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발을 내디디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의 시간을 낯선 땅에서 보내는 동안 내 마음에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유럽을 다시 오니 좋구나'와 더불어 '타지에서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구나'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JE를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JE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감탄이 여행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돈다. JE는 2년을 살아내기로 마음먹고 런던으로 떠났다. 타지 생활이 두려울 법하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런던으로 떠났다. 영국으로 떠난 JE가 한국으로 전해오는 안부는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다. 물론 힘든 것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그녀이긴 하지만, 금전적인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다른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보다 타지 생활이 괜찮은가보다 하고 안심을 했더랬다.
하지만, 실제로 런던에 와보니 JE는 두 가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첫 번째는 금전적인 어려움, 두 번째는 언어의 장벽이었다. 금전적인 부분이야 이미 들었던 것인 데다, 나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문제였고, 그녀가 풍족함을 누리고자 떠난 것이 아니기에 나를 비롯한 가족들이 한국에서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언어의 장벽이었다. 아무리 영국이 영어권 국가라고 한들, 한국어만큼 편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와 JE를 관통하는 20대에게 영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언어이다. 대입을 위해서 매일 같이 영어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면서 어느 정도 수준의 읽기 능력과 듣기 능력을 배양했지만, 정작 의사소통에 필요한 '말하는 능력'은 가지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는 영어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정작 진짜 영어를 사용하지 못한 채 자라났다.
영어를 매일 같이, 모든 호흡마다 함께 사용하는 곳에 도착한 그녀는 매 순간 무척 당황하면서 살고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평균 이상의 토익 성적과 수능 영어 성적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영어로 물어오면 긴장감에 몸이 굳는다.
'내가 하는 영어가 어법과 다르면 어쩌지', '내가 하는 영어를 저 사람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이 단어가 맞는 표현일까?'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급히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내 후회한다. 더 좋은 문장으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비단 언어의 문제뿐 아니라, 삶을 살아내며 마주하는 문제들 역시 그렇다.
Case 1. 파리 여행 2일 차인 오늘 나비고 카드를 사기 위해 인근 역으로 갔다. 역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12시 반 정도, 티켓 오피스에 아무도 없고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점심시간인가보다, 금방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기다리기를 30분, 1시간... 아무런 소식이 없기에 문에 노크를 해봤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오더니 프랑스어로 뭐라고 한다. 알아듣지 못한 표정을 지으니 "WAIT" 한 마디 남기고 문을 닫는다. 그렇게 2시가 다 되어서야 티켓 오피스에 사람이 들어오고, 셔터가 올라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찼지만, 내뱉지 못했다.
Case 2. 파리 에펠탑 주위에 가면 정말 많은 상인이 에펠탑 고리를 팔고 있다. 모두에게 안 산다는 표현을 하기는 무척 번거로우니,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고 바쁜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다 어떤 한 상인이 나에게 손가락 5개를 내보이며 "1 EURO"(에펠탑 고리 5개에 1유로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나는 "No Thanks"라고 말했다. 그러자 "Fxxx~" 욕이 날라왔다. 나는 그저 필요 없다고 말했을 뿐인데.
잠시나마 이방인의 신분이 된 나도 이런데, 타지에서 사는 JE는 얼마나 더 힘들까 생각한다. 비싼 물가와 더불어 턱없이 비싼 집값, 식습관의 변화와 언어 등 타지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이방인은 계속해서 카운터펀치를 맞으며 간신히 견뎌내고 있다.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많은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나와 같은 어려움을 조금은 힘겹게나마 견디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타인의 심정에 공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상황을 겪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리에 서 있어 봐야 한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었지만, 잠시나마 이방인의 신분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계속 이어질 걱정거리 하나가 늘어난 기분이다. 적어도 JE가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말이다.