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파리를 떠난다. 지난번 여행에서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도시가 파리였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런던에 이어서 두 번째로 도착한 도시라서 그런지 마치 여행의 시작점처럼 느껴지는 도시다. 다시 돌아온 파리는 변함없이 똑같았다. 여전히 지하철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낡고 병들어 보이는 지하철의 좌석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이용했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에펠탑과 센 강에는 낭만을 찾아온 수많은 연인들이 서로를 향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고,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파리가 각별한 이유는, 다시 유럽을 온다고 해도 파리를 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파리가 사람이 직접 만들어낸 작품과 사람의 손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가득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었지만, 이제는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 마치 모든 길이 여기서 시작된다는 것처럼 자신을 중심으로 12개의 길이 뻗어져 있는 개선문,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득 메운 엄청난 수의 작품들까지. 그 자체로도 빛나는 파리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수많은 작품이 바로 여기, 파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을 갔을 때도 똑같이 느낀 감정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이 과연 어떤 정당성을 지닌 채로 그곳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많은 것을 빼앗긴 채로 다른 나라로부터 문화재 환수를 요청하는 과거의 약소국,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철저히 약탈을 감행했던 과거의 강대국들이 그저 미울 뿐이다.
세계 각국의 좋은 것과 멋진 것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장점이지만, 단순히 그 장점만을 위해서 누군가가 아프고, 슬퍼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위해서 다른 이의 슬픔이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멀리서나마 이렇게 빛나고 있어 줘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고 예쁨을 받고 있어 줘서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모든 문화재와 작품들이 각자 태어난 고향, 고국에서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전시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우리 땅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난 것들이 이곳에서라도 무사히 잘 있어 줘서, 다치지 않고, 어디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나에게 파리에서 보낼 하루가 주어진다면,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파리라는 도시를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만든 바로 그 세 곳을 방문할 것이다. 에펠탑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에펠탑은 사실 굉장히 낡았다. 쇠라는 재질이 가지는 특성일지도 모르지만, 무척이나 낡고, 황폐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에펠탑은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여기에 있을 거야. 나는 너를 항상 바라보고 있을 거야'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찾게끔 만든다. 파리를 돌아다니며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항상 에펠탑이 그곳에 그대로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고는 했다.
개선문의 진가는 높은 원형 계단을 오른 뒤에야 온전히 알 수 있다. 너무도 좁고 경사가 높은 계단을 오르면서 다리가 아파와도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힘들게 오른 뒤에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감격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으로 12개의 길이 시작된다는 그 자부심. 나보다 높은 곳은 없다는 그 오만함. 개선문을 오른 뒤에야 맛볼 수 있는 감격일 것이다. 파리의 중심이 자신인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개선문은 무척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마지막 오르세 미술관. 세계의 그 어떤 미술관도 이곳의 작품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작품들이 가득한 곳이다. 교과서에서 흔히 마주하던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들로만 가득한 오르세 미술관은, 한 작품 한 작품 넘겨 지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다른 작품에 눈이 돌아가서 지금 내가 보는 작품에 집중하지 못해서 미안할 만큼, 최고의 작품들이 가득가득 넘치는 곳이었다. 인간의 재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최고의 작품을, 최고의 화가들이 만들어냈다.
그렇게 세 곳을 돌고 난 뒤, 마지막으로 파리의 유람선을 탈 것이다. 유람선을 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하루의 소감을 나누고 싶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정말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채우고 간다. 비록 시차 적응조차 덜 된 상태로 도착해서 집에서 늑장을 피우느라 파리의 많은 부분을 밟아보지 못했고, 파리 여행의 필수코스 베르사유 궁전 방문은 이번에도 역시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파리에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때로는 두려웠고, 때로는 어려웠다. 앞서 쓴 글에서처럼 파리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에 걱정도 많았지만 파리는 나에게 최고의 것을 최고의 때에 선물해주었다. 파리에게 내가 말을 전할 수 있다면, 파리라는 대상이 분명히 실재한다면 나는 파리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파리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또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