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설레발

가을 문턱에서

by 재섭이네수산

여름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가을이 잠시 머무른다.

사계절이 24시간이라면

봄은 3시간,

여름은 10시간,

가을은 겨우 2시간.

겨울은 9시간.

이것은 나의 계산법.



가을이 온 것을 보며 나는

이미 겨울이 온 것처럼

긴 겨울이 시작되려 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봄 3시간.

봄처럼 만발한 꽃은 없으나

하얗게 내리는 눈꽃 있으니

겨울, 얼마나 아름다운 꽃밭인가?

눈뭉치 던지며 까르르 웃으면

겨울은 봄마냥 따스한 웃음꽃밭이었다.



여름 10시간.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없으나

얼음 지치며 내달리는 열정 있으니

군고구마 뜨거움은 말해 뭐할까?

겨울은 열정적이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었다.



군불 지피며 따스한 아랫목을 내어주시던

어머니.

유난히 잘 체하던 자식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손은 약손 하시던 어머니.

군불보다 따스했던 그 손길.

겨울이기에 더욱 따스했다.



가을 2시간.

가을은 겨울의 문턱이다.

스산하나 청명한 하늘

천기라도 읽을 줄 알았지만

그저 곱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져서야 비로소

가을은 절경을 만들어낸다.

관계에서 오는 경관, 그것은 아마도

겨울을 깨우는 소리련가.



드디어 겨울 9시간.

눈 내린 겨울산과

코끝까지 쨍하게 얼려놓는

그 서늘한 기운이 펼쳐놓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껴안다.

긴 겨울 밤, 하늘에서 도드라지는 별자리

오래 볼 수 있는 인내심을 품은 자,

겨울엔 모두 가난한 시인이 된다.



그렇기에

짙은 어둠 속에 별빛들이 더 빛나듯

시련을 이겨낸 모든 경험들은 고귀하다.



46번의 24시간을 잘 보내주고 있을까?

혈액순환 잘 되던 청춘,

날카로움을 멋이라 여겼기에

뜨거워야 겨우 따스하고

조금만 뜨거워도 너무 감사하고

가만히 있으면 손발 얼어붙는 겨울을

모르고도 마냥 사랑했다.

이제 주물러도 저리는 노년이 되니

날카로운 지적보다

넓고 따스한 품어줌이 좋고

가만히 있어도 따스한 봄이 가장 좋다.



그리고 남아있는 9시간.

그저 영원한 봄날을 기다리며,

나의 47번의 24시간을 겹쳐

70번의 24시간을 살아내신 분께

이 글을 바친다.



당신은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누구보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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