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베르테르 Werther
오후 수업이 한창일 때,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가 뒤섞여 혼란스럽게 교실 창문을 깨뜨릴 듯이 넘어 들어왔다. 한두 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적어도 열 대 이상의 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로 들렸다. 수백 수천 마리의 매미 떼가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수업 도중이었음에도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다.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선생님의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저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준이가 갑자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있던 연필과 책, 노트들을 쓸어 담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준이야, 갑자기 왜 그래! 어디 가!” 선생님은 늘 차분했던 준이의 돌발행동에 놀라 소리쳤지만 뛰쳐나가는 준이를 잡지 못했다.
준이는 집 방향으로 무조건 내달렸다. 그 어느 때보다 준이는 빨리 달렸고 숨도 차지 않았다. 점점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며 사람들의 탄식과 외침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여기는, 이 다리, 집으로 갈 때, 진희 누나와 함께 건넜던 이곳' 준이는 이 2차선 다리가 소리의 진앙지임을 알고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준이의 얼굴은 어느새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준이가 동네 사람들 사이를 미친 듯이 비집고 들어가 폴리스 라인 앞에 섰을 때, 구급차 한 대가 급히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구급차에서 비켜서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난 가장자리 자갈밭에 처절하게도 선혈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준이는 이 순간 소리 내어 울지 못하면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폐부 제일 깊숙한 곳에서 그간 눌려왔던 응어리가 솟구쳐 오르자 준이는 주저앉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가슴을 주먹으로 움켜쥐며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졌지만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숨 막히고 고통스러웠다. 얼굴을 땅으로 처박았다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가슴에 깊이 박혀있던 한과 울분이 한순간에 분수처럼 터져 솟아올라 준이의 성대를 강하게 울렸다.
"안돼...... 이렇게 떠나면...... 안... 돼!" 준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음성을 기어이 들었다. 영혼이 미처 준비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목소리를 찾아내었다는 사실이 준이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베르테르, 준이는 진희의 영정 사진을 보며 그를 떠올렸다. 오롯이 로테를 향한 사랑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베르테르를 준이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사랑을 하면 할수록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깐. 지독한 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더 이상의 지속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사진 속 진희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좋아하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여전히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베르테르가 죽을 때 로테와의 추억이 담긴 청색 코트와 노란 조끼를 입었던 것처럼.
준이는 훗날 괴테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정작 자신은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알게 된다.
또 괴테가 “고난은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임을 기억하라.”라는 명언도 남겼던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괴테의 소설을 읽고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래 이 소설의 독일어 제목이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본래 이름은 ‘베르터’이고 그는 제목 그대로 슬퍼도 했지만 고뇌했고, 괴로워했으며 고통받았다.
준이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기약 없는 여행을 아무런 채비 없이 떠나려 했다. 진희가 그랬던 것처럼 준이에게도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준이는 눈물과 통곡이 끊이지 않는 장례식장을 나오며 그날 처음 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기억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언어를 이제 찾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분간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말을 한다고 사랑을 잃은 슬픔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준이는 긴 침묵으로 진희를 가슴에 묻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