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준이야 축하해
준June이는 이제 아홉 살이다. 또래들보다 1년 더 천천히 학교에 간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오늘 하룬 할머니는 반찬 가게를 접기로 했다. 어제 반찬도 만들지 않고 밤이 새도록 준이 담당의사가 건네준 학교 제출용 소견서를 읽었다. 전문용어들은 밑줄을 치고 발음까지 연습을 하며 읽고 또 읽었다. 담임에게 준이의 증상을 설명할 때 더듬거나 머뭇거리면 혹 준이가 말 못 하는 아이라고 생각할까 봐 할머니는 염려했다. ‘선생님은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준이가 곧 말을 할 거라는 걸 절대 의심하면 안 됩니다.’ 할머니는 눈이 빡빡해질 때까지 소견서를 또다시 읽었다.
“준이의 경우 청각, 발음 기관 모두 이상 소견 없다고 해요. 뇌에는 언어를 담당하는 특정 부위가 있는데, 여러 번 검사를 했는데 손상된 부분이 나오질 않았어요. 준이는 크게 열병을 앓거나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워낙 조심스러운 아이라. 아, 그리고 간혹 ‘브로카 실어증’이란 것이 있는데 뇌의 왼쪽 전두엽 어느 부분 그러니까 브로카 영역에 손상이 있을 때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머릿속의 생각을 문장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말로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말이 잘 안 나오니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에 망설이게 되며 서서히 대화를 거부하게 된다고 합니다. 말이 힘드니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배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주변에서 노력을 해준다면 말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하네요.” 할머니는 연습한 대로 아침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처럼 이해하기 쉽게 적절한 톤과 속도로 담임에게 알렸다. 그 누구도 할머니를 반찬 가게를 하는 시장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 설명 잘 들었어요. 준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아요.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능 검사 결과를 보니 분명 준이는 똑똑한 아이고, 또 준이의 소견서를 보니 청각이나 발음 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네요. 그런데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 아니 안 하니 할머니가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빨리 준이가 말문이 트였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머뭇거리는 준이를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았다. “우리 준이 걱정 마. 선생님이 도와줄게, 학교 재밌게 다닐 수 있게.”
준이는 눈을 감고 선생님의 마음의 소리를 부른다. “네, 선생님. 제가 말을 못 해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겠죠. 아이들은 고작 여덟 살이니깐요. 힘들면 특수학교로 보낼 생각인 것도 다 이해해요. 저도 제가 말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내 목소리를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 사실이죠. 하지만 한마디 말보다 더 중요한 건 많아요. 따뜻한 눈빛, 보드라운 손길, 환한 웃음...... 살다 보면 때론 말하지 않을 때가 더 나을 때도 많죠. 우린 말을 하고 후회도 많이 하잖아요.” 준이는 선생님이 나에 대해 하는 걱정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 어떤 교사도 말 못 하는 아이가 반에 오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깐. 누구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선생님을 따라 걷는 복도, 새로 산 점퍼가 걸을 때마다 부스럭거리며 재밌는 소리를 냈다.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점퍼 주머니로 할머니가 넣어준 사탕 몇 알이 만져진다. 할머니가 일하다가 현기증이 날 때 당떨어졌다고 먹는 땅콩사탕임에 분명했다. 그건 할머니가 지칠 때마다 힘을 내게 해 주는 묘약이었다. 사탕 사이로 작게 접힌 종이, ‘이게 무얼까’ 준이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종이를 펴본다. 한 번 열어 직사각형을 만들었다가 다시 한번 열어 커진 정사각형을 만들었다.
“준이야, 축하해.” 할머니의 필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