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준June이는 6월에 태어났다

02 야생화, 너희들은 누굴 기다리고 있니

by 코코

준June이는 어느새 여덟 살로 자라났다. 자라는 동안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고, 보채는 일도 없었다. 잠투정을 하지도 않았고, 물을 쏟지도, 거실 벽에 낙서도, 꽃이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지도 않는 착한 아이였다. 늘 경계심이 강한 고양이처럼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걸었지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몹시도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준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 근처 재래시장, 골목 맨 끄트머리 점포를 구해 반찬 가게를 했다. 그 시장 골목에서 세가 가장 쌀 정도로 작고 후미졌다. 시장 초입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누군가 반찬가게가 어디냐고 물으면 두 손 가득 물건을 팔다가 모두 다 턱끝으로 준이네 반찬가게를 가리키며 “저 끝이에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 시장에서 그날그날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자신이 잠들기 전까지 만들 수 있을 만큼만 사다가 준이를 돌보면서 만들었다. 무리해서 만든다고 몸만 망가지고 더 팔리지 않는다는 걸 할머니는 장사를 하며 진작에 터득했다. 손님들도 대부분 시장 사람들이었다. 골목 끝까지 외지인이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신들이 도매가보다도 싸게 판 재료로 만든 부가가치가 한껏 더해진 반찬을 먹는 셈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반찬이 싸니 비싸니 시비 걸지 않았다. 또 양을 더 달라고 흥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반찬을 만들 시간도 없을 만큼 바삐 사는 사람들이었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짓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는 고들빼기, 무말랭이, 마늘쫑을 한 양념으로 무쳤고, 멸치와 건새우, 진미채도 한 양념으로 졸였다. 사람들은 무침에서, 조림에서 같은 맛이 나서 반찬이 다 똑같다고 투덜거렸지만 가게를 닫는 3시 정도면 일부러 찾아와 이것저것 반찬들을 직접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맛이 비슷해서 무얼 담아도 상관없었다.


“어머, 오늘은 웬 녹두전이야. 준이 주려고 만들었구먼. 밤늦게까지 부쳤겠어. 준이 오늘은 무슨 책 읽니? 할머니가 준이 읽을 책 가지고 왔어. 우리 집 손주 새끼들은 지 애비애미 닮아 비싼 돈 들여 사다 줘도 책을 안 읽어. 그나저나 준이도 이제 학교에 가야 할 텐데” 하면서 직접 반찬 담은 봉지를 능숙하게 휙 안쪽으로 한 번 돌려 새지 않게 단단히 조여 묶었다.


할머니는 반찬이 다 팔리면 서둘러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준이와 손을 잡고 집까지 걸었다. 자신은 준이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인지 늘 준이가 아플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우리 착한 준이, 우리 똑똑한 준이.”를 유행가 후렴구처럼 달고 살았다.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준이는 아침 나팔꽃처럼 환하게 웃어 주었다. 두 사람의 손에 흥건히 땀이 배어 나와도 집에 가는 길 위에서 둘은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 너무 자책하지 마. 엄마가 아빠 없이 자란 건, 엄마가 날 버리고 떠난 건 할머니 때문이 아니야. 모두 다 할머니와 상관없이 그들이 선택한 일이잖아. 미안하다고 제발 말하지 마.’


준이는 걸음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보도블록 사이에서 피어난 하얀 꽃들을 바라보았다. 이름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은 식물들은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들이다. 스스로 살 곳을 찾아 몸을 누이고 땅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가 싹을 틔워 꽃으로 기어이 자라난다.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피어난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참 강인하다, 억세다, 질기다고 쉽게 말한다. 준이는 ‘개-망초’를 손끝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너희들은 언제나 말이 없구나. 춥다 덥다 말하지 않고 혼자 몸 녹이고, 혼자 비바람을 견디고 그렇게 사는구나. 누굴 기다리니 물어도 너희들은 언제나 대답이 없네.’


“못된 년, 준이가 이렇게 클 동안 한 번 보러 오지도 않고.” 엄마는 기다리라 해놓고, 돌아온다 해놓고 매정하게도 준이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준이는 자신이 시장에서 팔지 않는 옷을 매일 입는다는 것, 아이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옷들은 여기가 아닌, 서울과 같은 큰 도시 내지는 그 주변에서 보내온 것이라는 것을 준이는 짐작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가 보낸 것이란 사실을 할머니의 손을 잡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처럼 6월에는 자기가 사고 싶던 축구공이며, 자전거며, 물감이며 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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