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척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직도 배워가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아버지에게 불만이었던 점은, 타인에게 친절하시지 않다는 거였다. 식당에서 문제가 있을 때 사장 불러오라던 단호한 말들이 기억난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소비자로서 만족스러운 대우를 못 받으면 정말 가차가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공격성을 나는 부끄러워했다. 아버지가 강한 기세와 큰 목소리를 이용할 때면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있을 따름이었고, 속으로는 아버지가 진상이라고 생각했다. 성장하면서 나는(꼭 아버지에 대한 반발만은 아니겠으나) 친절함이 불친절함을 이긴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착하게 말하고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다. 이왕이면 ‘괜찮다’고 말하는, 듣기 싫은 소리 남한테 안 하는 게 목표였다.
나의 대학 생활은 이런 내 가치관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항상 찌푸린 눈썹’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러닝동아리 회장을 할 때였다. 여러 스포츠 브랜드에서는 물건을 구입하고 자체 러닝클럽에 가입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러닝 세션을 제공하곤 한다.
그 중 어느 브랜드(이하A)에서, 우리 동아리 정기러닝과 시간과 장소가 모두 겹치는 세션을 진행한다는 걸 발견했다. 개강 초반이라 우리는 100명 넘는 인원이 트랙을 뛰어야 하므로, 공간을 양보받기 위해 A에 연락을 했다.
“저희도 바꾸기가 어려워요. 아니면, 저희가 1~4번 트랙을 쓸 테니 그쪽에서 5~8번을 쓰시겠어요?”
-아.. 근데 이게 저희가 또 트랙을 예약해서 쓰는 건 아니고.. 다른 학생들이나 일반인들도 와서 뛰시는 거라..
-그.. 저희 동아리가 십년 넘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러닝해왔거든요. 저희가 여기 학생이기도 하고.. 또.. 원래는 외부단체에서 오면 안 되기도 하고.. 죄송한데 날짜나 시간이나 장소를 하나라도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통화하면서 생각을 거듭해봐도, 학교 학생인 우리가 양보를 받는 게 맞는 듯했다. 하지만 내 말투는 소심했고, 문장마다 ‘죄송’과 ‘혹시’ 따위가 붙는, 정중함을 넘어선 저자세였다. 그렇게 착하게 보이면 상대가 좋은 마음으로 한발 물러날 줄 알았던 걸까.
“하. 아니요, 못 바꿉니다. 그냥, 저희 이전에도 학교 협조받아서 서울대 트랙 쓴 적 있거든요. 정식으로 연락해서 쓰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자기들이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내 태도가 물러서 세게 나가면 이길 거라는 약육강식의 본능이 튀어나온 걸까. 상대는 오히려 내가 답답하다는 말투로 변했다.
학교에서 A러닝클럽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안 됐다. 외부 영리단체에서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방해하면서까지 50~60명이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는 걸, 정식으로 허락해준다고?
애초에 내가 저자세로 나갈 게 아니었다. 학교 구성원들과의 마찰이 생기면 외부인이 양보하는 게 내 상식인데, 나의 단호함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정말 혹시라도 트랙을 뺏길까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져, 나는 얼른 학교 시설관리팀에 전화를 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는 의견을 (이번에는) 단호하게 전달했다. ‘일단 알고 있겠다’는 답을 받았다. 알고 있긴 뭘 알고 있겠다는 거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맞나 긴가민가했다.
약 5분 후, 나를 제치고 학교와 담판 짓겠다던 A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전에 통화한 시설관리팀 그분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보아 학교 측에서 A브랜드에 먼저 연락을 했을 리는 없고, 아마 A에서 학교로 전화했을 테다. 그래서 결정이 났나보다.
“저희가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A의 매니저의 말투에서는 까칠함이 사라져있었다. 잘 해결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학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저희가 원래는 서울대 트랙에서 뛴다고 공지를 한 상태로 회원분들을 모집한 거거든요. 저희가 학교로부터 제지당했다, 이런 게 아니라, 양보해드렸다, 이렇게 하는 걸로 해도 될까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양보 감사합니다. 저희가 인원이 많아서..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공격적으로 말하자면, 학교 동아리를 무시하고 세게 나가려다가 실패해놓고 체면이라도 세우겠다는 괘씸함인 것도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운동장 트랙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안도하며, ‘그래, 하고싶은 대로 해라’ 생각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반복했다.
그 학기 동안 외부단체에 의한 불편 없이 트랙을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A러닝클럽에서 뛰시곤 하는 동아리 회원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들어보니까 달리샤에서 A 내쫓았다면서요?”
기분 나빴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고 협조적으로 소통했고, 끝내 협의를 거부하며 내달리다가 벽에 부딪혀 튕겨진 건 그쪽이다. 근데 내가 쫓아냈다니. 그쪽에서는 동아리 회장인 내가 악덕업주 같은 것처럼 소문이 났을라나.
억울하면서도 동시에, 어차피 소문이 남들 마음대로일 거면, 차라리 더 세게 나가서 만만하게 보이지나 말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으면 적어도 우리 공간을 지켜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가 공격적인 말을 뱉었다가는 또 A클럽 내에서 어떻게 얘기가 변형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머쓱한 표정으로 상황을 넘겼다.
기분 안 좋은 말 좀 도는 거야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동아리 회장을 한 번 더 하게 되어 새 학기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어느 운영진분이 나한테 어느 홍보문을 캡처한 것을 보내주었다.
‘서울대 트랙 수요일 오후7시30분’
A브랜드에서 새 봄을 맞는 러닝 클럽의 회원을 받으며 낸 공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똑같은 일이라니, 너무 화가 났다. 담당자가 바뀌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학교 측과 연락했던 게 얘기가 안 됐나? 아니 혹시, 자기들이 양보한 것처럼 마무리된 게 전달되어서 이런 일이 생겼나?
내가 진작에, ‘도움 못 드려 죄송하다’ 따위가 아니라, 그냥 세게 나갔다면,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한 단체의 대표로서, 욕을 먹든 뭐든 (어차피 먹었음) 확고한 주장을 내세웠다면, 건드리면 안 된다는 느낌을 줬다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까.
나는 즉시 A러닝클럽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분노를 표출하려고 했었다. 사람을 무시하냐고, 좋게좋게 말할 때 물러선 거 아니었냐고. 하지만 내가 감정을 앞세운 싸움을 시작하기 전, 다른 운영진분께서 학교로 메일을 쓰는 게 낫겠다고 나를 설득해주셨다. A의 홈페이지를 캡처하고 링크를 덧붙여서 제대로 막아달라고 말하면 된다고, 우리가 굳이 욕받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침착하고 성숙한 대처를 대신 해주신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학교 대운동장에, 외부영리단체가 사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다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성인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살 빼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키 작은데 덩치까지 좁으면 사람들이 더 무시한다고, 만만해보이지 않는 태도와 분위기를 가지라고 말이다.
꼰대같다고 생각하던 그 말씀에, 이제는 종종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를 겉모습과 말투만으로 얕잡아보고, 착한 것과 만만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대해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사나운 인상의 필요성을 떠올린다.
센 척이 필요했던 경험이 쌓여, 나는 이제 만만함을 덜어낸 사람이 되었다. 하대하려는 사람에게 말을 놓지 말라고 한다거나, 은근슬쩍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제안하는 걸 거절하는 데 주저가 없다. ‘더 마음이 큰 쪽이 호구가 된다’는 진리 속에서는 여전히 서투른 저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직도 고민하며 헤매고 있다. 친절함과 불친절함, 단호함과 부드러움, 거절과 수락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센 척을 적절하게 -함부로 남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목적으로서만- 잘 하고 싶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에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 줄타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센 척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직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