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대호 변호사 Nov 25. 2024

민사 소송일지 첫 페이지
: 종중총회결의무효

종중 총회에서 결정된 결의에 대해 "전부 무효" 임을 확인한 사례

"저는 결정에 동의할 수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전통 따지면 뭐합니까 예?"



저에게 찾아오셔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놀란 마음은 일단 뒤로 하고 어떤 문제 때문에 오신 것인지 전달받은 차트를 살펴보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전달 받은 내용은 자세한 사안이 적혀있지 않아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요. 그러니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주시죠."


그러자 의뢰인은 앞에 놓인 물 한 잔을 벌컥 들이키시더니만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찾아주신 의뢰인께서도 역시 종중에 속한 분이었고 총회 결정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신 상태셨지요.


종중과 관련되어 법적으로 따질 것이 있으신 분들이나 궁금한 것이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오시고는 하는데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분야가 아니다보니 많은 사안을 경험해 본 변호사를 찾아오시나 봅니다.


의뢰인에게 상담의 목적과 원하는 결과가 어찌되느냐 여쭤보니 종중총회결의무효를 만들고자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기 위해서는 제가 많은 자료를 검토해야 하기에 조금 진정되신 의뢰인 분께 평소와 같이 차분한 말투로 여쭤보았습니다.


"종중총회결의무효로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주장을 뒷받침 할 증거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혹시 선생님꼐서 확보하신 증거로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잠시 골똘히 생각하시던 의뢰인은 어쩌다 총회가 열리게 되었는지, 왜 본인이 이를 무효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 말씀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여기에 전부 적을 수 없으니 약간의 요약을 해서 적어보겠습니다. 아마 이 내용은 사건의 전말 정도가 되겠지요?


1. 종중의 중요 직책을 선출하고자 하는 선거가 예정
2. 선거 후보자가 현 종중 회장의 측근들 뿐
3. 투표일에 대한 공지를 종중원들에게 문자로 전송
4. 공지받은 투표일에 참석하니 이미 투표는 종료, 측근들이 전부 중요 직책에 결정
5. 당선되었더라도 총회에서 자격 검증이 필요, 이를 회장 측근끼리 진행함

위 내용을 파악한 뒤 저는 총회 결의 당시 회의록을 구해달라 말씀드렸고, 의뢰인이 받은 문자와 다른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는 다른 종원을 찾아 증언과 함께 증거를 제시해줄 것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지요.




1. 의도적으로 투표를 막은 점


제가 종중 사건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요청하는 것은 해당 종중의 규약입니다.


이에 따르면 중요 직책을 결정하는 투표에 관련해서 참여가 가능한 전 종중원이 모두 참여해야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의뢰인을 포함한 다른 종중원 약 50명은 투표 일정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이미 자신의 사람들로 가득 채운 투표장에서 투표를 진행하여 측근들이 본인 옆에 있도록 했던 셈이지요.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로 다른 투표 날짜를 고지 받았던 종원의 문자 내역을 제출했습니다.


분명 의뢰인에게는 8월 20일이라던 투표일이 같은 종중원에게는 8월 13일로 안내되었던 것이지요.


이를 토대로 현 회장이 의도적으로 몇몇 종중원들의 투표를 막아 자신이 원하는대로 결과를 받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2. 규약에 어긋나는 총회 개최 및 결의를 한 점


그리고 하나 더, 투표를 통해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참석이 가능한 모든 종중원이 모인 자리에서 당선자의 자격을 논하는 총회가 개최되어야 하고


이 때 참석한 인원의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당선자는 자신의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참석이 가능한 인원들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차등을 두지 않고 이를 안내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투표를 했던 인원들만 참석하였고 의뢰인을 포함한 50명의 인원은 이를 고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의 개회부터 결정까지 모두 잘못되었기에 위 결의를 무효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피고 측이 반박한다며 가져왔던 회의록 때문에 의뢰인은 걱정하셨지만 타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가 되었지요.


왜냐하면, 제가 가진 회의록에서 참석자 명단이 조작된 것임을 이미 밝혔기 때문입니다.


회장 측은 오지도 않은 50명의 인원을 회의에 참석했다고 거짓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고 수기로 서명까지 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를 위조했기 때문에 회장 측의 증거로서 효력이 없고 오히려 의뢰인 쪽에 효력이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 모든 사람의 참석을 의도적으로 막은 점
- 참석자 명단을 모두 조작하여 증거로 제출한 점
- 종중 규약을 완벽히 어긴 결의였다는 점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조작된 회의록과 의도적인 투표 일자 조작에 대해 문제성이 있음을 지적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결정된 직책의 종원을 모두 박탈하고 종중총회결의무효 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시던 의뢰인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선생님, 종중원으로서의 권리를 잃지 마시고 지금처럼 부당함이 있다고 느껴지실 때는 꼭 목소리를 내셔야 합니다."


그러자 의뢰인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음에도 문제 있으면 또 변호사님 찾아뵈어야죠. 이렇게 꼼꼼하게 살펴봐주시고 대응해주시니 저야 뭐 마음 편했습니다!"


종중 사건은 워낙에 복잡한 사안이라 시작하기에 많이 꺼리시지만 이것도 자세히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상황이 복잡해졌을 뿐이지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지요.


저는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종중 전문 변호사로서 계속 사건을 담당하고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의뢰인들이 저를 의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명을 가지고 전화를 받고, 글을 남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