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록 May 29. 2019

행운에 대한 고찰, 여행지에서 날씨 운을 가진다는 것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오기 전날, 미리 파리 날씨를 알아봤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충분히 암울하고, 축축한 날씨를 경험했던 터라 파리 날씨는 화창하기를 기대하며 날씨 앱을 켜 파리 날씨를 확인했다. 

날씨 앱이 미리 예보해 준 파리 날씨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한 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릴 것이고, 내가 파리를 떠나는 다음날부터 다시 맑아지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온종일 비가 내리지는 않겠지만, 일기예보가 알려준 파리는 하루 동안 분명히 비가 조금씩은 혹은 많이 내릴 것을 암시했다. 일기예보를 접한 나는 절망에 빠졌다. 어떻게 날씨 운이 이렇게 안 좋을까 싶었다. 

심지어 나를 더 절망하게 한 것은 파리 다음으로 갈 도시 바르셀로나는 이번 주 내내 날씨가 화창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일정을 바꾼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자 절망감은 더욱 커졌다.

사실 나는 일기예보를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일기예보를 전날 미리 확인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참고용이지 그것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밖을 바라본 뒤에 날씨를 짐작하고는 한다. 한국은 날씨가 화창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 무척이나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는 전적으로 일기예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곳에서 철저히 여행객에 불과하고, 여행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날씨만큼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도, 불확실한 요소도 없다. 다른 요소는 충분히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해도, 날씨는 행운이 많이 따라야 한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떠난 여행지에서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은 꽤 큰 스트레스와 짜증을 준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여행지에서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편안한 여행을 위해 하루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 더 많은 거리를 돌아다니기 위해서 좋은 날씨는 꼭 필요했다.

내일부터 일주일간의 파리 일기예보를 바라보며, 문득 행운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다. 경품 추첨에서 좋은 것을 얻은 경험도 여러 번 있고, 내가 가는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승리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파리 날씨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네가 했던 생각들이 모두 착각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나의 삶에는 행운도 많았지만, 수없이 많은 그렇지 않았던 경우 즉, 운이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과신했던 것은 내가 스스로 행운과 멀어져 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은지. 마치 내가 불운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려는 행운마저 나에게 멀어질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운과 불운에 대해서 생각하며 운은 말 그대로 운일 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에게 주어진 것을 기쁜 일을 선물처럼, 행운으로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만약 불운이 주어진다면, 다음 행운을 기대하면 될 것이다. 행운과 불운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행운을 감사로 생각하고, 불운을 다음 찾아올 행운으로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운 또는 불운을 미리 짐작해서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직접 파리에 도착해서 날씨를 마주해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을지, 좋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저 주어진 상황을 행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제로 파리에 도착해서 날씨를 마주해보니, 4일 차인 어제까지 감사하게 단 하루도 비 내리는 날이 없었다. 만약 일기예보를 과신해서 나의 일정을 변경했더라면, 나의 파리 여행이 실패라고 예단했더라면, 여행이 조금 더 불행했을 것 같다. 5일 차인 오늘 잠시 비가 왔지만, 우리가 간 곳은 디즈니랜드였고 여러 실내 놀이기구를 타고 나오자 이미 비는 그쳐있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의 비구름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사라졌고, 맑은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오늘 비 예보 때문에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을 주저했다면, 만약 결국 가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 마주한 풍경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비는 나에게 불운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행운을 주었고. 덕분에 오늘 하루는 무척 행복했다.

결국 현재에 충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미리 예단하지 않고, 좋지 않을 것이 예보된 상황에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주어진 현실에 충실할 것. 행운이 주어지면 행운으로 감사히, 불운이 주어지면 다음 행운을 기대하며 즐겁게! 힘들겠지만, 그렇게 살아내면 조금은 더 여행이 행복해질 것 같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나 자신의 생각밖에 없지만, 내 마음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을 얻은 사람일 수도, 불운을 얻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이전 06화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이방인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