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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내 사춘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

홀로, 또 함께 서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

by 브라카 Braka

또 울었다. 울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눈물은 눈치도 없이 매번 흘러내린다.

그 상황에서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한 지,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또 우는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이불을 걷어찬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 앞에서는 21살의 내가 아닌, 엄마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의 나로 항상 되돌아간다.




나에게 부모님이란 높다란 성벽과 같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을 되짚어보았을 때에도 부모님은 항상 내 옆에 계셨다. 어린 시절에는 무서운 것을 피해 평안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든든했고, 항상 따뜻한 말과 품으로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에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으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휴식처였다. 내가 글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부모님은 나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셨고, 나도 그런 부모님을 지금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사이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집 막내딸로서 딸이 부모에게 까칠하게 굴 수 있는 최대치를 매번 갱신하고 있다. 부모님도 그런 나를 보고 딸은 아들과 다르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하셨다.


중학교 3학년에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가겠다는 내 뜻대로 대안학교 고등과정에 편입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중등과정부터, 또 몇몇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함께 자라온 아이들 사이에서 그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누구의 선택도 아닌 오로지 내 선택으로 간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마다 기숙사 전화로 집에 가고 싶다며 울었다. 그런 나를 주말마다 데리러 와 주시고 학교로 돌아갈 때마다 함께 눈물을 흘리셨던 분이 우리 부모님이었다.


나에겐 광야와도 같았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학교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내 정체성을 찾아가던 그 시간 속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때 어김없이 부모님께 전화해 고민과 걱정들을 공유했다. 내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지만, 어찌 보면 참 부모에게 의존적인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움을 부모님과 함께 나눴을 때 얻었던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그 시간들을 후회한 적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오직 전화 선으로만 부모님과 연결되어 살았다. 대학생이 되어 가려고 했던 유학이 온라인 과정으로 바뀌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게 되었다. 이주에 한 번씩이 아니라 매일, 방학 동안이 아닌 일 년을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항상 그저 그립고 애틋하던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의 3년 동안 '내 공간'이 확보된 생활을 나였기에, 가끔은 필터링 없이 모든 것이 공개되는 생활이 오히려 힘들게 느껴졌다.

독립적인 ‘나’의 부분이 부모님의 딸로서의 '나'로 잊히는 기분이 들 때에는 나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두가지 면 모두 좋고, 둘 다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위해 조율해가는 과정에 있다.


부모님과 육체적으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이 시간이 부모님과 가장 먼 거리를 떨어지기 전 혼자 서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인 것 같다.


내 사춘기가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해 준 것처럼, 지금 이 시간도 어른의 나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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