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자유

자유는 무겁다 그러나, 무거워도 자유다.

by 조성영

‘자유’에 대한 두 가지 깨달음


나는 꿈이 없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렇다고 “꿈이 없어서 자유전공학부에 왔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어찌저찌 여건이 맞았다. 성인 되어서 꿈을 찾겠다는 꿈을 갖고 입학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전공 선택을 의논할 때 나는 혼자 국문학과에 들어갔다. 그러곤 3년이나 늦게 경영학과에 진입했고 역시 외로웠다. 인턴이나 학회나 교환학생 대신, 게임과 책과 동아리로 대학생활을 채웠다. 그리고 지금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20대 초반에게 주어진 거의 무한한 자유를, 나는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자유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나 싶다.

이 글에서는 내가 대학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유전공학부라는 열린 길을 걸어보며 깨달은, 바로 그 ‘자유’를 말하려 한다.



하나, 자유는 무겁다.

대학을 다니면서 경험한 이 ‘자유’라는 건,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나는 한때, 자유를 가벼움의 다른 이름이라 추측했었다. 선택하는 데 제한이 없는,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가벼움 말이다.

허나 자유는 무거웠다. 비유하자면 등산 같았다. 내가 등산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유는, 이것저것 예비로 챙겨야할 게 많기 때문이다.


추울까, 비가 올까, 먹고 마실 건 얼마나 챙겨야 할까, 뭘 입어야 할까, 보호대를 차야할까. 중간에 토일렛 이슈가 있으면 안 되는데 아침은 뭘 먹어야 할까.


불확실 속에서 많은 걸 결정해야하는 답답함 속에서 하나하나 고민하고 신경 쓰다보면 가방은 이내 무거워진다. 등산을 잘 하기 위해 가방을 챙기는 건데, 도리어 그 가방의 무게 때문에 걸음걸음이 힘들어진다.


이렇듯 나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준비와 고민을 반복하며 무거워지는, 그래서 그 의미가 빛바래지는 자유를 잘 이용하지도 즐기지도 못했던 것 같다.


자유가 무거웠던 이유는 양가감정 때문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애초에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았다. 또, 친구들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 입모아 말하는, 바람직하고 좋은 삶에 대한 합의된 정답 비스무리한 게 있었다. 공부 잘하고, 운동하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이왕이면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것,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성인이 되고 넓어진 세상에서는, 양극단은 있는데 그 사이 어느 지점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어떤 걸 하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더 멀리 가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중간이나 보통의 영점(0,0)을 지키자니, 출발조차 하지 않는 용기도 개성도 매력도 없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단 한 발만 내딛어도 양옆과 뒤가 ‘가보지 않은 부러운 길’로 색이 변해있었다.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르는, 그렇다고 어느 지점에 있어도 답답한 그 상황은, 놀고 싶은데 안 놀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 안 하고 싶은, 그 양가감정을 극대화했다.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별로 안 그러고 싶고, 꾸미고 싶은데 안 꾸미고 싶고..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데 나한테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한가 싶고..

모순적인 감정이 날마다 날카로워졌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고, 내가 그걸 고를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자책이 항상 뒤를 따라다녔다. 자유가 머리라면 후회는 그 몸뚱이의 꼬리 같았다.


너무 많은 선택지, 거듭되는 고민과 비교로 높아진 눈, 결국 최선을 좇았지만 최악이나 피하게 되는 결과. 모든 선택에 붙는 후회라는 세금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자신감을 깎았다. 의심과 불확실을 뚫고 나갈 용기도 그때는 부족했다.


ㅈㅇ.jpg 자유전공학부


둘, 무거워도 자유다

힘들었던 얘기는 충분하니, 이제 내가 그 자유 속에서 살아남으며 깨달은 것을 말해보려 한다.


무궁무진한 자유 속에서, 단 하나의 최선만 남기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불확실함을 걷어내고, 의심이나 궁금증이 해소된 채로 뭔가를 시작하는 그런 절호의 기회 따위, 오지 않는다.


나는 내가 생각이 깊고, 신중한 거라 여겼었다. 근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거듭된 고민이 무색하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건 별로 없었다. 또, 뭔가를 이뤄낸 경험을 돌이켜보면, 무조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일단 해보면서 가능성을 판단하는, 선후관계가 바뀐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결국, 의문과 불확신과 불안과 의심과 그 불편한 양가감정을 가진 채로, ‘무거운 자유를 짊어진 채로 그냥 해야’ 되는 거였다. 어차피 단 하나의 정답도 없는 거, 남들 따라서도 해보고 나 혼자서도 해보면서 나한테 맞는 걸 찾아가야 하는 거였다. 자유를 만끽하는 방법은. 짐을 어떻게든 줄인 최선의 가벼움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그 무게를 견디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거였다.


자유는 가벼움이 아니었다. 무게를 버티고 견디고 결국에는 짊어질 만하다고 느끼는, ‘적응된 무거움’이었다. 혹시나 그걸 즐기기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

‘인생은 맷집’이라는 제목의 내 옛 에세이를 우연히 읽었다. 어떤 경험이든 그게 반복된다고 해서 그 아픔이나 고통이 작아지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점차 다운되지는 않을 정도로 견딜 만해지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그리고 고통의 기간을 버티는 법을 우리는 터득해간다. 그리하여 세상살이에 대해 맷집이 세져서 버틸 만해질 때, 그걸 성숙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자유라는 녀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유전공학부 오지 말 걸, 의미 없는 후회도 해보았다. 중요한 선택을 대신 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또는 선택의 폭이 좁아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자유전공학부에서 자유를 당한(?) 덕분에, 애매한 것, 불확실한 것, 궁금한 것, 조심스러운 것을, 적당히 버티고 참고 견디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분명 큰 자산일 테다. 자유로울 줄 아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keyword
이전 15화[EP.15]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