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나한테 딱히 관심이 없다
내가 남 눈치 덜 보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된 건, 남들은 나한테 딱히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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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장도연님이 무대 위에서 떨지 않는 방법을 말하길,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 다 좆밥’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또, 유튜버 미미미누님은 면접에서 쫄지 않는 비결로 ‘어차피 계급장 떼면 그냥 아저씨다’ 하는 마음가짐을 말했다.
두 문장 모두, 실생활에 도움되는 전략적인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한다. 군생활 동안 사무실에 노크조차 할 수 없었던 그 높은 대령님, 이후 서점에서 자녀의 수학 문제집을 고르던 그분을 마주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람, 그냥 아저씨에 불과하구나. 계급에 의한 이미지를 그 사람과 분리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덜 긴장하며 하루하루 보냈을 텐데.’
이 글에서 말하려는 건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불필요하게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남들의 평판이나 눈치 같은 것에 휩쓸려서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생각조차 그렇게 되는 걸 막는 방법이다.
그 비결은 바로, ‘남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마음가짐이다. 생각의 기본 설정만 이렇게 바꿔도, 지나가는 말들과 흘겨보는 눈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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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동안의 예시를 들자면 ‘수염’이다. 나는 수염이 볼부터 목까지 꽤 넓게 퍼져서 잘 자란다. 그래서 대학생활 하며 총 두 번, 각각 두 달 정도 수염을 얼굴 윤곽이 덮이도록 길러본 적이 있다. 스스로는 개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많이들 엇갈렸다.
“왜 안 깎음?”
“되게 한국인 안 같게 잘 자란다”
“기르는 이유가 뭐야? 심경의 변화 같은 게 있어?”
“혹시 만져봐도 돼?”
사람들은 별의별 문장으로 관심을 표했다. 나는 그런 반응들이 귀찮고 또 불편했다. 남들이 나를 쳐다볼 때마다, 수염 때문에 나에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 같다고 괜희 의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불편은 딱히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안경이나 머리를 바꾼 직후에는 사람들이 알아채고 말을 붙이는데, 금방 익숙해져서 이전의 것이 뭐였는지조차 까먹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수염을 기른 지 2주쯤 되자, 사람들은 나를 전과 똑같이 대했다. 아무도 수염을 말하지도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마침내 몇 달 만에 면도를 맨들맨들하게 했는데, 바로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보자마자 반응하는 사람은 열 중 한둘뿐이었고, 대부분은 내 얼굴의 변화가 언급되어서야 비로소 ‘아, 맞네?’를 툭 던지고는 다시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남은 크게 신경쓰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걸 생생히 느낀 경험이었다.
3
‘남과 나는 서로 그다지 관심이 없음’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조금 더 말해본다. 가령 ‘술자리’가 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셨는데, 내가 술을 안 마시면 자리의 분위기가 처진다는 걱정으로 억지로 마셨다. 괜히 흐름을 깨뜨릴까, 자리가 파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법도 없었다. 아울러 1차에서 2차 넘어갈 때도 아쉬움의 눈초리를 피하고 싶어서 전부 따라갔다.
허나 술자리를 겪은 누구나 알겠지만,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나는 이걸 언제 깨달았냐면, 바로 이런 행동들을 타인이 할 때였다. 내가 그렇게 눈치 보며 꺼리던 일을 막상 남이 하니까,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이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재수를 했다, 이런저런 시험을 공부 중이다, 그런 걸 말할 때 조심스러워 하는 당사자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걸 준비한다는 사실을 숨기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알아서 하는 거겠다만, 그걸 듣는 사람들은 그 사정을 깊게 헤아릴 시간이나 노력조차 들이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다. 스스로는 몇 개월이고 몇 년이고 마주한 과정이므로 크고 가깝게 느껴지겠지만, 남들은 그냥 지나가다가 툭툭 던지고 받는 타인의 근황일 뿐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떠올릴 뿐이지 금방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다. 마치 유튜브에서 독립운동가분들의 얼굴을 AI로 재현한 영상을 볼 때 몇 초 동안 울컥해질랑 하다가 이내 잔잔해지는 애국심처럼 말이다. 나의 중대한 사건사고가 남에게는 작디작은 단신 뉴스로 인식될 뿐이라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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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주제,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돌아온다. 나는, 내가 소중하다거나, 특별하다거나, 막 ‘내가 하면 정답’ 같은 따뜻한 위로를 근거 삼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나 자신한테나 소중하지, 남한테는 그닥 그렇지 않다. 내가 그러하듯 남도, 자기 인생을 하루하루 더 행복하고 덜 불행하게 살기 위해서 골몰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굳이 남과 비교하면서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각자 다른 거리의 다른 마라톤 코스를 각자 다른 시간에 출발했고, 달리던 중 주로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함께 발을 구르는 것뿐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제쳐 앞서나간다고 해서 내가 더 잘 뛰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도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한테 중요한 건 내 페이스대로 완주하는 것이고, 옆 사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한다. 나를 가장 신경 쓰고, 나에게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자주 또 깊게 들여다보고, 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하루종일 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나를 무시하고 인정하고 사과도 하고 용서까지 할 사람, 그건 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행동의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남의 말을 아예 듣지 말고, 눈치도 아예 보지 말며 양보와 배려와 조화와 화합에도 무심하라는 말을 하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내가 나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 선택과 결정의 기준이 내가 아닌 -그 사람의 인생에는 내가 들어있지 않은데도- 남이 되어버린 그런 자유롭지 못한 상태일 때, ‘남은 나한테 깊게 관심이 없음’을 되뇌면 조금이나마 나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는 나의 경험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 건데, 나는 내 글이 극단적으로 이해되는 것을 우려해서, 글을 애매하게 만드는 반론을 항상 덧붙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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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연동(학점, 연애, 동아리. 대학생활 동안 이루어야 할 세 가지 중요 목표)’이 모든 대학생의 당연한 격언 같은 거라 믿어왔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면 ‘학연동’을 언급하는 블로그나 동영상은 거의 다 서울대생이 만든 것이다. 대학생활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지가 있는 시공간인데, 뭐든 잘하고 열심히 하고 또 많이 하는 욕심쟁이들이, 그 채점 없는 주관식을 참지 못하고 차라리 점수화할 수 있는 ‘투두리스트’를 만들었다. 나도 작위적인 그 목표를 꽤 맹목적으로 좇곤 했으니 누굴 탓할 수야 없다.
대학을 다니며 나는 자주 주눅 들었다. 애들이 기본적으로 박학다식하고, 외국어 등 스펙도 좋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기까지 했다. 나 또한 시간 낭비하는 놈은 아니라 자부했는데도,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가 가까워서야 깨달았다. 가난했던 마음의 여유가 무색할 정도로, 친구들은 막상 내가 어떻게 사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들 그냥, 자기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당연한 목표를 향해 좁은 1인칭 시점으로 아등바등할 뿐이었다. 자기 상황과 관련 없다면, 타인의 성공실패는 그저 들리니까 들리고 말하니까 말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거리에 불과하다.
자유롭지 못하는, 자연스럽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그냥 알아서 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뭘 하든 남들에게는 별다른 문제도 변화도 감흥도 없다는 생각을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알아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