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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12. 2024

01. 당신은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가?

#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단 말이 있다.

국어 교과서에서나 봤을법한 이 말을 내 평생 가슴에 새기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딱히 여우를 만나적이 없지만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일지도 모른다.

존재 가치를 확인 받고자 하는 갈망이 늘 있었는데 그런 갈망 또한 스스로 도망쳤던 여우로 인한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곤 한다

그때 만약 여우를 피해 도망가지 않고 마주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때 만약 안락한 곳으로의 도망이 아니라 직면의 고통을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자유로이 춤을 추고 있을까?

하늘이 한번 내뱉는 헛기침에도 이리저리 휘청이는 사시나무와 달리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의 자태는 얼마나 위풍당당한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했던 나의 선택이 어떻게 나를 뿌리 없는 나무로 만들었는지, 여우를 피하려다 만난 호랑이는 어떻게 나를 성장시켰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얘기해보고 싶었다.

이 여정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여정의 끝에서 만난 나는 부디 세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린 의연한 한 그루 나무이길 희망해 본다.


#  부모 등골 빼먹는 년


내 인생의 첫 번째 여우를 만난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고등학교 때 심한 사춘기와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나는 그 시기를 돌아보면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그 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냈는지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나게 논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바보처럼 보낸 시간은 나도 모르게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자신감까지 떨어지게 만들었다. 바보 같았던 자신을 인정하고 다시 나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고졸 출신의 기술 하나 없는 여자애가 할만한 일은 뻔했고 세상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늦게라도 대학에 가려했지만 계집애가 그 나이에 무슨 대학이냐며 반대가 심했다.

집에서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집을 나와 혼자 힘으로 학원비를 벌어가며 공부해  1년 뒤에 대학에 합격했다.

그때만 해도 학력고사를 보던 때라 지금 보다 대학에 들어가기가 오히려 쉬웠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망쳐버린 학창 시절로 인해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조금은 회복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뒤늦은 나의 대학 입학은 엄마에겐 반가울게 전혀 없는 일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엄마에게는 아들이 아닌 딸년의 대학 입학은 보험료는 엄청 들어가는데 보험금은 타먹을 수 없는 보험과 같았던 것이다.

엄마에게 나는 부모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못된 딸년이었다. 재수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두었던 돈을 받을 때는 착하기만 했던 딸이 갑자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년이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엄마 입장에선 내게 하는 모든 구박이 정당 했을 것이다.

냉장고에 있는 과일도 마음대로 먹어선 안되고 새벽 알바를 하다 비를 맞고 오들오들 떨며 들어온 딸년이 흘리는 빗물도 참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나이에 착실하게 직장 다니며 가끔씩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는 다른 딸들에 비하면 나는 형편없는 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 등골 빼먹는 년'이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따라 학교에 갈 차비조차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며 엄마에게 용돈을 좀 달라고 했다.

한 손 가득 만 원짜리 돈뭉치를 세고 있던 엄마는 한순간 나를 노려보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바닥에 휙 던지며 "으휴 부모 등골 빼먹는 년"이라고 했다.


때로 사람의 한마디 말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차라리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 수 있어도 비수처럼 꽂힌 말로 인한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꽈리를 틀고 앉아 새끼를 낳고 또 낳는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낳은 새끼들은 시끄러운 수다쟁이가 되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넌 왜 태어나서 민폐니?  너를 낳아준 엄마조차도 너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잖아. 안 낳으려다 어쩔 수 없이  나았더니 돈만 든다며 후회하잖아.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니까 흐흐흐..'


지금의 나라면 여유 있게 웃으며 함부로 떠들어대는 주둥이에 어퍼컷을 날렸을 테지만 그 당시에 그 지껄임 들은 수시로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난 세상과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차라리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그리고 그게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 한마디 말이 그렇게까지 상처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내 마음대로 굳게 믿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노후를 맡길 수 있는 아들이 아니라 시집가면 그만인 딸년의 대학 진학은 하등 반가울 게 없는 일이란 걸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모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와 엄마를 이해한 게 된 건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졸업 후 내 안의 문제들과 직면하는 대신 난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는 결혼이란 걸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아이도 둘씩이나 낳았다. 

아무 생각없이 낳은 '두 생명체'에대한 막중한 책임을 깨달았을 쯤에야 알게됐다.

내가 여우를 피하려고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거라는 걸.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회피한 자에게는 자존감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자존감이 없어서 회피하는 게 아니라 회피를 했기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걸.













      

우연한 여행자


      우연히 명리학이란 산을 만나 여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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