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단점이 없습니다, 그게 제 단점입니다.
"본인의 장단점이 무엇입니까? (00자 내외)“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마주하면 곤란하곤 했던 질문이다. 장점은 그렇다 쳐도 스스로 단점을 얘기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참 어려웠다. 무엇보다 ‘자기 단점을 정확히 아는 게 애초에 가능한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모든 사람은 1인칭을 살고 결국 자기 좋을 대로 받아들이니까.
나는 대학시절, 내가 단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만 좀 서투르지, 금방 연습하여 익숙해지고 개선하며 극복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못하는 게 없고 한다면 한다-고 믿었다.
밴드에서 처음 해보는 악기를 연주해도, 팀플에서 어떤 분업을 맡아도, 운동회에서 어떤 운동을 해도, 인간관계에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초심자의 긴장과 미숙함만 극복하면 결국 뭐든 잘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졸업할 때가 되어 깨달았다. 내가 극복해온 수많은 것들이 바로 내 단점이라는 걸 말이다.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라는 검사가 있다. 사람의 특성을 기질(타고난 성향)과 성격(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변화)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성격심리 검사다. 재밌고 유용하니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거기 ‘인내력’이 있다. 동기부여가 안 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힘인데, 놀라운 건 이게 기질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즉, 재미가 없고 잘 안 맞아도 끝까지 해내는 성질은 타고난다는 뜻인데, 검사해보니 나는 인내력이 백분위 상위 3%였다. ‘역시나 끈기는 압도적인 내 장점이지!’ 하며 결과표를 보고 흐뭇해하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마냥 좋은 건 결코 아니었다. 억지로 해내는 것, 그게 내 단점이다.
나의 대학원 진학 고민을 상담하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영 학생은 뾰족한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뾰족하지 않음’은 곧, ‘돋보이는 부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뾰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둥글게 이것저것 다 잘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단점을 잘 숨기고, 부족함을 다른 걸로 만회하는 기술이 좋고, 단점이 있다면 열심과 성심으로 극복하는 끈기가 있다.
허나 그 극복은 습관이 되어, 나랑 안 맞고 재미가 없는 일도 놓지 못한다. 억지로 붙잡고 그게 단점이 아니게 보일 때까지 –나아가 마치 ‘단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매달린다. 그 탓에, 장점을 발견하는 눈치도, 계발할 시간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언젠가 자신의 ‘최단 경로’를 골라 나아가야 할 때, 뾰족하지 않고 둥근 사람들은 자신이 없다. 많은 일을 그럭저럭 잘 해내지만 단 하나의 적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결국,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직업적 선택 등)의 첫 삽을 뜨는 시기가 늦어진다. 틀림없이 나한테 해당하는 설명이었다.
또, 약점을 보완하는 데 취미와 적성이 있다 보니, 극복 못 할 분야는 아예 삶에서 제외하고 피해버린다. 나의 경우, 중학교 때 친한 친구들이 농구를 즐겼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도와 굴욕 이후, 나는 농구공에 평생 손도 안 댔다.
“나도 그때는 둥글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근데 살아보니까, 그럴 필요 없더라고. 뾰족해도 되고, 또 결국 언젠가는 뾰족해져야 내 인생을 살 수 있어요.”
“뾰족해져도 돼. 이제 뾰족해지세요.”
내 대학생활이 관통당한 느낌이었다. 전역 후에야 전공을 진입했고, 수업 과목도 동아리도 선택이 잡다하여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이걸 좋아해서 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곤 했다. 아울러 졸업 후 진로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컸고 방황하는 시간을 거쳤던 것도, 모두 내가 뾰족하지 않았다는 근거였다.
‘단점이 없는 게 단점’이 장난 같은 자랑이 아니라 진짜였다니, 그리고 그게 바로 나한테 해당하는 말이라니. 단점이 없다는 건 곧 분명한 장점도 말하기 어렵다는 이 모순 같은 깨달음을 얻는 데 나는 7년이 걸렸다.
그리하여 내 대학생활이 나를 둥글게 만들고 그 원의 크기를 키워가는 과정이었다고 하면, 졸업 후의 과제는 나를 뾰족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심스럽게 덧붙이며 마친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나의 깨달음을 나보다 더 빠르고 좋은 시기에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덧붙인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근데 아무리 나중에 ’그러지 말 걸‘ 생각해도, 그때 당시에는 그걸 내려놓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다 때가 있고, 나이 들어서야 겨우 깨닫는 거지 뭐.”
누군가 이십초반의 나에게 뾰족해지라고 일러준다면, 과연 나는 그 말을 들었을까.
’더 완벽한, 단점 없는 사람이 되어야 돼. 누구랑 대화하더라도 어울릴 수 있어야 돼. 어떤 파트를 맡더라도 1인분 이상 하고,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주전에는 들어갈 정도는 되어야 돼.‘ 라는 강박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내가 걸린 7년도 어쩌면, 더도 덜도 없는 딱 필요한 만큼이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