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 <눈보라 -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한니발은 세계사에 이름을 떨친 위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인의 간담을 서늘케 한 카르타고의 명장이다. 코끼리와 대군을 이끌고 험준하기 이를 데 없는 알프스 산맥을 넘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일찍이 어느 장군도 생각지 못한 과감한 전술이었다.
터너의 명작 <눈보라 -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따온 작품이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한니발의 영웅적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대담한 행적을 소재로 삼았다면 당연히 군대의 행렬 같은 것을 그렸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눈폭풍을 만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다.
터너가 이런 작품을 그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산속에서 눈 폭풍을 경험한 뒤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한니발의 위대한 로마 원정길에 빗대어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하잘것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건 여담ᆢ험준한 알프스를 넘다가 한쪽 눈을 잃은 한니발은 살아생전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다. 그는 어느 날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한니발은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애꾸눈인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결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림을 보고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를 눈치챈 부하가 다른 화가를 불렀다.
두 번째 화가는 앞서 그린 화가의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눈이 멀쩡한 모습으로 그렸다. 하지만 한니발은 그 그림을 보고 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림이 아무리 멋지고 보기 좋아도 그것은 엄연히 가짜이고, 화가가 거짓으로 아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세 번째 화가를 불러와 다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한니발은 그 화가의 그림을 받아보고 몹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 화가는 정면에서 그리지 않고, 애꾸눈이 보이지 보이지 않도록 한니발의 옆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거짓으로 그린 것도 아니면서 애꾸눈이 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크게 만족했던 거란다.
ㅡ 로마 시대 동전 속 한니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