고 아내와 함께 tabac에 들러 말보로 골드를 샀는데 금액이 12유로였던 점에서 1차적으로 크게 실망했다. 해봐야 2~3개비 필지도 안 필지도 모르는데 한 갑에 거의 이만 원을 내고 산다는 게 정신 나간 행동 같았다. 제안은 내가 먼저 했지만, 내가 혼자 조르여서는 담배를 점점 안 피고 싶어졌다.
튈르리 공원의 대관람차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우선 아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몰래 하나를 시작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담배의 불을 붙이는 것을 까먹었던 것 같다. 몇 번의 불붙임을 실패하고 나서야 겨우 불이 붙었는데, 한 모금을 마시기도 전에 주변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연기가 뒤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광역도발처럼 퍼지는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도 극혐 하던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분명 파리지앵들은 연기가 나는 둥-마는 둥 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나는 불난 집처럼 연기가 활활 타올랐던 걸까. 아내가 화장실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불을 꺼버렸다.
아내가 돌아오고 나서 그렇게 원하던 것이니 해보라고 권유했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이 행동에 대해 크게 후회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곳의 여유를 담배와 함께 조금 느껴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지, 이렇게 '나는 핀다- 너는 맡아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얻어낸 기회인가? 아내는 그럼 튈르리 공원에 가서 사람들이 좀 덜 밀집한 곳에서 해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들어간 튈르리 공원에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도 크게 많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내뿜는 연기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고, 여유를 즐기기는커녕 아내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 이게 여유를 즐기는 건지 유독가스만 내뿜는 건지 헷갈렸다.
인천발 파리행 비행기에서 본 매트릭스 레저렉션의 대사가 떠올랐다.
네오의 직장상사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네오는 '담배 끊지 않았나요?'라고 했지만, 그가 답했다 이건 길티 플레져라고. 이후 주절주절 대사가 많았지만, 그 사람은 길티보다 플레져를 위해 행동을 한다고 했는데, 나는 왜 여기서 플레져는 갖다 버리고 길티만 죽어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뭐 해보지 않았으면 귀국하고 나서 내내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을 텐데, 내 욕망은 결국 길티로 정착해 버렸다는 걸 알았으니 당일 구매한 담배의 역할은 다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총 3개비를 피고 바로 버렸다.
다시 여행일정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나는 튈르리공원의 대관람차가 잘 보이는 햇빛이 적당히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정말 너무 좋은 날씨에 감탄하며 여행의 마지막날다운 마무리라고 서로 자평했다.
좋은 배경을 두고 아내를 사진 찍으니 내가 다 뿌듯했다. 하지만 11일에 걸쳐 햇빛을 정통으로 맞아버린 나는 어느새 새카맣게 얼굴이 타버렸는데 아내와의 색 차이가 심각했다.
같이 사진을 찍을 때, 내 얼굴에 포커싱을 하면 아내의 얼굴이 아예 화이트아웃이 돼버리고, 아내의 얼굴이 포커싱을 하면 밝기가 너무 꺼멓게 내려가서 내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한국의 빌딩숲에서 사무실에 기거하며 어떻게 만든 밝은 피부색인데 이렇게 볼음도 안돼서 사라져 버렸는지 허망하기만 했다.
좋은 기억으로 갈무리하기 위해 들어간 튈르리 공원은 햇빛은 뜨거웠지만 공기는 시원해서 너무 좋았다. 2일 차에 우리가 앉았던 자리와 그 후에도 지나갔던 거리들을 다시 한번 지나며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이때 나는 바게트빵을 하나 들고 다니면서 먹고 있었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까마귀들이 내 주변에 가득 모이면서 결국 바게트 빵을 빼앗겼다(?).
강탈당했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까마귀 5마리가 정확히 바게트빵이 포장된 물체를 들고 바닥으로 내팽겨 쳤고, 여러 마리가 그 포장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눈뜨고 코베인 상태인 나는 신기한 광경이라며 쳐다보면서도 더 가까이 오려는 까마귀들을 발로 훠이훠이 내쫓았다. 결국 까마귀 약 10마리가 그 바게트빵을 잘 쪼개서는 가져가버렸고, 나는 배고픈 사람이 되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라며 서로 웃는 중에 이상하게도 까마귀 한 마리가 내 머리 위의 나무에 어슬렁 거리는 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서 왜 이리 내 바로 위에 있는 거지- 싶었던 찰나에 똥이 내려왔다.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조금 피했지, 아니었으면 정수리에 똥 직격으로 맞을뻔했다. 허벅지에 똥이 떨어졌는데, 34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새똥을 맞은 경험이었다.
까마귀가 지능이 높다더니 내가 발로 쫓아냈다고 복수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냐며 웃고 넘겼는데, 그 이후로 2~3마리가 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내 정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의자를 꽤나 뒤로 이동했음에도, 까마귀들이 슬금슬금 내 머리 위로 자리를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여기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새똥 5 연발은 거뜬하겠다 싶어 바로 자리를 떴다.
습도가 낮은 날씨였던지라 그늘에 있으면 아내가 추워했고, 햇빛에서는 내가 더워했다. 베테랑 부부답게 아내는 햇빛을 쬐러 이동하고, 나는 그런 아내가 보이는 그늘에 앉아있었다. 내가 담배를 통해 이곳의 여유를 느끼고자 했던 것처럼, 아내는 이곳의 햇빛을 통해 여유를 느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제대로 된 만찬을 먹으러 떠났다. 우리는 애초에 세워놓은 계획은 없었기에, 기념품을 살 예정인 '르봉 마르세' 백화점에 가는 길에 좋아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파리 길거리의 분위기는 한없이 좋았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마침 구글맵에서 평점이 꽤 높은 곳이 있어 무작정 들어갔다. 나에게는 불어 마스터 아내가 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은 정말 뷰가 좋았다.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을 정원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양쪽 건물이 높아 정말 프라이빗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좋은 곳이니 예약이 되지 않은 공간은 딱 한자리라고 안내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늘 그랬듯이 돈도 없는데 쓸데없는 상상에 시간을 많이도 빼앗겼는데, 한남동에 이렇게 건물들 사이에 정원식으로 가게를 하면 잘 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여름날에 소나기도 많이 내리는데 이런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겠나- 등등의 괜한 상상을 하며 이 공간을 즐겼다.(내 기준으로는)
(후술 하자면, 다녀온 지 1년 반이 지나는 오늘날까지 총 5명의 지인에게 추천했고, 모두 방문 후 대만족 했다고 답변받았다.)
우리는 오후 2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니 식사 메뉴를 시켰는데, 주변의 약간 중년의 프랑스 사람들은 커피만 마시거나 디저트만 먹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와서 와인을 시켜놓고 연습장 같은데 열심히 뭔가를 쓰는 사람도 있었고, 소소한 모임처럼 보이는 4~5명이서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스테이크와 연어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지 음식도 너무 맛있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식전주도 한잔 시켰는데, 우리 둘 다 식전주 타입은 아니었는지 너무 독한 술이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토마토수프도 존맛탱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고급진 플레이팅을 했을까-하며 서로 감탄했다. 마지막으로는 아내는 알고, 나는 처음 보는 디저트를 먹었는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먹었다. 단걸 싫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런 식의 단맛이면 너무 맛있게 먹겠다고 말하며 정말 대부분 내가 다 먹었다.
파리에는 어떤 일로 왔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아내는 우리 허니문으로 왔다고 말하며 파리는 잘 즐겼는지 어땠는지 등등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즈음 되니 눈치로 불어 통번역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랑 단어 몇 개들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는 종업원의 정장에 보풀이 가득한걸 보니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대로였다. 그래도 이 공간에 나와 아내가 같이 있다는 걸 남기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든든한 한 끼를 하고 나서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 르봉 마르쉐로 걸어갔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별다른 쇼핑도 하지 않았는데 기념품은 당연히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래도 양가 어른들에게는 뭔가 사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아내의 조언을 받아 들어 식료품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는 생각보다 주방일에 진심인 사람인데, 정말 수많은 제품들이 펼쳐진 백화점에서 제일 신이 나 보였다. 물론 나도 차부터 시작해서 치즈, 와인, 향신료, 소스, 파스타면 등등 전 세계 식료품이 다모인 것 같은 이곳에서 눈이 즐거웠다. 눈은 즐거웠으나 파리에 익숙해진 우리라서 그런지 지금 보니 여기서 사진 한 장도 찍지 않고 온전히 그 공간을 느끼기만 했던 것 같다.
아내는 종류별로 있는 과자 코너에서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했고, 여러 가지 종류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트러플 소금/오일을 몇 개 샀는데, 한국에 와서 여러 요리에 넣어서 먹어보니 정말 좋은 건 좋은 거구나 싶은 대존맛이었다. 양가 부모님께도 드릴 것을 똑같이 샀지만, 우리만큼 잘 활용해서 드실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을 볼만큼 보고 캐리어를 찾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파리에서 버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고, 마침 숙소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이 있어 버스를 탔다. 관광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서 그런지 정말 일상을 살고 있는 현지인들밖에 없었고, 조금이라도 관광의 열기로 상기된 사람은 그 버스에서 나와 아내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호스트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캐리어를 받아왔다.
호스트는 에어비앤비 프로필상 사진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고, 프랑스의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약간 키가 크고 말랐는데 블론드헤어에 조금은 익은 얼굴. 아내의 불어를 앞세워 스몰토킹을 해보려 했으나, 너무 적극적인 호스트의 불어공격에 아내가 한발 뒤로 빠져서 난 더 이상의 아빠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아내가 불어하고 있으면 옆에서 기특하다듯이 웃고 있던 나)
아내와 숙소 앞 카페에 앉아서 택시를 불렀고, 택시에 앉아 쨍한 하늘을 바라보며 둘 다 졸아버렸다. 조금 자고 나니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 있었고, 이제는 정말 여행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아내와 나는 출발 3시간 전에 넉넉히 도착해서 비행기 전용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수화물 체크인을 하고 탑승을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건 무슨 일?. 출발시간 2시간 반 전에 출국수속을 밟으러 가는 거였는데, 여권검사하는 줄만 해도 엄-청나게 긴 것이었다.
이건 조금 잘못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줄이 길었고, 공항 직원들은 어쩐지 일을 대충 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결국 거기서만 1시간 반을 보냈고 이건 조금 잘못된 것 같아 터미널로 가는 열차에 뛰어서 탑승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가 더 가관이었다.
수화물과 소지품 x-ray 검사를 위한 줄이 정말 눈대중으로만 봐도 1시간 반 이상 더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이색기들이 이렇게 일처리 해놓고 우리 놓고 비행기 출발하진 않겠지- 싶기도 했지만 아직 1시간 정도 시간은 있으니 결국 딱 맞게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러다가 우리 비행기 놓치는 거 아니냐며 혼란스러워했고, 우리 앞에 있는 에티오피아행 승객도 비행기 출발 1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놓치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주변사람 모두가 불안해하며 공항 직원들에게 앞으로 가게 해달라고 외쳤지만, 공항직원들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그곳은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러키가이니깐-'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우리 뒤에도 꽤 많은 한국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서있었다. 체크인을 할 때 봤던 사람들인걸 인지하 고나니, 우리 정도면 꽤 앞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마음이 놓였다(물론 나만).
상황을 대충 보아하니 짐검사를 하는 라인이 12개였는데, 9시가 다돼서 그런지 대부분 퇴근하고 3개의 라인에서만 짐검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holy mama.. 원래는 라운지에 앉아 와인이나 술을 좀 면세로 사볼까도 했었는데, 그런 건 다 차치하더라도 비행기를 탈 수는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짐검사를 끝내고 아내와 나는 지각한 사람처럼 게이트를 향해 뛰었고 예상출발시간 3분 전이었다. 실내 방송으로 계속 xxx행 비행기 탑승하세요-라고 안내방송 중이었고, 몇몇 항공사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인천행 비행기세요? 뛰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출발 3시간 전에 왔는데 이렇게 지각생 취급이라니 너무 황당할 따름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제일 늦은 사람들은 아닐 거야-라며 아내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나도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탑승한 인천행 비행기에는 이미 90%의 사람들은 탑승해 있었고, 우리는 지각생이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몇 시간 전부터 탑승수속을 밟은 거지..?
대한항공에 결과적으로 잘 탑승한 아내와 나는 한숨을 돌리며, 이제 파리를 진짜로 떠나는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은 기억이 95% 이상으로 도배된 여행이라니, 이보다 성공적인 여행이 있었을까 싶었다. 아내는 다시 한번 오기를 재차 요청했지만, 난 어제와 동일한 톤으로 '또. 오. 자.'를 반복했다. 우리가 다음번에 다시 오게 될 때에도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때도 휴가를 왔는데 그곳이 파리였다-의 콘셉트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하니 고온다습한 날씨였고, 우리는 파리지앵 호소인이 된 채로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