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할머니의 기도, 준이야 이제 학교에 가자
준June이가 서너 살 땐 할머니는 매일 밤 기도를 했다. 내일 가게에 내놓을 반찬을 만들고 나면 할머니는 식재료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손을 수십 번 닦았다. 준이를 위한 기도가 부정 탈까 봐 향긋한 비누향이 밸 때까지 있는 힘껏 비누칠을 해댔다.
준이가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나면, 할머니는 십자가를 움켜쥐고, 무릎을 땅에 대고 애절하기 그지없는 기도를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전지전능한 아버지 하나님께 오늘도 준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문을 여는 기도는 오직 준이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준이가 내일 아침엔 단 한 마디라도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혼신을 다한 기도가 끝나면 할머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잠든 준이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없어서 말을 못 하누?”라며 안타까워했다. 할머니는 모든 아이들의 말문이 트이는 순간은 ‘엄마’라는 단어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준이 할머니는 그렇게 매일 기도를 하였지만 평생 동안 한 번도 교회에 간 적이 없었다.
“대개 말을 못 하는 이유는 청력이나 발성 기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준이는 아기였을 때나 지금이나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또 언어 장애의 원인 중에 뇌기능의 문제가 있는 케이스가 있는데 준이는 상당히 지능이 높은 아이입니다. 자폐 아이들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능성도 없고요. 할머님 실어증이란 말 들어보셨죠? 갑자기 언어를 담당하는 뇌 부분이 다쳐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준이는 읽기, 쓰기를 너무나 잘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큰 충격을 받아서 심리적으로 말을 꺼리는 경우가 생기는데, 왜 드라마에 보면 강한 충격 때문에 잠깐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나오죠? 그런 사람들처럼 준이도 어느 날 갑자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준이와 할머니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새하얀 케이크를 사 왔다. 딸기도, 초코 시럽도 올리지 않은 순백의 케이크에 할머니는 초를 한 개 꽂았다. 준이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단 한 개의 촛불을 힘껏 불어 껐다.
"준이야, 이제 학교에 가자. 농아들이 가는 학교 말고 동네 아이들이 다 다니는 시장 옆 초등학교에 가자."
준이는 북받친 감정으로 파르르 떨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의 마음을 읽었다. "할머니, 걱정 마. 학교에 갈게. 할머니가 원하다면 난 뭐든지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