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예민함이라는 심연

나조차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했던 마음의 깊이

by 진다락

내가 기억하는 '나'는 언제나 밝았다.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인기 많은 아이가 나였다. 늘 반장으로 추천받았고, 체육대회 날이면 운동을 잘하는 남자친구들을 제치고 MVP를 거머쥘 정도였다. 모든 일에 거침없었고 친구들도 모두 나를 '성격 좋은, 재미있는 아이'로 기억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늘 불안정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이는 일은 언제나 버거웠고, 북적이는 소리와 시선들 사이에서 숨이 막혔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친구들과는 달리,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쉽게 상했고 타인의 흠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의 한 조각을 떼어내어 그 조각 속에 나를 가뒀다. 그 사람의 말, 표정, 기류 하나하나에 내 모든 신경을 내어주고 그 어둠 속에 깊이 잠겼다.



예민하다.

1. 감각이 매우 날카롭고 섬세하다.

2. 외부 자극에 대해 쉽게 반응하거나 영향을 받는 성질이 있다.

3. 생각이나 감정이 빠르고 깊으며 쉽게 동요하는 상태이다.



성인이 되기 전, 나는 '예민함'이란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까칠하고 예민하게 구는, 마치 손톱 옆에 난 자잘한 상처 같은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과 생각이 조금씩 비틀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이상한 주파수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 보통이란 단어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나의 한 구석이 망가져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집 안에서 나의 감정과 행동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일은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챘던 순간부터 나는 어쩐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마음 한편에 지닌 채 늘 조용히,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예민함'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 아프고 외로웠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마음을 휘감았고, 그 안에서 나를 잃어가는 듯했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간들 속에서 그저 조용히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천천히 알게 되었다.

나의 감정과 반응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내 안의 진짜 목소리라는 것을.




나와 같은 결을 지닌 당신에게, 이 글이 수많은 말과 위로보다 먼저 닿는 '이해'로 남기를 바란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