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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n 01. 2019

내가 바라는 여행의 모습


나는 변수를 싫어한다. 내가 계획했던 것이 그대로 모두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의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이것에서 출발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상황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지금까지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혼자 도맡아서 했다. 형과 떠난 여행뿐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온 지금도, 1달 반가량 혼자 다녀온 캐나다+미국 자유여행도,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홍콩, 싱가포르 여행도. 이렇게 말하면, 내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 줄 알겠지만 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 오히려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였다. 처음 유럽을 떠날 때는, 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하나 지도에 기록해서 돌아다녔다. 만약 내가 지도에 기록해놓은 곳이 쉬는 날 이거나, 공사 중일 때 혹은 내가 보고자 했던 그림이 없을 때, 내가 보러 가는 경기의 표가 없을 때 나는 더없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치 모든 여행의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내가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어떤 일정으로 여행이 채워질지 고민하는 동안 함께 가는 사람은 이것을 고민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나의 결정을 존중했고,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겼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그 선택은 효율적인 선택이었고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집행하는 나에게는 선택에 따르는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여행이 즐겁고, 즐겁지 않음이 나에게 달린 문제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도 형도 앞으로의 일정 동안 어떤 곳을 가게 될지, 어떤 것을 만나게 될지,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 어떻게 해야 표를 조금 더 싸게 끊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편하게 입장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여행지로 떠났었다. 그들은 마치 갓 세상을 처음 마주한 아이처럼 여행을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약간의 실수를 해도, 내가 원하는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여행이 흘러갔다. 다만,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는 내가 홀로 감당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치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여행 중에는, 영어를 해야 할 일이 꽤 많다. 주문할 때도, 길을 물을 때도 영어를 사용한다. 당연하게도 한국어는 통하지 않고,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외국어가 영어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전에 쓴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그저 보통 사람 수준의 듣기 능력과 보통 사람보다 낮은 말하기 실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행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내 말하기 실력이 너무 낯부끄러워서 속으로 삼키고 핸드폰과 지도를 바라보면서, 두 다리를 혹사시킨다. 

런던에 살며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JE는 자신이 사용하는 영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매번 수업을 통해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 시간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다고 했다. 이처럼 무언가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분명히 자신을 깎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 때문에, 내가 깎이는 게 두려워서 무언가를 배우길 두려워한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당연히 틀린 것을 지적받고, 교정받는 과정이 당연한데, 그것이 두려워서, 짜증 나서 하기 싫어하는 겁쟁이. 그게 바로 나다.

이 모든 문제는 어제 우연히 본 예능 '트래블러'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했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결코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임에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즐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람의 성향 차이일까. 경험의 차이일까 생각해보지만,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에 가깝다. 성향과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가졌는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롭고, 여행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는 그가 부러웠다. 그가 누리는 행복이 부러웠다. 그가 즐기는 여행이 부러웠다.

여행하면서 참 버리고 싶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게 '나란 존재'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너무 단단해서, 너무도 견고해서 나를 깨부숴버리기 너무 어렵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더 선호하는 나는 아직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나도 그처럼 어떤 상황에도 초연한 모습으로 여행하고 싶은데, 나도 그렇게 즐기고 싶은데,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나도 무언가를 배우면서 얻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싶은데, 나와 다른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해보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계획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초연하고 싶은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 언제쯤 무언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채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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