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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만 찾아가는 자유여행인

by 비읍비읍


오늘은 아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퐁피두센터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꽤나 일찍부터 준비를 해서 나갔는데 최근 며칠간 내 속이 굉장히 더부룩한 상태였다.


그 더부룩은 추측컨대 쌀밥을 먹지 않고 잘 먹지 않던 빵을 주식으로 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철저한 배꼽시계에 지배당하던 내가 11시에 점심 / 7시에 저녁을 먹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의 식사시간 때문이었을 수 있다. 아내는 원체 적게 먹는 타입이고 배고픈 시간에 밥을 먹는 유형이었기에 꽤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몸상태가 꾸릿꾸릿한 상태가 되자 내 머릿속은 하루동안 돌아다니는 동선에서 식사를 하는 시간대를 적당할 때 끼워 넣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고, 그렇게 동선을 짜기에는 나와 아내가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고 프랑스에 오지 않았다.


일단은 아침의 배고픔을 해결할 겸,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카페의 테라스를 한 번은 이용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으로 크로와상과 커피를 한잔 했다.


여기서 먹은 크로와상은 내가 생각했을 때 한국과 달리 겉면이 바삭하지 않고 뽀송뽀송했다. 맛보기 전에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냉동 크로와상 같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반신반의하며 맛을 보았는데,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버터향이 정말 강하게 나면서 외관이 아니라 내면에 충실한 빵을 만난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에 '난 더 이상 빵 먹고 싶진 않아'라고 투정 부렸는데, 아내가 먹겠다고 시킨 크로와상은 내가 거의 다 먹었다.(머쓱)


날씨는 신기하게도 선선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기까지 3일의 시간 동안 최고기온 26도로 초가을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나와, 가벼운 코트를 걸친 아내가 둘 다 만족하는 최적의 날씨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익숙해진 지하철을 타고 호텔드빌에 내렸다. 이번 여행에서만 두 번째로 들리는 곳인지라 눈으로 쓱 훑으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냥 길이 너무 예뻤다.


어쩌면 시원해진 날씨에 모두가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퐁피두센터의 전경을 눈으로 담으며 오늘 하루 예술의 바다에 폭 빠질 생각으로 입장했다. 많은 블로그 후기들에서는 사전예약을 했더라도 사람이 많으면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른 시간이었어서 그런지 손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이 센터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외벽에 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의 상설전시장에 들어갔는데, 전날 오르세미술관에서 느꼈던 약간의 식상함은 전혀 없고 내 우뇌를 타격하는 신선한 예술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왼쪽에는 파리 시내가 훤히 보이는 스카이뷰 / 오른쪽에는 상설 전시작품들이 가득했는데, 날씨도 미쳐버리게 좋아서 왼쪽 오른쪽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멋있었다.


천천히 작품들을 구경하는데 나와 아내가 관람하는 속도가 다르고, 관심 있어하는 작품들에 할애하는 시간도 달랐다. 각자가 한참 동안 관람에 푹 빠져있다가 다시 어느 특정지점에서 만나고, 다시 관람하느라 떨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었는데 이런 것 마저 너무 좋았다. 따로 또 같이 같은 방식으로 일정을 보내니 베테랑 부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하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눈으로 봐야지 저걸 왜찍농' 라며 속으로 뒷말을 해오던 나였는데 여기서는 나도 모르게 작품들을 사진에 담고 싶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는 것이 낯설었던 나는 다른 관광객들 사이에서 쭈뼛거리며 피사체가 돼보고 했는데, 이때서야 내가 크림색 바지에 크림색 반팔티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여행에 왔는데 옷차림이 뭐가 중요한가 싶긴 한데, 내가 상상하는 내 모습이 오일머니로 부를 축적하신 아랍형님들의 옷차림 같이 보여서 되게 낯설었다(물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는 아내의 전언).






아침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래서, 밥은 언제 먹는다고?'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2시간을 가까이 봤지만 상설전시의 절반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배는 너무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했다. 그렇다고 밥을 먹으러 지금 나간다는 것은, 얼마 보지도 않고 전시장을 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지금 하고 있는 무계획적인 일정에 극도로 예민해져 버렸다.


아내는 퐁피두센터 6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간단 쇼로 요기를 하자고 했지만, 내 몸이 원하고 있는 것은 간단 쇼 요기가 아니었다. 한우대창 곱도리탕 사이즈 중에 공깃밥 2개를 흡입하고 싶은 정도의 배고픔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중재안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그땐 부글부글.. 지금은 머쓱타드)



하지만 과거에 내가 여행을 했을 때와 달리 나에게는 돈이 있었다.

학생 때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가진 내가 퐁피두센터의 레스토랑이 아무리 비싸 보인다고 해도 못 먹을 건 아니지! /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들어갔다. 결과는 정말 어메이징을 넘은 너무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심지어 허기도 싹 날아가버리는 걸 보니, 이래서 과거 선현들이 아내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나 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잘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우리를 응대했고, 앉게 된 자리는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너무 멋진 뷰였다.


주문한 메뉴는 비프 타르타르와 시금치-트러플-꽁테치즈 샐러드, 그리고 감자튀김이었다. 꽤 고민하고 고른 메뉴이긴 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간이 꽤나 지난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이 맛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정말 맛있었던 맛이라고 생각이 든다.



일단 비프 타르타르는, 너무 정갈하고 고기를 먹고 싶다는 나의 니즈까지 충족시켜 주는 음식이었다. 잘게 썰은 육회 같은 것이었는데 맛도 정갈하고 식감도 질긴 부분이 하나 없는 매우 맛맛탱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감탄을 금치 못했던 샐러드는 트러플 향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작아 보이는 접시에 트러플오일로 절여진 것 같은 시금치가 빽빽하게 들어가 있었는데, 한국이었으면 약간 얼기설기 담아서 줘서 양이 매우 적지 않았을까- 하는 사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감자튀김마저 두툼하게 방금 썰어서 튀겨낸 맛으로, 대학교 3학년 때 봉구비어가 득세를 하는 초창기에 보여줬던 높은 퀄리티의 감자튀김을 맛보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아내의 뒤에 숨어, 검표원에게 우리 잠깐 위에서 식사하고 왔는데 다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라고 종용했다.


내가 당당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티켓에는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옴' 같은 내용의 문구가 있었기 때문인데, 아내가 검표원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이게 뭐지 ㅎㅎㅎ... 역시 그 나라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2차로 상설전시장을 관람하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관광을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퐁피두센터를 즐기는 마지막 포인트로, 테라스에서 파리 전경을 바라보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전경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진을 찍었고, 거의 처음으로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경까지 보니 퐁피두센터가 너무 알찬 일정이고 최고의 가성비(?)라고 생각이 들었다.



퐁피두 센터를 나와 마레지구에 있는 편집샵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내가 미리 알아온 편집샵들은 꽤 근처에 있었고 날씨도 선선하고 좋아서 산책하듯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여행코스였다. 걸어가는 중에 우연히 마주친 왠지 존맛일 거 같은 빵집을 보고 아내는 홀리듯이 가게에 들어갔다. 파리까지 왔는데 어떻게 밥만 먹냐며, 디저트를 너무 안 먹은 것 같다고 하는 아내였지만 사실 나는 원래 디저트를 안 먹는 사람이라 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파리에서 아내가 홀리듯이 들어가는 빵집마다 아내는 에클레르를 집어왔었는데, 취향이 매우 소나무처럼 단호하다는 생각을 했다.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있기도 했고, 원체 단것을 입에 대지 않는 나였기에 아내와 함께 디저트를 먹지는 않았는데, 초코가 올라가 있는 에클레르를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 맛보듯 먹어보니 맛있기는 정말 맛있었다.. 흠흠.



한 번도 안 먹어본 내가 추측한 외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맛이었는데 빵 안쪽이 크림이 들었는지 굉장히 폭신하면서 부드러웠고 그 위에 발려있는 소스가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가게의 외관과 들어오는 손님들로 미루어보건대,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사 먹는 곳이 아니라 이쪽 사는 사람들이 동네 빵집 들리듯이 오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우리는 지난번에 갔던 생마르탱 운하에 다시 들리기도 하고,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개선문도 보았지만 지쳤는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오늘 하루는 일찍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하루종일 배고픔을 호소하던 나는,

파리까지 왔는데 샹젤리제랑 개선문을 본격! 관광명소!로 가보고는 싶었어서, 하루종일 배고픔을 호소했던 나는 샹젤리제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스테이크 집에 가보기로 했다.


그냥 숙소에 일찍 돌아가서 쉬려는 동선에서 잠깐 들른 거라 가볍게 먹고 기분 좋게 들어가려 했는데 결과는 개똥망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실망한 가게이고,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아주 븅딱 같은 가게였다.


L'Entrecôte de Paris

29 Rue de Marignan, 75008 Paris, 프랑스

가게의 이름은 앙뜨레코트 드 파리.


관광객이 정말 많은 가게였고 우리가 들어가기 앞뒤로도 줄이 꽤나 길었다. 조금의 대기를 하고 들어간 가게에서 웬 인도 놈이 주문을 받는데, 메뉴판을 받는 속도나 주문을 받으러오는 것들이 너무 느렸다. 파리가 원래 다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간 느껴온 다른 식당들에서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기에 조금 황당했다.



사람이 많아서 그렀겠거니- 싶었을 수 있는데, 느낌이 싸한 게 이색기들이 지금 우리를 배제하고 있다는 감이 왔다. 아내는 늘 그랬듯이 불어로 주문을 슥삭 했고, 생수를 먼저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보다 늦게 온 테이블에서도 물은 당연히 먼저 나왔고 음식까지도 나왔는데, 우리만 덩그러니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것도 10~20분이지, 이게 무슨 응대인지 싶었다.



븅딱 같은 행동들이 진짜 많았는데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지 머릿속에서 진짜로 삭제된 것 같이 기억이 뚝 끊긴 것 같다.(지나고 보니 개꿀?)



기억나는 건 그 인도인 같은 종업원 색기였다. 내가 계산하려고 손을 들었더니, 씩씩거리면서 와서는 '왜 불렀는데?' '뭐 말하려고 부른 건데?' 이 x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가 라데씨옹 실뿌플레를 말하며 그거 말고는 따로 요청할 게 없다고 말하니 쿵쿵대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계산 금액을 확인한 나는 카드를 내밀었더니, 내역서에 얼마 쓰여있냐면서 '하우머치'를 외치며 나보고 그 영수증의 가격을 말해보라는 식으로 쌉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 둘 다 기분이 너무 언짢고 이색기가 무슨 지랄을 하는 것인지 한참을 황당해했는데, 금마는 뭐가 핀트가 나갔는지 혼자 씩씩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더 화나는 건 우리 테이블을 지나서는 다른 테이블에서는 알랑방구를 뀌며 우리에게 확연한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는 걸 티 내는 모습들이었다. 기분 나쁨으로 얼룩져버린 샹젤리제를 어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Next episode : 하나에 3유로씩이니까 두 개면 5유로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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