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일하던 언니가 주말을 틈타 혼자서 여행하다가 수영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노숙자와 별다를 바 없이 꾀죄죄한 몰골의 수영은 남해안의 쇠락한 시골 마을에서 낡은 시멘트 담에다가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집의 사방 벽과 담벼락마다 수영이 그려놓은 벽화로 가득했다.
비췻빛 파도가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장면, 물거품의 무늬, 얕은 바다에 햇볕이 만든 물그림자 등등.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화풍에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고,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숨을 쉴 수도 없었다고 훗날 록 언니는 회상했다.
다음날부터 언니는 수영이 살던 집 근처에 허름한 숙소로 얻어놓고 그의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기 시작했다. 언니는 수영이 개인전을 열도록 열심히 설득했다. 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던 그에게 이미 그려놓은 벽화 몇 점만 캔버스에 옮기면 나머지는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장담을 했다.
수영이 언니가 가져온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오지랖 넓은 참견쟁이를 어떻게든 떼어내고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언니는 동이 트기도 전에 수영이 살던 집 담벼락 앞 시멘트 바닥에 캠핑의자를 펼쳤다. 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매일 다른 날씨와 바람과 파도의 세기에 따라 바다 표면에는 갖가지 모양과 빛깔의 물거품이 탄생했다. 구름 낀 날에 잔잔한 바다 위에서 일렁이다가 스러지는 파도가 만든 물거품은 희미하고 얌전했고, 햇살이 눈 부시고 바람이 사정없이 불던 날, 집채만 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만든 물거품은 또렷하고 힘이 넘쳤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장도 그렸다. 그림에 덧칠을 해 가면서 여러 번 고치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그림을 연작으로도 그렸다.
록 언니는 수영의 개인전을 위해서 팔을 걷고 나섰다. 글로벌 아트 컨설턴트로 일했던 지식과 정보와 인맥을 총동원해서 동유럽과 대만에서 열린 신생 아트페어의 참가 자격을 따냈다. 국내 화단에는 비빌 언덕이 없는 수영을 위해서 해외 현지 평론가와 언론에서 호평을 받는 것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다음엔 전통 있는 국내 갤러리와 계약을 맺었다. 평론가와 기자, 미술품 콜렉터들에게 일일이 초대장을 돌렸다. 그들 한 명 한 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연락해서 긴 대화를 나눈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영의 개인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평론가들은 록 언니가 미리 배포한 작가노트를 보고 수영에게 ‘물거품의 화가’라는 별명을 붙였다.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불교 철학을 인용하기도 했고 우리는 모두 바다로 상징되는 자연의 일부이며 파도가 만든 물거품처럼 찰나의 시간 동안 수면을 수놓았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이라며 철학적인 견해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쏟아지는 찬사가 너무도 낯설어서 멍하니 서 있던 수영의 손을 록 언니가 슬그머니 잡았다. 그가 쳐다보자 손을 놓은 언니가 수영의 귀에 대고 ‘손잡아도 돼?’라고 소곤거렸다. 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부터 언니는 틈만 나면 그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