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이다. 먼저 출근 후 가운으로 갈아입는다. 근무 교대를 위해 밤 근무 담당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밤을 꼬박 새운 눈빛이 붉다. 피로가 눈에서 흘러내린다. 새로 출근한 직원들과 분명한 구분이 된다. 팀별 개별 환자 인계를 받기 전, 전체 업무 보고를 한다. 환자를 관리하기 위한 물품이나 준비해야 할 문제가 대부분이다.
근래에 이러한 일들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산소탱크를 교환하고 휠체어를 수리해야 된다는 등의 일은 사소한 일이 되고, 환자가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새로 입원한 환자가 치매 증상이 있었고, 수술 환자가 섬망 증상이 나타나 치료용 도관들을 모두 잡아뺐다. 소변줄을 억지로 잡아당겨 대량 출혈이 일어나 밤에 비뇨기과에 응급 콜을 하였다.’ 대략 이런 일이 주가 되었다.
삶을 돌아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좋을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만 알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 자리가 꽃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란 것도,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켜내야 할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환자들을 둘러본다. 다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로 인생을 살아내신, 대부분 팔순 안팎인, 또 다른 노인이란 이름을 지니신 분이다. 자신의 미래에 이런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줄 생각이나 했을까. 노년의 삶이 살아낸 생의 결과로만 주어진다면 이런 모습은 없었을 될 것이다.
예전 할머니가 염불처럼 흥얼거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제발 잠자듯이 가게 해주세요. 애들 고생 안 시키게 노망이 나지 않게 해주세요.” 의료복지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가족의 문제는 온전히 가정에서 해결해야 했다. 노망든 어른이 계신 집은 온 가족의 불화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기도는 칠순에 시작되어 구순이 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기도 덕분인지 할머니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도 굳은 일을 없으셨고 곱게 계시다, 자리에 누워 삼 일을 앓고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소망은 이루어진 셈이다.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서인지 할머니 보듯 환자들을 돌본다. 아이고 제발 잠자듯이 가게 해주세요. 하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날 때가 많다. 몸이 아프다는 것과 마음이 아픈 차이는 분명이 있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넋을 놓는 경우도 많다. 누가 자신의 미래가 이러한 모습으로 될지는 알고 있었을까.
지난밤 허리 골절로 새로 입원한 팔순이 다된 환자가 자면서 큰 소리를 질러서 병실 환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왜 저런 사람을 이 방에 넣어서 다들 못자게 하요. 다른 곳으로 보내주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병실에는 다른 사람보다 목소리가 크고 분위기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 꼭 한둘은 있는데 그 병실에 그런 환자가 있었다. 다들 분위기가 고조되어 함께 소리쳤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밤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옆 병실로 옮겼다.
그는 옆 병실로 옮겨졌다. 다른 병실에서 견디지 못하고 온 환자를 반길 사람이 있을까, 처음부터 있던 사람도 아니고 다른 병실에서 싫다고 쫓기듯이 온 환자였다. 새로운 병실에서도 똑같은 소요가 있었지만, 환자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고 밤을 견뎌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이 병실에서 돌림을 받는다는 조차도 모른다. 초점없이 그냥 시키는 데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 몸이 아니고 의탁한 사람만 같았다. 낯선 시간 속에 갖혀 있는 모습이 슬퍼 보인다.
삶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 주어진 대로 태어나서 삶을 살아냈다. 그 마지막 남은 여생 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살아온 삶을 기억하고 더러는 정리하면서 살아내는 인생이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것을 환자들을 보면서 배운다. 느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말할 수 없다. 오늘도 낯선 시간의 길 위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기쁨과 슬픔 조차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보다 한 발 뒤에 서 있을 뿐, 다르지 않는 사람이란 것도 안다. 좀더 따뜻한 손, 느린 손으로 그들의 길을 살펴본다. 토닥여 본다. 그들을 잠재 울 주사를 놓은 손길에 염원을 담는다. 한잠 푹 자고, 툴툴 털면서 기억의 자리를 찾아오기를, 어떻게 그들의 가슴을 잔잔히 흔들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