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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순 Sep 28. 2022

왜 부모가 되고 싶은가

출산율 꼴찌인 나라에서 부모가 되고 싶은 이유


최근 우리 부부는 임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혼 후 1년 동안 신혼 생활을 즐기고 아이를 가지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이제 그 시기가 된 것이다.


나는 엄마와 수목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난생처음으로 맘 카페라는 곳도 가입해보았다. 남편은 어쩌다 한 번씩 피던 담배도 완전히 끊으며 건강 관리를 시작했고, 내 약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한다.


그렇게 임신 준비를 하면서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면서도, 프로 infj인 나는 또다시 이상한 생각의 굴레에 빠져 버렸다. 임신을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막상 임신이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모순적인 생각에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생기는 제약



나와 남편을 닮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싶다. 그 아이가 얼마나 이쁠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줄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감격스럽다. 하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생기게 될 이런저런 제약에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의 아이를 낳은 부부들은 항상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살고, 아이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한다. 갈 수 있는 장소에 제약이 따랐으며 그마저도 아이가 칭얼대면 포기하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꾸고 둘 만의 데이트도 할 수 없다.


특히 우리 부부는 여행과 캠핑에 취미가 있는 터라 그 제약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바로 가지지 않고 1년 동안 신혼 생활을 온전히 즐겼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여전히 조금 아쉽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늦게 아이를 가지고 싶지도 않았기에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 몸과 달리 생각은 바로 정리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요즘은 아이를 가지지 않는 추세라는 것도 내 생각이 복잡해지는 데에 일조했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고, 그런 부부를 힐난하는 분위기도 이제 없어졌다. - 적어도 우리 또래에서는 - 이제는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굳이 왜 가져야 하냐며 의문을 던지는 사회가 되었기에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왜 부모가 되고 싶은가?'


나는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왜 부모가 되고 싶은가?



보통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스로의 자유와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이를 낳는 이유는 보통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조금 윗 세대로만 가도 주변에서 다들 낳으니까 낳았다고 하는 부부들도 많다.


그렇다면 다들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가 된 지금, 나는 왜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


사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조건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아이를 가지고 말고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은 나와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은 친조카를 계기로 많이 바뀌었다. 나는 9살 차이가 나는 언니를 둔 덕분에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친조카를 볼 수 있었는데, 내 주변에서는 처음으로 갓난아기가 생긴 것이었기에 감회가 컸다. 그리고 나는 여느 이모가 그러하듯 친조카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조그마한 몸뚱이. 고사리같이 작은 손과 작은 옥수수 같은 발가락. 부드러운 분유 냄새와 아이 특유의 포근한 냄새가 섞인 숨결. 그리고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그 투명한 눈동자.


무엇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 옆에는 tv와 스마트폰과 같은 오락거리가 많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조카의 얼굴만 쳐다보고는 했다. 아기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조금 오버를 보태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 친언니에게서 이런 생명이 태어났다는 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새삼 생명의 신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내 뇌리에 깊숙이 박힌 덕일까? 결혼을 한 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내 욕심만 앞세우는 게 아닐지 고민도 들었다. 분명 이 세상에는 행복만이 있는 게 아닌데, 태어날 아이가 언젠가는 느낄 슬픔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렸다.


더군다나 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많은 상황이 바뀌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질 것이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할 아이가 불쌍해서라도 낳고 싶지 않다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따끔거린다. 그들의 말도 분명 맞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매일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있는 터라, 그래도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거다.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어서 살기 좋은 세계가 될 줄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실 인류가 출현한 뒤 지금까지도 모두에게 살기 좋은 시대는 없었다. 어느 시대나 힘듦이 있었고, 또 행복이 있었다.


나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했고 다양한 감정을 겪었다. 분명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현재를 온전히 만끽하려 노력한다.


나는 우리의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살아감에 있어서 좋은 일과 슬픈 일, 모두 겪어가며 삶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과거를 토대로 성장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했으면 좋겠다. 그런 삶이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도록,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변한다고 한다. 아이가 기쁘면 부모도 기쁘고, 아이가 슬프면 부모도 슬퍼진다. 그만큼 부모와 아이의 세계는 서로 동화된다. 나는 그게 사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부부 사이도 그렇듯,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지는 거다.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 그런 존재가 하나씩 늘어가는 건 분명 엄청 큰 행복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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