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달리는 것은 준이가 자신 있는 일 중의 하나였다. 준이는 할머니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을 때나 엄마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무작정 달리기를 했다. 무언가를 참거나 잊기 위해 달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서 심심할 때도 달렸다. 달리기는 준이의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였다. 혼자 달리다 보면 먹먹했던 가슴 한 편에 시원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꽃과 나무들이 함께 달려 주고, 함께 숨 쉬는 것 같아 외롭지 않았다.
준이는 동네를 구석구석 도는 마을버스 노선을 따라 달리곤 했는데 너무 멀리 갔다 싶으면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쫓아 돌아왔다. 저 앞으로 먼저 달려 나가려는 버스를 따라가다 보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점점 다리가 무거워지면서 속도가 줄어드는데 그때 멈추면 어김없이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와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 가쁜 숨을 넘어버리면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며 다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외롭거나 쓸쓸했던 감정들도 가슴 안에서 모조리 빠져나갔다. 이대로 멈춤 없이 달리다 보면 하늘까지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지치고 지쳤던 마라토너가 40km 즈음에서 초인적인 막판 스퍼트를 하는 것처럼 준이는 솟구치는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뛸 때마다 경험하곤 하였다.
체육시간, 준이는 아이들보다 훨씬 앞서 달리고 있다. 준이보다 키도 작고 체력도 달리는 아이들은 도저히 준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있는 힘껏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제일 먼저 골인 지점에 선 준이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때 아이들이 준이에게로 몰려들었다.
“준아, 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어? 나도 너처럼 빨리 달리고 싶어." 자기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작은 아이들 가운데서 준이는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큰 키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준이는 마음도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방법은 멈추지 않는 거야. 숨이 찰 때 힘들다고 발걸음을 멈춰버리면 더 이상 달릴 수 없지. 잘 달린다는 건 멈추지 않는 거야. 숨이 턱에 닿아도 달려 나가면 돼.' 준이는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옅은 미소로 대신했다. 준이에게서 잘 달리는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지만 아이들 역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준이는 글로만 이야기하는 아이란 걸 아이들은 이제 알고 있었기에.
“우리 준이, 정말 잘 달리는구나! 멋지다, 준이.” 선생님은 준이의 어깨를 평소보다 힘주어 토닥이며 준이를 두 번이나 불러 주었다. 그 손길에서 준이는 선생님에게서 말 못 하는 아이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가시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이젠 더 이상 저를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목소릴 잃어버렸다고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절 믿는다면 아프로디테가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요. 전 숨이 차올라도 멈추지 않아요. 멈추면 영원히 그 자리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