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준June이는 6월에 태어났다

08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by 코코

준이는 시들어 가는 화단의 꽃을 만져주고 있었다. 물도 적당히 준 것 같은데 하지만 하루하루 꽃이 시들어 간다. 그럴 때면 준이는 햇빛이나 바람을 탓하지 않았다. 준이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찾고자 했다. 조심스럽게 꽃 주변의 흙을 파 들어가 꽃을 꺼내 들여다보면 대개는 뿌리가 자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뿌리가 크지 못하면 다시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준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준이는 사랑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천천히 조금씩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죽어가는 꽃을 보며 깨달았다. 물이 많거나 부족해도, 갑작스러운 한파나 폭염에도 뿌리를 깊게 내린 식물들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절대 모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준이 학교 다녀오니?” 진희는 얼마 전부터 미용실에 나가지 않았다. 볼캡을 얼굴이 안 보이도록 눌러쓰고 그위 다시 후디의 모자까지 덧쓴 채로 걷다가 준이를 발견하곤 말을 건넸다.


준이는 하굣길에 만난 진희가 동네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번화가 쪽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이라 짐작했다. 동네 슈퍼에서 담배나 맥주를 사면 어김없이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진희는 느낄 수 있었다. 진희 같은 젊고 예쁜 여자가 매일 술과 담배를 사가는 것에 동네 사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진희 엄마는 슈퍼 아주머니에게서 담배 얘기를 듣고 나서 고등학교 때처럼 진희의 등을 세차게 때려줬다. 하지만 준이는 진희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될 때마다 진희가 마음 편하게 웃어주었다.


“준이 학교 재밌니?” 지난달 미용실에서 본 생기 있는 얼굴과 달리 시들어만 가는 진희의 얼굴을 보며 준이는 마음이 아팠다. 하얀 비닐봉지에는 담배 몇 갑과 맥주캔 4개가 담겨 있었다. 진희는 캔 사이로 껌 한 통을 찾아 꺼내 껍질을 벗겨 씹기 시작했다. 준이도 진희가 건넨 껌을 씹었다.


달달하고 상큼한 민트향이 입안 가득 퍼져나가자 준이도 진희도 조금은 기분이 괜찮아졌다. 준이와 진희는 질겅질겅 껌을 씹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한참을 걷다가 진희는 준이만 들릴만큼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


준이는 진희가 불러주는 노래가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날 낳기 전에 사랑했던 남자에게 불러주었을 것이고, 어쩌면 할머니도 할아버지에게 들려주었을지 모를 그런 오래된 노래처럼 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각자의 기억으로 떠났다가 하나가 되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 노랫말처럼 괜한 헛수고이고, 헛된 희망이고, 무모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준이는 생각했다. 진희의 노래에서 준이는 막 시작된 사랑을 가슴 아리게 정의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들지 않는 꽃처럼 깊이 뿌리내린 사랑은 헛된 것이 아닐 거예요.’ 준이가 진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준이가 손을 잡자 처음엔 놀랐지만 진희는 준이가 무안할까 봐 손을 놓지 않았다. 천천히 준이의 따뜻함이 물감처럼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준이는 몸 안의 공기를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고 신경을 집중하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리는 후두를 넘지 못했다.


’힘들면 내 손을 놓지 말아요. 누나가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아픈 기억을 지워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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