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다 읽고 후기를 쓰기에는 아쉬울 것 같아서 후기를 상/하 둘로 나누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는 책의 리뷰를 상/하로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이를 차용했다. '상'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들어볼 수 있는 내용으로서 책을 읽고 싶어지게 하는 방향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는 책 스포(?)를 담고 있어서 읽은 사람들 전용이라고 명찰을 붙이곤 한다.
『청춘의 독서』는 2009년 처음 나왔다. 하지만 내가 읽은 것은 특별증보판으로 2024년 12월 3일의 사건까지 반영된 버전인걸 보니 아주 최근의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꽤 오래된 책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지금의 책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책을 알게 된 것은 이동진 씨의 추천은 아니었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정치 관련 유튜브가 내 알고리즘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본 유튜브 쇼츠를 보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를 패널로 모시고 이야기를 하는데(아마도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의 대화였겠으나) 어느 한 여자 출연진분이 이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뜨문뜨문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진정한 뇌섹남이다. 여기 담겨있는 책을 직접 읽지는 않을 거 같지만 뇌섹남이나 지성인인은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책 광고가 아니라 사람을 설명하는데 그가 쓴 글을 가지고 설명했던 것이다. 하긴 한 인간의 발자취, 그것도 생각을 쏟아낸 글만큼이나 사람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취업을 위한 이력서에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구구절절 쓰지 않던가? 물론 화려한 수상경력이라던지 과도하게 많은 '자격증'으로 도배되는 것으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날의 나는 기차를 타고 지방에 가는 길이었는데 당장 책을 직접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 하나가 내 마음에 꽂힌 순간이었다. 대체 어떤 글을 썼기에 지성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나를 바이럴 마케팅의 정 가운데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소설책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책이 아니라면 나는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문을 읽고 목차를 보면서 내가 가장 흥미 있을만한 주제를 먼저 읽어본다. 물론 책을 쓴 작가는 목차의 구성과 글의 순서까지 논리적 흐름으로 고심했을 테지만, 내게는 흥미가 먼저 / 정주행은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청춘의 독서'는 서문을 읽을 때부터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청춘의 독서』는 ‘살짝’ 예외다. 널리 알려진 고전을 다루었지만 책 정보를 전달하려고 쓰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얻은, 삶과 인간과 세상과 역사에 대한,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려고 썼다.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목적보다는 ‘나를 표현하려는’ 욕망에 끌려 썼다. 어디 나만 그렇겠는가. 누구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글에 애착을 느낄 것이다.
이 문장은 앞으로 나도 이런 글을 써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최근 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에 '후기와 비문학'이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38c598ff8491464/44
하지만 이 책은 내게 '후기'도 좋다는 것을 믿게 만들어주었다. 앞선 글에서도 고민한 바와 같이 현재 내게 더 끌리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능력적)은 차이가 있었다. 끌리는 것은 비문학을 쏟아내는 것이요, 할 수 있는 것은 콘텐츠들을 접한 뒤 나만의 감상과 영향력에 대해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루왁커피를 위한 사향고향이 role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이 책은 나에게 인생의 선배가 먼저 내디딘 발걸음처럼 느껴졌다. 무엇인가를 리뷰하는 것, 그 콘텐츠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깊은 통찰력으로 우려내서 글로 쏟아낸다면 충분히 엄청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내용을 요약하거나 감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 어떤 자리에서 그 책을 마주했는지, 그 자리에서 나의 무엇이 변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전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흥미를 갖고 돌발적으로 읽기로 선택한 목차는 다음과 같다.
표토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다른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38c598ff8491464/23) 를 통해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나에게 지적허영심이 가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러시아 문학의 제목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문학소년’이라 불리던 중학교 시절, 친구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따라가지 못하겠다며 포기한 『죄와 벌』을, 나는 ‘그래서 봐야 하는 책’으로 정해버렸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아무도 추천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내 필독서 리스트에 줄줄이 올라 있던 책들이다. 그렇게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오래 묻혀 있던 책들이, 유시민의 글을 통해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을 통해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어찌 읽는 것만으로도 빨갱이 취급을 당하며 배척당해야 했던 것인가. 절대불변이라고 생각했던 이론과 생각들이 완전히 깨어있는 개인에게 깨부수어지는 것들이 참 흥미롭다. 승자들만이 남길 수 있었던 기록들과 기록하는 자가 해석한 역사,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누가 결정한 '있는 그대로'인가-
이렇게 유시민 작가는 청춘이던 그 시절에 이 책들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내가 느낀 생각의 변화와 유시민 작가의 통찰력의 깊이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